[리우][김성원의 센터서클]아름다운 도전, '꼴짜기 세대'는 없다

기사입력 2016-08-16 01:53


한국축구대표 가 13일 오후(현지시간) 2016년 리우올림픽 남자축구 8강전 온두라스전이 열린 브라질 벨루오리존치 미네이랑 경기장에서 패한뒤 손흥민 이 그라운드에 누워 울고 있다./2016.8.13 벨루오리존치=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L

4년 전 산이 높이 치솟았다. 축구에서 꿈에 그리던 올림픽 첫 메달을 대한민국에 선물했다. 숙적 일본을 꺾고 동메달을 차지해 더욱 짜릿했다.

당시 올림픽 대표팀의 면면은 화려했다. 23세 이하에는 기성용(스완지시티) 구자철 지동원(이상 아우크스부르크) 김영권(광저우 헝다) 김보경(전북) 등이 포진했고, 와일드카드(24세 이상 선수)에는 박주영(서울) 정성룡(가와사키) 김창수(전북) 등이 발탁됐다. A대표팀에 버금가는 탄탄한 전력을 자랑했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은 법이다. 통상 좋은 선수들은 한 세대를 걸러 배출된다. 산의 큰 그림자의 가려 꽃을 피우기가 싶지 않다. 런던의 바통을 곧바로 이어받은 리우 전사들도 초라했다. 23세 이하의 경우에는 권창훈(수원)이 유일한 A대표였다. 손흥민(토트넘) 장현수(광저우 부리) 석현준(트라브존스포르)을 와일드카드로 수혈해 구색을 맞췄지만 런던 멤버에는 미치지 못했다. '골짜기 세대'라는 호칭은 지울 수 없는 멍에였다. 2회 연속 올림픽 메달은 아주 먼나라 얘기 같았다.

이러한 시선과는 달리 '골짜기 세대'의 일성은 런던 대회보다 더 높은 꿈, '금빛 합창'이었다. 장밋빛 출사표가 아니었다. 그들의 도전은 그렇게 시작됐다. 하지만 피지(8대0 승), 독일(3대3 무), 멕시코(1대0 승)전 등 조별리그 3경기를 치르면서 시선이 달라졌다.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조별리그를 1위로 통과하면서 우려는 안개 걷히듯 사라졌다. 기대감도 한껏 고조됐다.

대망의 8강전, 상대는 온두라스였다. 14일(한국시각) 벨루오리존치의 미네이랑 스타디움에서 휘슬이 울렸다. 전반부터 상대를 압도했다. 한 방이 아쉬웠지만 선제골은 시간 문제로 여겨졌다. "꼬리아"를 연호하는 브라질 팬들의 함성도 점점 더 거세졌다. 그러나 축구는 결국 골로 말한다. 만고의 진리를 역행할 수는 없었다. 잇단 찬스가 무산되는 안타까운 흐름을 이어가던 후반 14분, 상대의 역습 한 방에 골문이 열렸다. 선제골을 지키려는 상대팀의 '침대 축구' 속에 더 이상의 반전도 없었다.

분통하고, 아쉬웠다. 하염 없는 눈물이 그라운드를 적셨다. 미네이랑 스타디움은 통곡의 성이었다. 하지만 4강 진출 좌절은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2회 연속 올림픽 메달도 물거품이 됐다. 하루가 지났지만 축구가 방을 뺀 리우는 여전히 허전하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이 있다. 여정은 8강에서 멈췄지만, 그들은 한국 축구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리우에 '골짜기 세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사우바도르, 브라질리아, 벨루오리존치로 이어진 여정은 역사 그 자체였다.


한국축구대표 장현수가 13일 오후(현지시간) 2016년 리우올림픽 남자축구 8강전 온두라스전이 열린 브라질 벨루오리존치 미네이랑 경기장에서 1:0으로 패하자 이슬찬을 끌어 안고 있다./2016.8.13 벨루오리존치=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I/
'골짜기 세대'라는 평가를 비웃기 위해 똘똘 뭉쳤다. 누구하나 톡톡 튀지 않았다. '우리'라는 틀 안에서 호흡하고 하나가 됐다. 그 중심에 주장 장현수가 있었다. '병역 혜택'은 올림픽의 가장 큰 메리트다.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장현수는 달랐다. 그는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이미 병역 문제에서 자유로웠다. 하지만 신태용 감독의 부름에 뒤도 안보고 달려왔다. 소속팀 경기 출전으로 응당 뒤따르는 각종 수당도 포기했다. 그는 "경기에서 이겨도 팀, 져도 팀"이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자신의 방은 '사랑방'이었다. 수비수들을 불러 모아 토의하고, 연구했다. 올림픽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경기력에서도 결코 뒤처지지 않았다. 한국이 '마지막 1분'을 버티지 못하고 비긴 독일은 8강전에서 포르투갈을 4대0으로 완파하고 4강에 올랐다. 현지에서는 한국 축구를 재조명하고 있다. 4강에 진출한 온두라스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 축구는 밝은 뉴스보다 어두운 소식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리우에서 확인한 것은 한국 축구의 미래가 밝다는 사실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흘린 땀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세계적인 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고, 그들의 땀내음도 향기로웠다.


한국 축구대표팀 권창훈이 13일 오후(현지시간) 브라질 벨루오리존치 미네이랑 경기장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축구 8강전 온두라스와의 경기에서 슛팅을 시도한 후 골키퍼의 선방에 막히자 아쉬워하고 있다./2016.8.13/ 벨루오리존치=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N
벨루오리존치에서 하루 더 머문 신태용호는 15일 귀국길에 올라 17일 고국 땅을 밟는다. '골짜기 세대', 그들 덕분에 편견이 깨졌다. 물론 그들의 축구 인생은 이제 시작이다. 와일드카드를 제외하고 리우올림픽에 출전한 23세 이하 선수 가운데 몇 명이 A대표팀으로 승격할 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번 대회를 끝으로 그저 그런 선수로 잊혀질 수도 있다.

"이제 시작이고 마음을 잘 추슬러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해선 더 강해져야 한다."(권창훈) "형들과 앞으로 미래가 있으니 기죽지 말고 갈 길을 가자고 얘기했다."(황희찬·잘츠부르크) "감독님이 '이게 끝이 아니고 많은 시간들이 있으니 더 열심히 해서 A대표팀에서 보자'고 하셨다. 열심히 하겠다."(정승현·울산) "올림픽이라는 세계적인 무대에서 배운게 많았다. 이제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해서는 안된다."(류승우·레버쿠젠)

아름다운 뒷모습을 남긴채 리우를 떠난 '골짜기 세대'의 신화가 계속되기를 바란다.
리우데자네이루(브라질)=스포츠 2팀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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