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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55)이 재수 끝에 국제축구연맹(FIFA) 입성에 성공했다.
또 다시 수년을 기다려야 했다. 다행히 시간은 길지 않았다. 세상이 바뀌었다. 영원할 것 같았던 FIFA의 권력 구도에 변화가 생겼다. '비리의 덫'에 걸린 제프 블래터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절대 권력'인 집행위원회도 폐지됐다. 블래터 회장의 바통을 이어받은 지아니 인판티노 회장은 개혁 카드로 평의회를 도입했다.
하지만 평의회 문턱을 넘는 데도 우여곡절이 있었다. 당초 AFC의 몫의 평의회 위원 선거는 지난해 9월 열릴 예정이었다. 정 회장도 도전장을 냈지만 8월 리우올림픽 한국 선수단장에 선임되면서 부득이 후보직을 사퇴해야 했다. 선거 운동할 시간이 태부족했던 점이 표면적인 이유였다. 그러나 AFC의 복잡한 구도도 얽혀있었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도 '행운'이 있었다. 아시아 스포츠의 거대 권력인 셰이크 아마드 알 파하드 알 사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회장(쿠웨이트)이 비리 혐의에 휘말리며 축구 관련 자리에서 물러났다. 알 사바 회장은 집행위원회 선거 당시 보이지 않는 카르텔을 형성하며 정 회장을 낙마시킨 장본인이다. 세상이 돌고 돌아, 정 회장은 알 사바의 사퇴 덕에 '무혈입성'으로 한을 풀었다.
하지만 좋아하기에는 이르다. 이제 막 첫 걸음마를 뗐을 뿐이다. FIFA 입성은 봄의 시작을 의미하지만 여름맞이는 정 회장의 몫이다. 정치 공학적으로는 흥미로운 점이 있다. 일련의 과정을 유심히 지켜보면 FIFA의 '중동 견제'도 읽을 수 있다. 정몽준 회장이 자리를 비운 이후 AFC는 중동의 독무대나 다름없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인판티노 회장도 중동을 향한 시선이 곱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권력 이동'이 본격화 되고 있는 셈이다. 동아시아 시대가 다시 열리고 있다. 한-중-일 축구가 동시에 FIFA 최고 의결기구에 진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존의 다시마 고조 일본축구협회장에 이어 정 회장과 장지안 중국축구협회 부회장이 평의회 위원으로 선출됐다.
물이 들어왔을 때 노를 저어야 한다. 정 회장의 꿈도 구체화 시킬 절호의 기회다. 그는 지난 3월 한국과 중국, 일본, 북한과 함께 2030년 월드컵을 공동 개최하고 싶다는 뜻을 피력했다.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충분히 실현 가능한 바람이다.
2026년 월드컵부터 본선 출전국이 32개국에서 48개국으로 늘어난다. 단독 개최가 쉽지 않다. 특히 동아시아는 현재 '북핵 위기'로 정세적으로 불안하다. '스포츠 협력'을 통한 동아시아 4개국 월드컵 공동 개최는 정치적 위기를 해소할 최고의 카드다. 월드컵이 불안정한 동북아에 평화의 장막이 될 수 있다.
"국제 무대에서 한국 축구의 영향력과 외교력을 높이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 아시아 축구의 무궁무진한 발전 가능성이 현실로 이어질 수 있도록 FIFA에서 앞장서 목소리를 내겠다." 정 회장의 포부다.
동아시아를 넘는 아시아 축구의 새 판 짜기. 그 중심에 정 회장이 있었으면 한다. 이제 막 터널을 통과한 한국 축구의 위상과 발전을 위해 반드시 그래야 한다.
모바일 팀장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