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주면 물먹고, 비 오면 비 맞았으니 이젠 꽃 피우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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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저 축구할래요." 이 한 마디에 권용현의 집은 난리가 났다. 부모님이 만류했다. "용현아. 하던 거 잘 하고 있는데 진득하게 해봐야지."
권용현은 태권도 유망주였다. 뛰어난 체력, 빠른 발놀림에 센스가 좋았다. 메달도 많이 땄다. 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발육이 더뎠다. 권용현은 "솔직히 태권도 실력은 괜찮았다. 하지만 신체적인 한계가 있다는 걸 느꼈다"며 "키 크고 다리 길어야 하는데 난 그렇게 될 것 같지 않았다"고 했다.
▶부모님의 희생 알게 된 떠돌이
한 곳에 오래 정착한 기억이 없다. 권용현은 인천 태생. 초등학교 입학은 경기도 파주에서 했다. 태권도를 접고 축구를 택했던 중학교 2학년 땐 시흥시로 넘어가 능곡중학교에서 공을 찼다. 권용현은 "내가 생각해도 여기 저기 많이 옮겨갔다"고 했다. 권용현은 군포시에 위치한 용호고에서 뛰었고, 대학교는 전북 군산에 위치한 호원대로 갔다. "익숙해질 만하면 떠나고, 정들 만하면 이별했다."
부모님과 떨어져 지낸 세월, 떠돌이 축구 인생. 권용현은 축구만 알았다. 팀 일정으로 집에 자주 갈 수도 없었다. 필요한 용품을 살 수 있고, 학비 꼬박꼬박 나오니 '집에 큰 문제 없구나' 싶었다. 어쩌다 한 번 집에 들른 대학생 권용현. 자신의 생각과 달리 기운 가세에 놀랐다. "아버지는 보습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고, 어머니도 피아노 학원을 하셨다. 유복하진 않아도 부족함은 없다 생각했는데…." 다시 말을 이어갔다. "장학금 받아본 적도 없는데 부모님께서 나만을 위해 모든 걸 포기하셨다는 걸 알았다. 내가 공을 차는 동안 정말 많은 돈이 들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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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돈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래프트를 신청했지만 낙방. 테스트로 눈을 돌렸다. 딱 한 곳 남아있었다. 바로 천안시청. "용호고 운동장서 운동하다가 내셔널리그에 계셨던 지도자분께서 제안을 해 테스트를 봤고 다행히 합격했다."
그런데 날벼락이 떨어졌다. 권용현은 "갑자기 천안시청 감독님이 경질되면서 테스트를 다시 했다. 100명 이상 지원자가 몰리면서 천안축구센터 대관이 안돼 다른 곳에서 했다"며 "매일 테스트하고 걸러지고 사우나에서 자고를 반복했다"고 말했다.
최종까지 갔다. 때는 2012년 1월 7일. 피 말리는 기다림, 권용현의 집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시침이 오후 5시를 가리켰다. 권용현은 굳게 닫힌 아버지의 방문을 열었다. "아빠 저 붙었어요."
공교롭게도 이날은 아버지의 생신이었다. "우리 용현이가 아빠 생일이라고 선물 줬구나. 축하하고 고맙다. 너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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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시청을 거쳐 수원FC에서 맛 본 승격의 기쁨은 어느새 기억 저편에 있다. 2016년 제주로 이적하며 쌓인 자신감은 모래성이었다. 수원FC 임대 시절 맹활약도 소용없다. 돌아온 제주에 권용현은 없었다. '돌풍의 팀', '우승 다크호스'의 화려한 제주.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는 짙다. 그 이면에서 권용현은 펑펑 울었다.
또 짐을 쌌다. 경남 유니폼을 입었다. 솔직히 아쉽다. 눈물도 채 마르지 않았다. 그런데 다시 활짝 웃는다. 이별과 새 만남이 너무나 익숙한 그는 천생 떠돌이다. 그리고 아직 피지 않은 꽃이다. 권용현이 웃으며 말했다. "물도 많이 먹고 비도 많이 맞았어요. 따스한 관심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경남은 정말 좋은 땅이네요. 저도 이제 꽃 좀 피우겠습니다."
임정택 기자 lim1st@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