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전 국가대표팀 수비수 이기제(34·메스 라프산잔)가 무사히 이란 국경을 벗어나면 이란 축구와도 완전히 '작별'할 것으로 보인다.
이기제측 관계자는 2일, 이기제가 미국,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과 관련해 라프산잔 구단과 계약해지할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지금은 선수가 안전하게 돌아오는 게 최우선이다. 그다음 여러가지 방안을 생각하면서 대책을 꾸릴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까지 K리그 수원 삼성에서 활약한 이기제는 지난 1월 이란 프로리그(1부) 소속 라프산잔과 계약을 체결했다. 주전 측면 수비수로 꾸준히 활약하던 이기제는 지난달 22일 트락토르와의 리그 17라운드에서 왼쪽 미드필더로 데뷔전을 치른 후 조바한, 샴스 아자르, 에스테그랄 쿠제스탄, 파이칸 등과의 경기에 연속해서 출전했다.
이기제는 29일 알루미니움 아락과의 홈 경기도 정상적으로 준비했다. 라프산잔이 27일 공식 인스타그램에 올린 선수단 훈련 사진에 이기제의 모습도 담겼다.
AFP연합뉴스
하지만 경기 하루 전, 이란 정세가 최악으로 치달았다. 미국이 이란과의 핵 협상이 교착되면서 소위 '장대한 분노 작전'이라고 명명한 이란에 대한 군사작전 펼치고, 이란이 즉각 반격에 나섰다. 이란 최고지도자인 하메네이가 1일 폭격에 의해 사살됐다. 현지에선 '중동전쟁'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란 등 중동에서 뛰는 선수들은 속속 '탈출 러시'를 감행하고 있다. 이기제 역시 발빠르게 한국 교민들과 함께 주이란 한국 대사관으로 긴급 대피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기제는 다행히 미국의 공습을 앞두고 미국과 이스라엘의 폭격이 집중되는 이란 수도 테헤란을 떠나 홈 경기를 치르기 위해 라프산잔으로 이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테헤란과 라프산잔은 1000km가량 떨어져있다.
관계자는 "이란 내에서 가장 안전한 시설이 우리나라 대사관이다. 그곳에서 안전하게 잘 지내고 있다"며 "무섭긴 하지만, 상황이 금방 좋아질 건 아닌 것 같다. 선수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최대한 빠르고 안전하게 귀국하자는 생각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동 동선, 귀국 일자 등은 보안상의 이유로 함구했다.
출처=황인범 인스타그램
4년 전 이기제와 비슷한 케이스를 겪은 한국 선수가 있었다. 홍명보호 핵심 미드필더 황인범(페예노르트)이다. 황인범이 러시아 클럽 루빈 카잔에서 뛰던 2022년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다. 황인범이 발가락 부상 치료차 일시 귀국해 치료에 집중하는 사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무력 침공했다.
이에 국제축구연맹(FIFA)은 러시아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들의 피해를 막기 위한 특별규정을 발표했다. 카잔은 4월부터 6월까지 황인범과 계약을 일시 중단한다고 발표했고, 황인범은 졸지에 '임시 자유계약선수(FA)' 신분을 얻어 새로운 팀에서 뛸 수 있는 상황이 됐다. 황인범은 국내 클럽인 FC서울의 러브콜에 서울과 단기계약을 체결했고, 같은 해 7월 그리스 올림피아코스로 이적해 다시 유럽 무대로 돌아갔다.
관계자는 "황인범의 사례와 비슷한 듯하다. 이번 사태로 이란 리그가 무기한 중단됐다. 팀에서 선수를 붙잡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FIFA 규정에 의하면, 선수가 훈련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으면 계약해지가 가능하다. 여러가지 방법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15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 자심 빈 하마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대한민국과 바레인의 경기. 이기제가 패스를 시도하고 있다. 도하(카타르)=박재만 기자 pjm@sportschosun.com/2024.01.15/
이기제가 라프산잔에 입단한 지난 1월 이란에선 반정부 시위가 거세게 일었다. 미국, 스페인, 이탈리아 등은 자국민 철수를 촉구했다. 한국 정부도 여행경보 3단계(출국 권고)를 발령했다. 이에 일각에선 굳이 많고 많은 리그 중 왜 이란을 택했느냐고 의문을 던진다.
관계자는 "라프산잔의 설득력이 있는 오퍼를 받고 결정을 내렸다. 이런 상황이 펼쳐질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