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포판(멕시코)=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대한민국 월드컵대표팀 멘털코치인 한덕현 중앙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 교수는 월드컵 첫 경기를 마치고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한 교수는 16일(이하 한국시각) 멕시코 과달라하라 인근 사포판의 대표팀 훈련장인 치바스 베르데 바예에서 취재진과 만나 "첫 경기를 마치고 스승님께 메일을 보냈다. '스포츠심리학의 상식이 무너졌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월드컵 첫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는 부담감 때문에 생각지도 않은 행동을 하기 마련인데, 이기혁(강원) 등 처음 뛴 선수들은 신세대라서 그런지 그런 게 없었다. 이기혁과 첫 면담에서도 그런 징조가 없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경기장에서 잘 뛰었다. 데뷔하는 선수답지 않게 신체적, 정신적으로 잘 대비를 했다"라고 놀라움을 표했다.
이기혁에게만 나타나는 심리 상태는 아니다. 한 교수는 "선수단의 현재 심리 상태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스테이블(Stable·안정)이다. 1차전에서 승리했다고 흥분하거나, 2차전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자만하지 않는다. 스포츠 심리학에서 그걸 게임을 준비하고 즐기는 단계라고 표현하는데, 대표팀 선수들이 지금 그 상태에 놓인 것 같다"라고 했다. 안정감 속에서 즐기는 것만큼 무서운 게 없다. 다만 소집기간이 근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선수가 있는 만큼 '잘 쉬는 법, 지루함에 대처하는 법. 부상 스트레스를 줄이는 법' 등에 대해서 면담을 통해 조언한다고 했다.
월드컵대표팀은 12일 에스타디오 과달라하라에서 열린 체코와의 2026년 북중미월드컵 조별리그 A조 1차전에서 2대1 승리했다. 32강 진출의 5부 능선을 넘은 대표팀은 19일 같은 경기장에서 멕시코와 조별리그 2차전을 펼친다. 멕시코는 체코보다 객관적 전력이 뛰어나다. 개최국에서 열리는 만큼 멕시코 홈팬의 일방적인 응원이 예상된다. 대한민국 선수단 입장에선 여러모로 부담스러운 경기가 될 터.
한 교수는 "몇만 명의 팬이 일방적으로 응원을 하면 퍼포먼스가 위축이 되지 않을까 하고 선수들에게 거꾸로 물어봤다. 그랬더니 선수들이 오히려 저를 위로했다. '그때는 이렇게 준비하면 돼요'라고 한다. 몇십 년 전에 처음 월드컵 출전할 때야 일방적인 응원에 위축이 됐지만, 지금은 이미 많은 선수가 유럽에서 몇만 명 관중 앞에서 뛰는 경험을 했다"라고 현재 선수단 심리 상태로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한 교수는 이번 월드컵대표팀을 '멘털적으로 준비가 잘 된 팀'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스포츠 정신의학에 입문한지 25년째다. 그동안 올림픽대표팀, 야구대표팀, 축구대표팀 등을 맡아보면서 이게 되는 팀인지를 어느정도 알 수 있다. 밖에서 이 팀(홍명보호)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든, 지금 이 팀은 2년 동안 차곡차곡 준비한 것들이 행정적으로, 심리적으로 안정돼 보였다. 출국 몇 달 전 다같이 모였을 때 '이 팀은 된다'라고 말한 이유"라고 했다. 이어 "홍명보 감독은 워낙 경험이 많아서인지 선수들 심리를 잘 안다. 1차전 때 선수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2차전 때 어떻게 이끌지, 1차전에 이겼을 때와 졌을 때 어떻게 준비할지를 잘 알고 있다. 홍 감독은 1차전에서 승리한 이후로도 선수들 긴장감이 떨어지지 않으면서 모멘텀이 유지될 수 있도록 말씀을 잘하신다. 난 코치진과 집단 멘털에 대해 협력을 하고 있다"라고 했다.
한 교수는 월드컵 준비 기간에 꽉 짜인 스케줄을 소화한다. 조식 후 코칭 스태프와 미팅을 한다. 오후 훈련에 참관해 선수 상태를 살핀 뒤, 선수 면담을 위한 관찰 자료를 만들고, 오후에 선수 4~5명과 면담을 한다. 저녁 식사 후에도 스탭 미팅에 참여해 팀이 어떤 전략과 전술로 임하는지 확인한다. 한 교수는 "내가 전략, 전술을 이해해야 선수들이 어떤 집중력, 어떤 이해력을 갖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라고 했다.
요새 선수단 사이에서 '하던대로 하자'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한 교수는 "1차전을 앞두고 고참 선수들에게 만약 후배들이 경기에 어떻게 뛰어야 하느냐고 물어보면 '하던대로 하자'라고 말을 맞추자고 했다. 월드컵 1차전이니까 '죽을힘을 다해서 멘탈 불태우자' 이런 거 말고 '하던대로 하자'고 말하자고 주문했다"라고 했다. 비장한 각오 대신 늘 하던대로 부여받은 임무를 해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월드컵대표팀은 1차전과 2차전을 같은 경기장에서 치른다. 한 교수는 "스포츠 심리 교과서에 따르면, 한 번 뛰었던 경기장에서 또 뛰면 굉장히 유리하다. 한 번 뛰었던 경기장에서 좋은 퍼포먼스를 보이면 그걸 (뇌가)기억해놓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수들은 잔디, 공 움직임 등 외형적인 요인만 아니면 경기장 자체는 큰 영향이 없다고 하더라"며 했다. 한 교수는 선수들의 멘털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연일 태극전사들의 남다른 멘털에 놀라고 있었다.
사포판(멕시코)=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