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불면 함박웃음을 짓던 아웃도어 시장이 올해는 찬바람 시즌이 됐음에도 울상을 하고 있다. 경제 불황과 포화된 시장에서의 지나친 경쟁, 춥지 않은 겨울이란 악재가 겹치면서 아웃도어 시장에 한파가 닥쳤다. 불과 몇 년 사이에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로 아웃도어 시장이 빠르게 변했다. 100만원 넘는 고가 패딩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던 게 불과 몇 년 전이었다. 한때 청소년들 사이에서 고가 패딩이 유행하면서 부모님을 힘들게 만든다고 해, '등골 브레이커'란 오명이 생길 정도로 아웃도어는 인기였고, 이슈였다. 그렇게 아웃도어는 중장년층의 등산복에서 벗어나 10대 청소년들까지 찾을 정도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전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다. 백화점과 대형마트는 물론 길거리에도 '아웃도어 폭탄세일' 현수막을 찾는 게 어렵지 않다. 그런데도 잘 팔리는 곳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아무리 두꺼운 패딩을 입어도 한번 차가워진 아웃도어 시장은 따뜻해질 기미가 없다.
당장 올해 겨울은 역대 3번째로 강력한 엘니뇨 영향으로 예년보다 따뜻한 날씨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기상청에 따르면 11월 서울지역 평균 기온이 11.7도로 지난해 같은 기간 평균기온보다 약 2.7도나 높다. 올해 서울 첫눈은 예년보다 4일 정도 늦었고, 11월 수능 한파도 없었다. 이런 따뜻한 날씨에 고가의 '헤비다운'(충전량이 약 300g이상 되는 부피가 크고 보온성이 강화된 다운) 패딩을 구입하는 소비자는 줄 수밖에 없다.
그동안 아웃도어 브랜드에게 효자 상품은 50만원을 넘어가는 고가의 헤비다운 패딩이었다. 그런데 따뜻한 겨울 날씨 때문에 헤비다운의 인기가 급락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헤비다운에서 경량다운으로 아웃도어 트렌드가 바뀌었다. 특히 유니클로 등의 SPA 브랜드들이 저렴한 가격의 경량다운을 주력 상품으로 판매하면서 고가의 헤비다운 인기는 더 떨어졌다.
게다가 스마트해진 소비자들은 고가의 해외 명품 아웃도어 제품을 해외직구로 싸게 구입하기 시작했다. 국내 시장에서의 경쟁도 치열한 상황에서 해외직구와 가격 경쟁을 벌여야 하는 처지가 됐다. 판매는 줄고 재고는 쌓이는 상황이다. 11월부터 신제품으로 출시한 아웃도어 브랜드들의 헤비다운 패딩이 팔려야 하는데, 판매가 원활하지 못하면서 신제품이 바로 재고가 되는 현상으로 이어졌다. 벌써부터 재고 소진을 위해 신제품 세일은 기본이고, 이월제품처럼 50% 이상 할인 판매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신세계·롯데프리미엄아울렛 등은 아웃도어 특가전을 열어 최대 70% 할인 행사까지 열고 있다. 고가로 판매하던 구스다운 제품을 10만원대에 판매하고 있다.
대기업들도 아웃도어 시장 철수 중
아웃도어 시장은 지난 10년 간 매년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하며 가파르게 성장을 했다. 한국아웃도어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 2005년 이후 2012년까지 25~36% 성장률을 기록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그러나 2013년 10%대 성장률을 기록하며 주춤하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두 자릿수 성장률을 보였다. 그러나 지난해 아웃도어 시장 성장률이 9.4%를 기록하며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매년 1조원씩 성장하던 아웃도어 시장은 2013년 6조9000억원을 기점으로 정체에 빠졌다.
실제로 지난해 블랙야크는 매출 5724억원, 영업이익 810억원을 기록했지만 전년 대비 매출 1.4%, 영업이익 26.7%가 줄었다. 네파는 지난해 매출 4732억원으로 전년 대비 0.6% 성장하는데 그쳤지만, 영업이익은 21.4% 급감한 929억원을 기록했다. K2코리아도 지난해 매출액은 전년보다 2% 늘어난 4074억원을 기록했지만, 영업이익은 21% 줄어든 935억원을 올렸다. 밀레는 지난해 매출 3061억원으로 전년대비 7.8%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268억원으로 전년 대비 50% 정도 줄어든 수준이다. 아웃도어 시장 1위 브랜드 노스페이스를 판매하는 영원아웃도어의 올해 1~3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9.9% 감소한 2114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80%나 급감해 59억원에 머물렀다.
아웃도어 브랜드들의 실적만 나빠지고 있는 게 아니다. 실제로 올해 아웃도어 제품들의 판매 실적은 더욱 나빠지고 있다. 11월 들어 롯데·신세계백화점의 아웃도어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9% 이상 감소했다. 롯데백화점은 11월 아웃도어 매출이 전년 동기대비 9.3% 줄었고, 신세계백화점은 아웃도어 매출이 9.1% 하락했다. 현대백화점 역시 11월 아웃도어 매출이 전년보다 2.7%로 하락했다. 유통가에서도 아웃도어 판매가 줄고 있는 중이다.
아웃도어 시장이 이렇다 보니, 철수를 하는 브랜드들이 생겨나고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지난 2013년 들여온 프랑스 아웃도어 브랜드 '살로몬아웃도어'를 올해를 마지막으로 사업을 접기로 결정했다. 톱스타를 내세워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지만 정체에 빠진 아웃도어 시장을 돌파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여기에서 연간 100억원의 적자를 냈다. 휠라코리아 역시 야심차게 아웃도어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5년 만에 사업을 정리했다. 휠라는 최근 정구호 디자이너를 부사장으로 영입해 브랜드 변신을 꾀하면서 실적이 떨어지는 아웃도어를 정리하기로 결정했다. 금강제화는 5년 동안 전개했던 노르웨이 아웃도어 브랜드 헨리한센의 국내 판권 연장 계약을 포기했다. 100년을 자랑하는 스웨덴 아웃도어 브랜드 하그로프스는 국내에서 별도 법인으로 운영되다가, 최근 시장이 나빠지자 글로벌 차원에서 아식스코리아로 통합시켜버렸다.
국내 브랜드들 역시 고전을 겪고 있다. 패션그룹 형지는 실적 악화의 원인인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케이프'와 '와일드로즈'의 아웃도어 제품 비중을 30%대까지 낮췄다. 삼성물산의 빈폴아웃도어 역시 기대에 못 미치는 상황이다.
아웃도어는 골프웨어와 애슬레저로 대체 중
길을 잃은 아웃도어 시장을 대신해 그 자리를 노리고 있는 시장들이 생기고 있다. 중장년층의 등산복으로 시작된 아웃도어 시장을 이끈 핵심 소비자들인 중장년층의 시장 이탈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중장년층 소비자들은 아웃도어 활황기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웬만한 의류와 장비들을 갖췄다. 기본적으로 등산바지를 비롯해 등산화, 모자, 장갑, 패딩재킷, 등산배낭, 바람막이, 티셔츠 등 아웃도어 제품들을 종류별로 대부분 구비하고 있다. 동네 뒷산을 올라가도 아웃도어 제품들로 풀 착장(着裝)을 한 중장년층을 보는 게 어렵지 않다. 그리고 아웃도어 의류를 일상복처럼 입고 다니는 중장년층도 상당수다. 이렇게 아웃도어 제품들을 살만큼 산 중장년층 소비자들에게 아웃도어 브랜드가 더 이상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식상한 아웃도어 패션에서 벗어나고픈 중장년층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게 바로 골프웨어다.
이런 변화를 감지한 아웃도어 브랜드 K2는 지난해 9월부터 골프웨어 와이드앵글을 론칭해 이들을 빠르게 공략하고 있다. 와이드앵글은 론칭 6개월 만에 매출 140억원을 돌파했고, 올 상반기에만 매출 250억원을 달성했다. 2016년엔 매출 1100억원을 목표로 할 정도로 급성장세다. 형지가 지난 3월 론칭한 프랑스 골프웨어 까스텔바작은 8개월만에 100호점을 돌파하며 역시 인기를 끌고 있다. 프랑스의 젊은 패션 감각을 내세워 3040 골프족을 공략중이다. '인디안'으로 유명한 세정은 지난해 9월 '헤리토리 골프'를 론칭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현재 세정은 아웃도어 브랜드 '피버그린' 판매 비중을 줄이고, '헤리토리 골프' 비중을 늘리고 있다.
아웃도어 관계자는 "아웃도어보다 골프웨어 수요가 늘고 있다. 이미 업계에서는 아웃도어 다음 시장이 골프웨어라고 얘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장년층이 골프웨어로 이동 중이라면, 2030 젊은 소비자들은 애슬레저(athleisure)로 패션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 애슬래저는 '애슬레틱'(운동경기)과 '레저'(여가)의 합성어로 요가·조깅 등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가벼운 스포츠를 말한다. 최근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스마트워치 등의 웨어러블 기기가 인기를 끌면서 애슬래저 시장이 함께 성장하고 있다. IT업체들이 TV CF 등에서 애슬레저 의류를 입고 웨어러블 기기를 착용하고 운동하는 젊은 남녀의 모습을 수시로 비쳐주고 있다. 트렌드에 민감한 2030세대 사이에선 이미 애슬레저 룩이 아웃도어 시장을 대체하고 있다.
아웃도어 브랜드 밀레의 세컨브랜드 '엠리밋'은 내년부터 아웃도어 대신 스포츠 브랜드로 전격 전환한다. 피트니스, 요가, 러닝, 하이킹, 워터스포츠 등 분야를 넓혀 다양한 제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블랙야크의 세컨브랜드 마모트 역시 아웃도어가 아닌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코오롱의 헤드 역시 애슬레져 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 외에도 타미카퍼 등 다양한 애슬레저 브랜드와 전문 편집숍 더 랩 108등이 생겨나면서 애슬레저 시장을 이끌고 있다. 지난해까지 애슬래저 시장은 약 4000억원 규모였지만, 2018년엔 2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박종권 기자 jkp@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