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교보·한화 빅3 생보사, 시효 지난 '자살 보험금' 지급 딜레마

기사입력 2016-12-08 08:46


지난 5월 권순찬 금융감독원 부원장보가 '자살 보험금'과 관련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초부터 논란이 일었던 '자살 보험금' 지급과 관련해 삼성생명·교보생명·한화생명 등 빅3 생명보험사(생보사)들이 고민에 빠졌다. 대법원이 자살 보험금은 지급해야 하지만 시효가 지난 건에 대해서는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판결을 내린 반면, 금융감독원은 "시효가 지난 건에 대해서도 지연 이자까지 더 해 무조건 지급하라"며 불이행 시 중징계 제재를 통보했기 때문.

금감원은 지난달 28일 삼성생명과 한화생명, 교보생명, 알리안츠생명에 중징계를 내리겠다고 최후통첩을 보냈다. 중징계는 보험업 '인허가 취소'나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해임권고' 등 강력한 제재를 포함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알리안츠생명은 지난 5일 이사회를 열고 그동안 지급을 미뤄왔던 자살 보험금 전액을 지급하겠다며 백기를 들었다.

금감원은 중징계와 관련해 빅3 생보사들에게 8일까지 의견서를 제출하라고 한 상태며, 빅3 생보사들은 의견서 작성에 고심 중이다. 빅3 생보사 관계자는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음에도 금감원이 강력하게 압박하고 있어 난감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빅3 생보사 외에 현대라이프생명도 자살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고 있지만, 금감원의 현장검사가 끝난 지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아 이번 제재 통보 대상에서는 제외됐다.

가입은 고객 마음, 지급은 보험사 마음?

문제의 발단은 '자살특약'이다. 생보사들이 2010년 4월 이전에 판매한 재해사망 특별계약 상품 약관에는 '가입 2년 후에는 자살 시에도 특약 보험금을 지급한다'고 명시돼 있다. 2014년 고객들이 이 자살특약에 의거해 보험금지급을 요청하자 생보사들은 이 약관이 실수였다며,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이에 고객들이 금감원 등에 민원을 제기했고, 금감원은 생보사들에게 보험금 지급을 권고했으나 생보사들은 이를 이행하지 않고 법적 대응에 나섰다. 업계 관계자는 "당시 국내 보험사들은 '자살보험'에 대한 노하우가 없어 외국계 보험사의 약관을 그대로 가져다 사용했는데 그것이 이제 와서 문제가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2년을 끈 법적 소송은 지난 5월 12일 대법원이 교보생명에게 미지급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림에 따라 일단락되는 듯 했다. 하지만 생보사들과 금감원 간의 대립은 사실상 이때부터 본격화됐다. 생보사들이 소송기간 동안 이미 보험금 지급시한이 지났다며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에 금감원은 지난 5월 23일 생보사들에게 자살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권고했다. 당시 금감원은 소멸시효 경과 건은 물론 소송으로 인해 늦어진 시간만큼 이자까지 더해서 지급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생보사들은 소멸시효 경과 건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나오기 전에는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며 또 다시 버티기에 들어갔다.


이런 와중에 지난 9월 대법원이 "소멸시효가 지난 경우 지급 의무가 없다"는 판결을 내놓음에 따라 현행법으로는 시효가 지난 자살 보험금을 지급하도록 할 방법이 없게 됐다.

미지급금, 삼성 순이익 13%… 교보 18%

결국 금감원이 지난달 중징계라는 극약처방을 꺼내들었다. 극약처방에 가장 먼저 백기를 든 것은 중국 안방보험이 인수한 알리안츠생명이다. 인수 과정을 진행 중인 알리안츠생명으로서는 금융당국의 눈 밖에 나면 곤란한 처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알리안츠생명이 지급해야 할 자살 보험금 규모는 금감원이 지적한 지급지연 이자를 포함해 약 130억원대로 추정된다.

현재 빅3 생보사 가운데 지급하지 않은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 보험금 규모가 가장 큰 곳은 삼성생명이다. 3분기 기준 삼성생명이 지급해야 할 금액은 1608억원이다. 이는 삼성생명의 9월 기준 순이익(일회성 요인인 삼성카드 염가매수차익을 제외) 1조2345억원의 13%에 달한다.

교보생명의 미지급 자살재해사망보험금은 2분기 기준으로 1134억원이다. 교보생명이 지난 3분기까지 집계한 순이익 6076억원의 18.66%에 해당한다. 한화생명은 두 회사보다는 규모가 작은 900억원대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영업에 큰 지장을 줄 수 있는 중징계 제재 조치가 확정되기 전에 자살 보험금을 지급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늦더라도 지급하면 제재를 경감해준다"는 금감원의 원칙이 전해지며 10개 보험사가 소멸시효에 관계없이 자살 보험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지난달 메트라이프·흥국생명·신한생명·에이스생명·PCA생명 등 5개 보험사는 100만~6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는 가벼운 징계로 마무리됐다. 이에 따라 최근 백기를 든 알리안츠생명도 제재 수위가 조정될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의견서 제출 시한을 코앞에 둔 빅3 생보사들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이목이 모아진다.
이규복 기자 kblee341@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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