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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번의 심정지 고교생 기적 회복…"조종사 꿈 다시 꿔요"

최종수정 2022-03-21 11:23

"나중에 커서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자유롭게 푸른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고 싶어요."

급성 심근염으로 쓰러진 15세 소년이 6번의 심정지 끝에 회복되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21일 가천대 길병원에 따르면 고교생 한가람군(15)은 지난 1월 26일 오후 9시쯤 현기증과 구토 증상 등을 호소하며 병원 응급실로 실려 왔다.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응급실에서 검사와 치료를 받던 중 첫 번째 심정지가 발생했다. 수차례 이어진 심폐소생술 덕분에 멈췄던 심장이 돌아왔지만, 증상은 갈수록 악화됐다. 짧게는 10분, 길게는 1시간 간격으로 심정지가 계속됐다. 한 군의 심장은 멈췄다가 극적으로 소생되기를 무려 6번이나 반복했다. 심장 박동을 빠르게 하는 강심제, 혈압을 높이는 승압제 등 수많은 심장치료 약물을 투여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한 군의 심장은 심장 근육에 염증성 물질이 침범하며 발생하는 심근염이 빠르게 진행돼 심장의 전기적 신호전달체계가 완전히 망가지면서 느린맥(완전방실차단)으로 인한 심정지와 빠른맥(심실빈맥, 심실세동)으로 인한 심정지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상태였다. 심폐소생술과 약물 치료가 몇 시간 동안 이어졌다.

이때 긴급하게 연락을 받은 심장내과 위진 교수가 환자 상태 확인 후 곧바로 임시 심박동기 삽입을 결정했다. 다행히 임시 심박동기 삽입 후 박동 수가 유지되면서 더 이상 심정지는 발생하지 않았고 혈압도 비교적 안정을 찾았다. 심장 초음파에서도 심장의 수축력이 유지됐지만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소변량이 점차 감소하고 체내 젖산 수치가 계속 오르는 등 장기로 가는 혈류가 감소하는 심각한 '저관류' 상태로 판단됐기 때문이다.

위 교수는 "심장 초음파를 시행해보니 불과 몇 시간 전에 비해 심장이 거의 뛰지 않는 중증 심장성 쇼크 상태였다"며 "진행 속도가 매우 빠르고 예후가 나쁜 '전격성 심근염'으로 판단돼 지체 없이 체외 심폐 순환기(ECMO·이하 에크모) 시술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소변이 거의 나오지 않아 혈액투석까지 고려했던 한 군은 에크모 시술 이후 혈압이 안정화되면서 소변량도 정상화되고 체내 젖산 수치도 감소했다.


에크모는 환자의 혈액을 체외로 빼낸 뒤, 펌프를 통해 환자에게 다시 넣어 혈류를 순환시켜 주는 생명 유지 장치다. 심장이 거의 뛰지 않는 사망 직전의 상황에서 사용하는 장치로 고도의 전문성과 풍부한 경험을 필요로 한다. 특히 환자의 심장기능이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기 전 에크모 시술여부를 빠르게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에크모 치료를 시작하고 일주일 동안 한 군의 심장 기능은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심장, 폐, 신장 등 주요 장기의 기능이 상당 부분 회복되어 지난 2월 3일에는 에크모를 제거하고 다음날엔 인공호흡기까지 뗄 수 있었다. 그제야 의료진은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한 군의 아버지는 "공군사관학교를 목표로 열심히 준비하던 아들이 다시 하늘을 나는 꿈을 펼칠 수 있게 됐다"며 "24시간 아들 곁을 지킨 의료진들의 헌신으로 새로운 생명을 얻게 돼 눈물이 날 정도로 감사하고 기쁘다"고 전했다.

이후 모든 장기의 기능과 의식까지 완전히 회복되어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겨진 한 군은 소아청소년과 안경진 교수의 진료와 혈관외과에서 추가적인 치료를 받았다. 심장이 여러 번 멎었던 상태였지만 뇌 MRI 및 뇌파 검사 등에서 우려했던 후유증도 없었다. 한 군은 누구보다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해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갔다.

위진 교수는 "심정지가 6번이나 계속되면서 고비가 많았지만, 한 군의 강한 의지와 부모님의 기도와 의료진에 대한 신뢰 덕분에 힘든 순간을 이겨낼 수 있었다"면서 "환자, 가족, 의료진 모두가 함께 살려낸 기적 같은 생명"이라고 말했다.
장종호 기자 bellho@sportschosun.com


한가람 군(왼쪽에서 3번째)이 가천대 길병원 심장내과 위진(오른쪽에서 3번째), 소아청소년과 안경진(오른쪽에서 2번째) 교수, 가족들과 퇴원 기념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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