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품구매사기' 급증에도 경찰 대응 체계 허술…피해자 전전긍긍

기사입력 2025-11-17 08:18

[장현경 제작] 일러스트
[연합뉴스 자료사진]
112 신고 무용지물·대응 미적미적…일선 경찰 "현실적 한계"

(화순=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공무원이나 공공기관을 사칭한 '물품 구매사기'가 확산하고 있지만 경찰의 대응 체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전남 화순경찰서 등에 따르면 화순군 소재 제조업체에 근무하는 A씨는 지난 10일 보성군청 공무원을 사칭한 사람에게서 긴급 발주 요청을 받았다.

그는 A씨 회사에서 군청에 납품했던 제품을 덮어놓을 방수포가 필요하다며 특정 업체에서 구매해 납품해 달라는 것이었다.

A씨는 별다른 의심 없이 물품 대금으로 1억3천500만원을 5차례에 걸쳐 특정 업체에 입금했다.

그러나 배송 상황을 확인하던 A씨는 연락이 제대로 닿지 않자 보성군청에 연락해봤다가 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A씨는 곧바로 112에 신고했다.

자신이 입금한 돈이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조치하는 것이 시급했던 A씨가 의지할 수 있었던 곳은 경찰뿐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경찰은 A씨가 신고한 장소로 파출소 직원을 출동시켰다.

112 신고가 접수되면 현장 출동이 원칙이라지만, 사기 피해자인 A씨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는 조치였다.

A씨를 찾아온 파출소 소속 경찰관들은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며 관할 경찰서를 찾아가 보라고 친절하게 안내할 뿐이었다.

이들은 A씨가 찾아갈 부서에 미리 연락해 사정을 전달해줬으나 한시가 급했던 A씨로선 골든타임을 낭비하게 된 셈이었다.

곧바로 경찰서를 찾아가 진정서를 작성한 A씨는 다시 한번 경찰의 대응에 답답함을 느꼈다고 했다.

당시 경찰은 사기범 계좌의 입출금을 중지시켜달라는 공문을 은행 측에 팩스로 보냈는데 은행 업무시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처리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다.

이 공문이 제대로 접수됐는지조차 알기 어려웠다.

담당 경찰관이 은행 대표전화로 연결되는 콜센터를 거쳐 담당 지점을 연결하는 식으로 업무처리가 이뤄지고 있는 탓이었다.

다음 날 업무 시간에 다시 찾아갔으나 경찰과 은행 측이 연결된 '핫라인'은 없는 듯 여전히 콜센터를 거쳐 지점과 담당자를 찾아야했다.

그러다보니 A씨는 신고를 한 다음날 오후까지 해당 계좌에 입금한 돈이 남아있는지, 입출금을 못하도록 부정계좌 등록은 이뤄졌는지 등 조치 결과를 알지 못했다.

조급해진 A씨가 강하게 항의하자 경찰은 어렵사리 은행 측에 다시 연락을 취했고, 그제야 부정 계좌 등록이 이뤄졌다는 게 A씨의 주장이다.

더 황당한 일도 경험했다.

A씨가 경찰에서 조서를 작성하고 있을 때 A씨의 회사 전화로 사기범이 다시 한번 접근해왔다.

이 회사는 다른 이름의 법인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를 알지 못한 사기범들이 같은 수법으로 또다시 연락해온 것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A씨는 경찰에 조치를 요구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다"라거나 "112에 신고하라"는 안내뿐이었다고 A씨는 설명했다.

A씨는 "당장 눈앞에서 사기 범행이 벌어지고 있는데 정작 경찰은 손을 놓고 있는 모양새였다"며 "위치추적이든 계좌추적이든 적극적으로 범죄에 대응하는 모습을 기대했는데 실망스러웠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피해가 발생했는데도 신속하게 수사와 조치가 이뤄질 수 없는 구조"라며 "피해자만 전전긍긍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현실적인 어려움을 호소한다.

경찰 관계자는 "신속하게 도움을 주고 싶더라도 정해진 법과 절차에 따를 수밖에 없다"며 "위치 추적이나 계좌 추적을 하기 위해서는 영장을 발부받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최소한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대포폰·대포통장을 활용하는 경우가 대다수인 데다가 피의자가 외국에 있는 경우가 태반이어서 추적·검거도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당사자는 억울할 수 있겠으나 피해 사실을 증명하기 전까지 경찰 입장에서는 일방의 주장이기도 하다"며 "경우에 따라 신고자가 악의적으로 상대방을 허위·과장 신고할 수도 있는 만큼 신고가 들어왔다고 해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어떤 조치를 하는 것도 부담"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A씨의 경우처럼 물품 구매 사기 피해는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전남에서만 모두 224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경찰은 이러한 유형의 범죄 피해가 급증하자 올해부터 별도로 발생 통계를 집계·관리하고 있다.

iny@yna.co.kr

<연합뉴스>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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