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들쥐 3천마리 잡고 자기 팔에 주사 꽂아…'한국의 파스퇴르'

입력

[고려대학교의과대학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고려대학교의과대학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고려대학교의과대학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고려대학교의과대학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대서양을 항해하던 크루즈선에서 '한타바이러스' 집단 감염이 발생하면서, 과거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이 바이러스의 정체를 밝혀낸 고(故) 이호왕 박사(1928∼2022)의 업적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1950년대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 병사 약 3천200명이 고열과 신부전, 출혈 증상을 보이며 줄줄이 쓰러졌다.

병명은 '유행성 출혈열'. 1·2차 세계대전 때도 군인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갔지만,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정체불명의 괴질로 불렸다.

이 수수께끼를 해결한 게 바로 '한국의 파스퇴르'로 불리는 이 박사였다.

이 박사는 쥐가 병을 옮긴다는 점에 착안해 환자가 다수 발생한 경기도 동두천 일대에서 들쥐를 채집하기 시작했다. 과정은 험난했다.

연구원들은 군부대 인근에서 쥐를 잡다 간첩으로 몰려 사살당할 뻔하거나, 바이러스에 감염돼 생사의 갈림길에 서기도 했다. 위험 부담에 연구를 포기하려는 이들도 생겼다.

하지만 이 박사는 "한번 감염되면 항체가 생겨 다시는 병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며 치료비와 가족의 생계 등 모든 문제는 자신이 전적으로 책임지겠다고 연구원들을 설득했다. 이들이 목숨을 걸고 채집한 등줄쥐만 약 3천마리에 달했다.

1976년, 7년간의 끈질긴 연구 끝에 이 박사는 한탄강에서 채집한 등줄쥐의 폐 조직에서 병원체를 분리하는 데 성공한다.

발견 지역의 이름을 딴 '한탄바이러스'는 오늘날 관련 바이러스군 전체를 지칭하는 학술용어 '한타바이러스'의 어원이 됐다.

이 박사는 생전 인터뷰에서 "우리 대한민국에서 그런 것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기쁘고 자랑스러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박사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1988년 말 세계 최초로 예방 백신도 개발했다. 그러나 동물실험 단계였을 뿐, 백신의 효과를 검증하려면 인간 임상시험이 필수적이었다.

이에 이 박사를 비롯한 연구진 7명은 직접 자기 팔에 주사기를 꽂았고, 1990년 마침내 세계 최초의 유행성 출혈열 예방 백신 '한타박스'를 출시하는 데 성공했다.

한 명의 과학자가 새로운 병원체를 발견하고 예방 백신까지 모두 개발한 것은 의학사에서 파스퇴르 이후 유례를 찾기 힘든 독보적 성과다.

이에 노벨의학상 후보로 여러 차례 거론됐다.

지금도 국내 군인과 농업 종사자들은 이 박사가 개발한 백신을 접종받는다.

그는 한타바이러스를 발견하고 백신을 만드는 동안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400배 연봉으로 스카우트 제의를 했으나 거절했다. 북한에선 그를 겨냥한 세균전 비방 방송을 보내기도 했다.

제자인 고려대 백신혁신센터 송진원 교수는 스승에 대해 "굉장히 성실하셨던 분"이라고 회고했다.

이 박사가 생전 제자들에게 늘 강조한 것도 '과학자에게 우연이란 성실한 사람, 그리고 노력하는 자에게만 오는 선물'이라는 철학이었다.

현재 송 교수팀은 이 박사를 이어 한타바이러스 백신 개선에 열중하고 있다.

송 교수는 "바이러스 감염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기존의 백신이 개발된 지 35년이 넘은 만큼 이를 최신화해 개량하는 과제가 시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lynn@yna.co.kr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