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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대회에 못나가는 것만 없었다면 당연히 고등학교에 갔겠죠?"
탁구, 테니스 등 라켓 종목의 경우 국제대회 랭킹포인트가 매우 중요하다. 탁구에서 월드클래스 선수로 성장하기 위해선 국제대회에 많이 참가해 경험을 쌓아야 하고, 국제탁구연맹이 인정하는 랭킹포인트를 통해 랭킹도 끌어올려야 했다. 하지만 학생선수의 대회 출전일수를 사실상 제한하는 제도권 교육 속에서 좋아하는 탁구를 마음껏 할 수 없고, 운동선수로서의 꿈도 맘껏 펼치기는 힘들다는 결론. 선택은 실업행이었다. 2019년 6월 스포츠혁신위는 학생선수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출석 인정일수 축소 및 학기 중 주중대회 금지 ▶학기 중 주중 대회의 주말 대회 전환 ▶소년체전 개편을 문체부와 교육부에 권고했고 이에 따라 교육부가 올해 인정한 훈련 및 대회참가를 위한 결석허용일수는 초·중·고 각각 5일, 12일, 25일이다.
신유빈은 올해 초 손목골절 부상으로 인해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서지 못했다. 학교에서 인정하는 결석허용일수의 경우 국가대표 출전대회일 경우 예외가 인정되지만 국가대표가 아닐 경우 사실상 자유로운 국제대회 참가가 불가능하다. 만약 신유빈이 고등학교에 정상적으로 진학했다면 올해 같은 경우, 지금처럼 자유롭게 국제대회에 참가하는 건 불가능하다. 신유빈은 손목 부상 회복 직후 출전한 지난 8월 월드테이블테니스(WTT)튀니지 컨텐더 대회에서 세계랭킹 10위 아드리아나 디아스(푸에르토리코)를 꺾고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국제탁구연맹(ITTF)에서도 '라이징스타'로 주목하는 신유빈의 2022년 8월 말 현재 세계랭킹은 29위다. 내달 5~10일 오만, 13~18일 카자흐스탄에서 펼쳐지는 WTT컨텐더 대회 연속출전을 위해 이번 주말 출국을 앞두고 있다. 귀국 직후엔 일본리그에 나설 계획도 갖고 있다.
요즘 선수들은 스마트하다. 어른들이 말해주지 않아도 운동뿐 아니라 평생 공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신유빈은 현재 방송통신고를 다니며 학업을 병행중이다. 도쿄올림픽 이듬해인 지난해 초 방통고에 입학해 현재 2학년에 재학중이다. 신유빈에 이어 진학 대신 실업행을 택한 장성일, 박규현(이상 미래에셋증권), 김나영(포스코에너지) 등 또래 10대 탁구 동료들과 동문수학중이다. 평소엔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고 2주에 한번씩 출석해 직접 수업을 듣는다. 신유빈은 "(장)성일이가 교실에서 제 앞자리에요. 선생님이 프린트물을 나눠주시면 성일이가 제게 넘겨주는데 그때마다 '어, 얘가 여기서 왜?' 생각해요. 학교에 저보다 나이 많은 어른들도 많으신데 엄청 챙겨주시고 예뻐해 주세요"라며 웃었다.
학생선수로서 온라인 보충수업이나 방학을 이용한 학업 보충 등 맞춤형 지원이 있다면? 이란 질문에 신유빈은 반색했다. "당연히 듣지 않을까요? 운동선수가 운동만 잘하고 그런 건 아니니까요"라고 답했다. 신유빈은 "그런 제도가 생긴다면 정말 감사할 것같아요. 무조건 들을 것같아요"라더니 "그런데 선수마다 다 일정이 다른데 나라에서 맞춰주기가 힘들지 않을까요?"라고 반문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현장과 소통없이 일방적으로 이뤄진 '학생선수 주중대회 참가제한' 정책 폐지를 공약한 데 이어 4월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스포츠혁신위 권고안 전면 재검토 계획을 발표했고 문체부가 혁신위 일부 권고안에 대한 개선책 마련을 발표했다. 현장의 학생선수, 학부모들은 주중 대회 출전 제한 등에 대한 정부의 개선 의지를 환영하고 있다. 이제 중요한 건 '어떻게 개선할 것이냐'다. 교육부도, 문체부도. 체육계도 학생선수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맞춤형' 지원책을 촘촘하게 고민해야 할 중요한 시점이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