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자의 開口]태극전사들이 들려준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

기사입력 2014-10-07 07:25


4일 오후 인천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 2014 인천 아시안게임의 폐막식이 열렸다. '평화의 물결, 아시아의 미래'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16일간의 열전을 거듭한 '제17회 인천 아시안게임'이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리는 폐회식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폐막식에서 성화가 소화되고 있다.
인천=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꽃을 잘 아는 친구가 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친구다. 참 부지런하다. 매일 새벽이면 꽃이야기를 들려준다. SNS를 통해 이런저런 사연을 올려놓는다. 아침이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얼마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금강초롱은 경기도 가평의 명지산 이북지역에서만 자생하는 우리나라 특유의 식물이다. 금강산에서 처음 발견돼 학계에 보고되어 이같은 이름이 붙여졌다. 금강초롱에는 이런 이야기가 얽혀있다.

옛날 금강산 비로봉 아래에 의좋은 오누이가 살았다. 오빠는 이름난 석공이었다. 오빠는 항상 일을 다니느라 집에 붙어 있는 일이 없었다. 하루는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자신의 결심을 동생에게 이야기했다. 금강산의 바위들을 잘 깎아 아름다운 산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오빠는 동생에게 3년을 기약하고 길을 떠났다. 동생은 자나 깨나 오빠를 기다렸다. 3년이 지났다. 오빠는 돌아오지 않았다. 동생은 오빠를 찾아 금강산 골짜기를 헤매다녔다. 그런데 그만 날이 저물었다. 기진맥진했다. 길을 잃었고, 밤하늘에는 달빛 한 점 없었다. 도저히 발길을 뗄수가 없었다. 동생은 '초롱불이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눈물이 떨어진 자리에서 풀이 하나 자라더니 꽃이 피는 것이었다.

그 꽃은 초롱 모양으로 자라 이상한 빛을 냈다. 동생은 그 초롱꽃의 불빛을 따라 다시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길 위에 쓰러져 있는 오빠가 보였다. 오빠는 금강산을 아름답게 장식하고는 너무 지쳐서 그만 산중에서 쓰러졌던 것이다. 동생은 얼른 가서 오빠를 살폈다. 소생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또 한번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오빠는 초롱꽃의 향기를 맡더니 기적처럼 일어났다.

이 후 오누이는 금강산에서 길을 잃은 길손들을 위해 금강산 곳곳에 금강초롱을 심었다고 한다.


인천 아시안게임 펜싱 여자 플러레 단체전 중국과의 결승전에서 공격을 성공시킨 후 환호하고 있는 남현희.
고양=정재근 기자cjg@sportschosun.com

성화가 꺼졌다. 인천아시안게임, 태극전사들은 또 각본없는 드라마를 썼다. 금메달 79개, 은메달 71개, 동메달 84개, 종합 2위. 4년간 흘린 땀방울의 결실이다.

매순간, 대한민국은 감동했다. 무릎에 물이 찼던 남현희, 자랑스런 엄마였다. 딸 (공)하이에게 금메달을 선물했다. 김재범은 왼쪽 손가락 인대가 끊어졌다. 구부리기도 힘들었다. 다른 손가락은 심하게 변형이 됐다. 그 손으로 금빛을 메쳤다. 여자 유도 금메달리스트 정경미, 발걸음을 힘들게 뗐다. 고질인 허리디스크의 통증이 너무 심했다. "감독님, 너무 힘듭니다"라며 몇번을 포기하려 했다. 그 고통, 포기의 유혹을 이겨냈다. 사재혁은 수술을 7번이나 받았다. 어머니는 "이제 그만 바벨을 놓자"며 말렸다. 몰래 수술대에 올랐다. 기적같은 복귀, 하지만 실격당했다. "올림픽 삼세번은 나가야죠." 그는 절대 넘어지지 않는 '오뚝이'다. 남자축구 대표팀은 역대 최약체라는 말을 들었다. 선수들도 인정했다. 그래서 더욱 뭉쳤다. '나'를 버렸다. '팀'을 위해 희생했다. 북한과의 결승전, 연장 종료직전에 쓴 환희의 드라마는 그렇게 나왔다.

대회 운영이 어떠했는지, 목표를 이뤘는지, 그건 다음이야기다. 태극전사들의 투혼은 값졌다. 희생의 아름다움을 전해줬다. 꿈의 소중함을 들려줬다. 포기를 몰랐다. 모두 눈이 부셨다. 성화보다 밝았다.


유도 남자 -81kg 결승전에서 레바논 엘리아스를 꺽고 금메달을 차지한 김재범.
인천=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풀리지 않는, 아니 풀지 않고 있는 세월호 정국, 무엇하나 해결하지 못하는 국회, 치솟기만 하는 전세값, 소통없는 사회…. 참 어둡다. 답답하다. 길을 비춰줄 등불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것 같다.

태극전사들은 꿈을 위해 뛰었다. 아들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 아빠이고 싶었다. 우리를, 팀을 위해 희생했다. 아파도 참았다. 넘어져도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그러면 되지 않을까. 부끄럽지 않은 엄마 아빠가 되고, 우리를 생각하고, 꿈을 꾸고, 또 다시 일어서고. 그러면 우리 주변이 좀 더 환해지지 않을까.

이야기가 거창해졌다. 태극전사들에게 고맙다고, 수고했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이야기가 옆길로 빠졌다. 그러고 보니 태극전사들이 우리에게 준 선물은 감동만이 아닌 듯 하다. 밝은 가르침도 줬다. 자신을 속이지 않는 진정한 땀방울 속에는 배울 것이 참 많다. 정말 감사하다. 다시 한번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친구가 보내준 글을 다시 읽어본다. 오누이는 길을 잃은 길손들을 위해 금강초롱을 심었다고 한다.
신보순기자 bsshin@sportschosun.com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