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펜싱]김정환 패자의 매너"단점 찾아내 값진 경기"

기사입력 2015-03-29 20:56



"패했지만 내 단점을 찾아낼 수 있었기 때문에 값진 경기였다."

'남자사브르 맏형' 김정환(32·국민체육진흥공단)은 29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SK핸드볼경기장에서 펼쳐진 SK텔레콤 펜싱그랑프리 8강에서 프랑스 에이스 니콜라 루세에게 12대15로 석패했다. 구본길 오은석 원우영 오상욱 등 든든한 후배들이 줄줄이 고배를 마신 상황, 김정환은 남녀 대표팀을 통틀어 유일하게 8강에 올랐다. 어깨가 무거웠다. 안방에서 열린 사브르 그랑프리 대회에서 기대치는 높았고, 선수들의 부담감은 그만큼 컸다.

허벅지 부상을 안고 뛴 김정환의 몸놀림은 예상보다 가벼웠다. 8강전 초반 적극적인 공세로 9-6까지 앞서나갔다. 그러나 전광석화같은 스텝을 구사하는 루세에게 잇달아 허를 찔렸다. 10-10, 동점을 허용하더니 10-12로 밀리기 시작했다. 한 포인트를 따라잡은 11-12 상황, 마음이 급해졌다. 두발의 스텝이 교차되는 '파스 아방(Pas Avant)'실책을 범했다. 상대가 비디오 판독을 요청했고 김정환은 레드카드를 받았다. 그러나 다음 스텝에서도 동일한 실수를 저질렀다. 따낸 점수가 깎이고, 점수가 고스란히 상대에게 넘어가며 순식간에 점수차가 11-14로 벌어졌다. 막판 실책 2개가 뼈아팠다. 결국 12대 15로 패했다.

경기 직후 김정환의 매너는 인상적이었다. 역전패에도 불구하고 실수를 겸허하게 인정했고, 미소를 잃지 않았다. 개최국 에이스로서 상대에게 따뜻한 축하를 건넸다. 심판들에게도 일일이 불어로 "메르시(Merci, 고맙다)"라며 인사했다.

"아쉽지 않느냐"는 질문에 김정환은 "물론 아쉽지만, 내 단점을 찾아낼 수 있었기 때문에 값진 경기였다"고 돌아봤다. "마음이 급해지면서, 고쳤다고 생각했던 예전의 나쁜 버릇이 나왔다"고 했다. 이날 레드카드 2개를 받은, 뒤로 두발을 교차하는 동작은 원래 김정환의 '필살기(?)'였다. 김정환은 "원래 앞으로 교차하는 것은 반칙이었지만, 뒤로 교차하는 것은 반칙이 아니었다. 런던올림픽까지 뒤로 교차하는 기술을 자주 썼는데, 이게 반칙으로 규정된 후 열심히 연습을 통해 고쳤다. 완벽하게 고쳤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그것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김창곤 대한펜싱협회 심판이사 역시 "펜싱에서 두발을 나란히 세우지 않고 교차하며 달려나가듯 앞으로 나가는 스텝은 반칙이다. 정환이는 앞으로가 아니라 뒤로 교차하는 스텝을 구사했다. 워낙 유연하기 때문에 세계에서 뒤로 '파스아방'을 할 수 있는 선수는 김정환이 유일할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 상대선수들의 견제가 들어왔고, 세계연맹에서 뒤로 가는 파사방에 대해서도 반칙을 적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정환은 "허벅지 부상이 있어서 메달 욕심을 부리지 않았었는데 오늘 경기가 의외로 잘 풀렸고, 컨디션도 좋았다"고 했다. 안방 부담감이 부진의 요인이냐는 질문에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건 없다. 경기라는 게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는 것 아니냐, 8강도, 깨달음을 준 실수도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웃었다. "4월부터 내년 3월까지 포인트로 리우올림픽 티켓이 결정된다. 지금 상황에서는 누가 나갈지 알 수 없다. 컨디션 조절, 랭킹 관리를 잘해서 리우올림픽에 나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날 남자사브르는 전례없는 이변의 피스트였다. 세계랭킹 1위 구본길을 비롯해, 세계랭킹 2위 알렉세이 야키멘코(러시아), 세계 3위 알도 몬타노(이탈리아), 런던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세계 5위 아론 칠라기(헝가리) 등이 모두 4강 진출에 실패했다. 세계랭킹 11위 카밀 이브라기모프(러시아) 세계랭킹 21위 니콜라 루세(프랑스) 세계랭킹 25위 니콜라 림바흐(독일) 세계랭킹 9위 다릴 호머가 4강에 올랐고, 4강전에서도 하위랭커가 상위랭커를 잡았다. 루세와 림바흐의 결승전에서도 하위랭커인 림바흐가 15대8로 승리하며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여자사브르에서는 세계 1위 '우크라이나 에이스' 올가 카를란이 존재감을 과시했다. 결승에서 마리엘 자구니스(미국, 세계랭킹 2위)를 꺾고 올라온 이브티하지 무하마드(미국, 세계랭킹 13위)를 15대9로 돌려세우며 우승했다. 한국 에이스들은 컨디션 난조로 안방 메달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김지연이 64강에서, 이라진이 16강에서 탈락했다.

'승부사' 이효곤 남자사브르 코치(동의대 감독)는 안방에서의 부진에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남자 사브르 대표팀은 최근 나간 3번의 국제대회에서 금메달 2개, 동메달 2개를 따내며 선전했다. 정작 안방에서 열린 대회에서 세계 1위, 4위를 보유하고도 4강권에 진입하지 못한 데 대해 이 감독은 "패장이 무슨 할말이 있겠냐"며 말을 아꼈다. "초반에 긴장감 때문인지 경기가 잘 풀리지 않으면서, 어려움이 있었다"고 했다. "리우올림픽까지 1년반이 남았다. 사브르 선수들이 국내에서 뛴 첫 그랑프리대회였다. 올해보다 내년을 기대해달라. 오늘 나온 단점들을 보완하고 꾸준히 준비해 리우에서 꼭 좋은 결과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올림픽공원=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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