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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진 배드민턴대표팀 감독이 세계혼합단체선수권 우승을 지휘한 뒤 우승컵을 앞세워 귀국하고 있다. 사진제공=대한배드민턴협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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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생한 대통령 꿈은 처음이었어요."
한국 배드민턴대표팀이 11일 국제대회 출전을 위해 출국했다. 7월 초까지 인도네시아, 호주, 대만을 순회하는 '3개국 오픈 투어'다.
이들은 지난달 말 호주에서 열린 제15회 세계혼합단체선수권대회(수디르만컵)서 14년 만에 정상에 오르는 쾌거를 올렸다. 선수단은 쾌거 이후 소속팀으로 흩어져 국내 정규대회인 여름철종별선수권에 출전한 뒤 다시 모였다.
빡빡한 일정으로 쉴 틈이 없었지만 다시 출국길에 오르는 발걸음만은 가벼웠다. 수디르만컵 우승의 여운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들 가운데 유독 발걸음 가벼운 이가 있다. 부임 5개월 만에 세계 정상을 지휘한 강경진 대표팀 감독(44)이다.
14년 만의 쾌거 외에 알려지지 않은 대기록이 또 하나 있다. 강 감독이 이룩한 일종의 개인 '그랜드슬램'이다. 그는 '수디르만컵의 사나이'였다. 한국이 1989년부터 15회 출전하는 동안 이번까지 총 4회 우승했는데 그 현장에 모두 강 감독이 있었다. 1991(제2회), 1993(제3회)년에는 선수였고, 2003년(제8회)엔 코치로, 이번 14년 만의 쾌거에서는 감독으로 우승을 만끽했다. 한국 배드민턴 역사상 선수-코치-감독으로 세계선수권 우승을 경험한 것은 강 감독이 최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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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진 감독과 아들 강민재. 강민재는 수원 삼성 유스팀인 매탄중에서 중앙 수비수로 활약하고 있다. 강민재는 아버지가 세계선수권 우승컵을 안고 귀국하던 날(5월 30일) 전국소년체전에서 중등부 우승을 달성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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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대기록 이면에 흥미로운 뒷이야기가 있다. 강 감독이 11일 출국하기 전 "이제는 말할 수 있다"며 털어놓은 '대통령 길몽'이다. 강 감독은 호주 수디르만컵 출국 이틀 전(5월 15일) 범상치 않은 꿈을 꾸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꿈에 나타났다. 그냥 얼굴만 본 게 아니라 다정하게 손을 잡고 산책하면서 대화도 나눴다. 강 감독은 "희한하게 꿈이 생생해서 대화 내용도 기억난다"고 했다. 대화는 선문답 같았단다. "대통령님, 제가 앞으로 어떤 선수를 잘 키워야 할까요?"(강 감독), "일단 대회에서 성과를 내놓고 고민하세요"(문 대통령). '직업병'이랄까. 대표팀 세대교체 작업에 스트레스가 많았던 강 감독은 꿈 속에서도 그게 큰 걱정이었던 모양이다.
강 감독은 복권부터 샀다. 흔히 주변에서 '대통령 꿈을 꾸면 행운이 있다'며 복권을 사는 경우가 많아서였다. 미신을 믿지 않지만 꿈이 너무 좋아서 재미삼아 그렇게 해봤다. 일단 복권은 '꽝'이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세계선수권 우승이란 엄청난 복을 얻었다. 공교롭게도 대통령 꿈을 꾸고 나서 '그랜드슬램'을 완성한 것이다. 강 감독은 "대회에 집중하느라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이제 차분히 생각해보니 '성과'를 언급했던 대통령 꿈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면서 "비록 꿈에서 만났지만 문 대통령께 감사하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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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탄중 3학년 축구 꿈나무로 성장하고 있는 강경진 감독의 아들 강민재(가운데)가 대회에 출전해 드리블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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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꿈 효력이 정말 비범했을까. 강 감독은 겹경사를 맞았다. 수디르만컵을 품에 안고 귀국하던 날(5월 30일) 축구선수인 아들도 금메달을 안고 왔다. 강 감독의 아들 강민재는 수원 삼성의 U-15 유스팀 매탄중 3학년, 주전 중앙 수비수로 뛰고 있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대표급 수비수'라 불릴 만큼 꿈나무 유망주다. 매탄중이 이날 열린 제46회 전국소년체육대회 남자 중등부 축구 결승에서 2년 만에 정상을 탈환한 것. 강 감독은 "호주에서 메신저를 통해 아들이 결승에 진출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아빠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우승했으니 너도 후회없이 뛰어보라'고 격려했는데 진짜 우승해서 들어오더라"고 말했다.
한국 배드민턴의 쾌거, 강 감독의 인생 최대 겹경사. 문재인 대통령 꿈과 절묘하게 어우러진 '성과'였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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