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靑運:청소년운동]코로나 시대,생애 첫 가을스키...이 아이들 중 국대가 나온다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20-11-06 06:25


베어스타운 스키장 학교체육. 포천=박재만 기자 pjm@sportschosun.com/2020.10.17/

코로나19로 학교도, 체육도 한없이 움추러든 시대. 그래도 '학교체육이 희망'이라는 믿음 속에 스포츠의 길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실내체육시설들이 일제히 문을 닫고, 학교 운동장에서도 마음껏 뛰어놀 수 없는 아이들, 매순간 넘치는 에너지를 신나게 터뜨려야 행복한 이 아이들에게 '집콕 운동'만을 강요할 순 없다.

코로나 시대에 맞는 학교체육, 안전하고 건강한 학교체육의 길을 어떻게든 찾아내야 한다는 현장의 절박한 고민은 기어이 해법을 찾아냈다. 지난 10월 중순, 경기도 포천 베어스타운 피스랩 슬로프 위에서 펼쳐진 청소년 스포츠 보급-스키 강습(대한체육회-대한스키협회 주관), 가을 햇살 아래 땀에 흠뻑 젖은 채 A자로 씽씽 활강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학교체육의 희망을 다시금 확인했다.

▶사계절 야외 슬로프에서 즐기는 코로나 속 안전스키

스키를 겨울에만 탄다는 건 편견이었다. 베어스타운 인조잔디 '피스랩' 슬로프에선 비시즌인 여름, 가을에도 스키를 즐길 수 있다. 코로나19로 비시즌 실내 스키 강습이 불가능한 상황, 대한스키협회는 대한체육회의 지원을 받아 올해 처음 피스랩 강습을 도입했다. 대한체육회는 더 많은 청소년들이 생활 속에서 스포츠를 접할 수 있도록 청소년 체육활동지원의 일환인 청소년 스포츠 보급 사업을 통해 스키, 스케이팅, 자전거, 철인3종 등 4종목 강습 및 캠프를 지원하고 있다.

9월 19일부터 11월 1일까지 총 7주간 초등학생 150여 명이 인조잔디 재질의 '피스랩' 슬로프 위에서 스키를 배웠다. 매회 강사 4명, 초등학생 20명이 방역당국의 코로나 수칙, 사회적 거리두기를 철저히 준수하는 가운데 150m 무빙워크를 타고 슬로프 위로 올라간다. 스키가 난생 처음인 왕초보부터 A자 턴(스노플라우턴, 또는 프루그보겐), S자턴(스템턴)을 기준으로 기초 1~5급으로 나뉘어 스키협회 공인 강사들로부터 맞춤형 레슨을 받는다. 오전, 오후 각 1시간 30분씩 기본 2주 코스를 진행하는데, 수강료는 2회에 6만원, 체육회가 지원하는 사업인 만큼 비용과 퀄리티 면에서 '비교불가'다. 코로나 시대 안전성까지 확보된 야외 스키 강습은 입소문을 타고 7주차 과정이 순식간에 마감됐다. 서울, 경기 등 인근지역은 물론 세종시 등 지방 학생들의 참가 열기도 뜨거웠다. 추가모집 문의도 빗발쳤다.

의정부에서 온 '스키 자매' 장지은(11·의정부 녹양초4), 장지효양(9·의정부 녹양초2)은 "첫 스키가 무섭지 않느냐"는 우문에 "신나고 짜릿해요!"라고 즉답했다. 언니 지은양은 "오늘은 2주차인데 A자 턴, 보겐을 배웠다"면서 "코로나 때문에 학교에서도 운동을 못하고 있는데 이렇게 주말에 동생과 함께 스키를 탈 수 있어 정말 좋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장래희망을 묻는 질문에 동생 지효양은 기다렸다는 듯 "스키선수!"를 외쳤다.

아이들이 좋아하니 학부모들의 만족도는 당연히 높을 수밖에. 초등학교 1학년 최준환군(8)의 어머니, 이은영씨(42)는 "지난 겨울 처음으로 스키를 탔는데 어리다보니 동작이 정확치 않았다. 4주차인데 잘못된 자세를 교정해주셔서 짧은 기간에 많이 좋아졌다. 아이가 처음엔 피스랩이 미끄러워 힘들다더니 2주차부터는 금방 적응하더라. 협회의 지원을 받는 수업이라 비용도 저렴하고 선생님들도 자격, 실력면에서 신뢰할 수 있다"며 만족감을 전했다. "무엇보다 코로나 시대 아이들이 야외에서 맘껏 즐길 스포츠가 없다. 코로나 2단계까지는 체육시설이 다 문을 닫아 할 수 있는 게 없었는데 이 수업은 아이들이 야외에서 거리를 두고 안전하게 활동하고 배울 수 있어서 안심이 된다"고 덧붙였다.


겨울이 되면 이 피스랩 슬로프 위에 그대로 눈이 깔린다. 여름, 가을 훈련했던 똑같은 코스인 만큼 초심자들에겐 두려움도 덜하다. 김길호 대한스키협회 이사는 "코로나 시대, 실내보다 야외에서 더 효율적으로 스키를 배울 수 있어 호응이 매우 높다. 어린 학생들이 피스랩을 통해 스키를 먼저 경험하면 겨울에 같은 코스에서 더 쉽고, 더 안전한 스키를 즐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가대표-동호인-꿈나무가 공존하는 상생의 슬로프

가을날 피스랩 슬로프는 모두가 꿈꾸는 엘리트체육-생활체육-학교체육이 하나로 이어진 '상생의 공간'이었다. 지난해 이곳에 첫 도입된 피스랩 슬로프는 스키 입문 꿈나무에겐 배움의 공간, 스키 동호인들에게는 힐링의 공간이었고, 코로나로 인해 해외전훈이 불가능해진 여름, '평창올림픽 스노보드 은메달리스트' 이상호 등 국가대표들에겐 훌륭한 '대체 훈련장'이 됐다. 800m 상급자 슬로프에선 동호인들이 태극마크를 단 선수들의 아찔한 활강을 지켜보며 연신 탄성을 내질렀고, 바로 아래 150m 초보자 슬로프에선 A자 턴에 푹 빠진 초등학생들이 나비처럼 양팔을 벌린 채 쉴새없이 무빙워크를 오르내렸다. 인파로 붐비는 겨울 스키장에서는 좀체 볼 수 없는 진풍경이었다.

청소년 스포츠 보급 사업을 통해 스키를 배운 이 아이들 중에서 먼 훗날 국가대표가 나올 수도 있을까. '풀뿌리 학교체육의 로망'과도 같은 이 질문에 실무자인 박지연 대한스키협회 생활체육팀장이 놀랍게도 긍정의 답변을 내놨다. "매년 이 강습을 통해 스키에 입문하는 어린이, 청소년들이 6000~7000명 정도 된다. 이중 재능 있는 100~200명은 기초종목 '꿈나무' 육성사업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이중 엘리트 레벨의 선수가 연 20~30명 나온다"면서 "이곳에서 보급한 후, 기초종목으로 올리고, 거기서 엘리트 선수로 가는 선순환 구조가 이미 만들어지고 있다. 10년간 꾸준히 보급에 힘써온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며 자부심을 표했다.

1시간 30분의 오전 강습 후 '개구쟁이 동급생' 최준환군과 김지원군(8·이상 서울 서래초1)이 '엄마들'을 찾아 달려왔다. "무릎 굽히고 펴면서 턴하는 거, 잘한다고 선생님께 칭찬 받았어요." "하루종일 집에 있으면 재미가 없었는데 밖에 나와서 씽씽 스키 타니까 너무 좋아요." 볼이 발갛게 달아오른 소년들의 조잘조잘 하이톤에 '스키맘'들의 표정까지 환해졌다. "또 오고 싶어요?"라는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들이 "네!"라고 소리쳤다.
포천(경기도)=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2021 신축년(辛丑年) 신년 운세 보러가기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