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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 시절, 대학 톱 클래스 가드였지만, 강렬한 인상은 아니었다. 1999년 그의 프로농구 첫 시작은 벤치에서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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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넘치는 수많은 선수들이 사라질 때, 철저한 자기관리와 영리함으로 그는 프로농구판에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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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006시즌 삼성의 우승에 가장 혁혁한 공을 세운 선수. 모비스 양동근은 "워낙 뛰어난 2대2 능력을 지니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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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혁은 6일 인천 삼산실내체육관에서 가진 은퇴식 직후 "2대2 공격에 대해서는 처음에 그리 잘하지 못했다. 당시 오리온스 김병철 선배의 플레이를 많이 보고 배웠다. 하면서 점점 늘었다. 노하우가 생기기 시작했다"고 했다.
2차전부터 강 혁은 예술의 경지에 오른 2대2 공격으로 모비스의 수비진을 혼란에 빠뜨렸다. 당시 모비스 유재학 감독은 철저히 준비했다. 강 혁의 2대2 플레이에 모든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막을 수 없었다. 결국 삼성은 1패 후 3연승으로 챔프전에 올랐다. 당시 모비스의 수비력은 훌륭했다. 그러나 4강에서 패한 뒤 유 감독은 "지금의 수비력으로 강 혁의 2대2 공격을 막기는 역부족이었다"고 했다.
결국 그도 은퇴를 했다. 올 시즌 서장훈 이후 또 다시 아쉬운 작별이다.
4강 플레이오프 3차전이 그의 은퇴경기였다. 강 혁은 10분57초를 소화하며 6득점, 3어시스트를 올렸다. 2쿼터 막판 승부에 균형을 맞추는 절묘한 2대2 플레이와 스틸 2개를 연거푸했다.
하지만 팀의 패배를 막을 순 없었다.
이날 전자랜드의 4강 플레이오프 탈락이 확정된 뒤 은퇴식이 열렸다. 그는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강 혁은 "순간 울컥하니까 막 쏟아졌다. 좀 창피하다"고 했다.
사실 2년 전 삼성에서 나올 때 은퇴를 결심했었다. 하지만 전자랜드 유도훈 감독은 그의 은퇴를 말렸다. 기량이 너무 아까웠다. 결국 전자랜드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갔다.
강 혁은 "전자랜드는 저에게 은인같은 팀이다. 제 2의 농구인생을 살게해준 고마운 팀"이라고 했다. 그는 이제 지도자가 된다. 모교인 삼일상고 코치로 부임한다. 인천=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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