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반 34분, 경련이 난 다리를 부여잡고 쓰러진다. 혼자 세 바퀴를 굴러 옆줄 밖으로 나온다. 응당 달려와야 할 의료팀은 없다. 스스로 스타킹을 내리고 보호대를 뺀다. 덕지덕지 붙인 테이핑을 뜯어내고 있는 힘껏 종아리를 짓누른다. 물을 뿌린 뒤 다시 피치 위에 올라선다. 한 번 올라온 근육이 성할 리 없다. 3분 만에 팀 동료와 교체 아웃되던 순간 골대 뒤 응원석에서는 "잘했다"라는 환호가 들려온다. 경기 종료 후 이 선수는 "근육을 걱정했는데 끝까지 못 버텨줬다"며 아쉬움을 곱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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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저녁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4 하나은행 FA컵 32강전, 포천시민축구단(K3챌린저스리그,4부리그)이 대전시티즌(K리그챌린지,2부리그)을 1-2로 꺾는 기적을 일군다. 중원에서 볼을 잡은 김준태가 오른발로 플레이메이킹을 시작했다. 좌우 날개 안성남과 정대환의 속도를 살려 내달리는 동안, 이 선수는 공격 진영 이곳저곳에서 연계 플레이를 만들어냈다. 전반 37분 터진 전재희의 헤딩 선제골로 이어진 안성남의 크로스 역시 그의 패스가 주효한 공이 컸다. 후반 2분 만에 김은중에게 헤딩골을 내준 뒤에는 상대 수비수가 방심한 틈을 타 곧장 결승골까지 뽑아낸다. '이 선수', 이제는 희미한 기억으로 남은 심영성을 말한다.
'굴곡 많은 인생'이란 말로 표현이 다 될까. 1987년생 20대 후반의 나이에 롤러코스터를 몇 번이나 탔는지 모른다. 2006년 정해성 전 제주 감독(현 대한축구협회 심판위원장)은 김학범 전 성남 감독에게 심영성의 이적을 요청한다. 가용할 수 있는 공격진의 폭이 좁았던 제주, 모따와 두두를 팀의 주포로 활용하던 성남의 셈이 들어맞았다. 2년 반 동안 16경기밖에 뛰지 못한 이 선수는 고향 제주의 품에 안겼고, 2007년부터 세 시즌 동안 73경기 14골 5도움을 쌓아 올린다. 정 전 감독은 "팀 사정상 큰돈을 주고 완성된 선수를 데려올 수는 없었다. 젊은 선수 중엔 (심)영성이가 골을 마무리 짓는 감각이 있었다"라며 영입 배경을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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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캐나다 U-20 월드컵 브라질전은 지금도 생생하다. 0-3으로 패색이 짙던 후반 29분, 마법이 시작된다. 뒤따라오던 수비 마킹을 벗겨낸 뒤 다비드 루이스(첼시)와 마주했던 장면은 팀의 분위기를 뒤집어 놨다. 코너킥을 헤더로 돌려놓으며 뽑아낸 골은 추격의 불씨를 확실히 당겼다. 공간을 만들어 뛰고 본인의 재능을 피치 곳곳에 쏟아내던 모습은 과연 2006 AFC U-19 선수권대회 득점왕 출신다웠다. 85년생 박주영을 이을 대형 공격수의 등장에 우리는 흥분했다. 하지만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지독한 불운이 닥친다. 2010년 교통사고로 오른 무릎 슬개골이 으스러졌고, 반년 뒤엔 모친상까지 당한다. 드리운 먹구름에 앞이 보이질 않았다.
2011년 6월 가까스로 복귀했으나 만족할 수준은 아니었다. 심영성은 이듬해 김상호 전 강원 감독의 러브콜에 임대로 응했고 뒤이어 사령탑에 오른 김학범 감독과 재회한다. 팀의 중심축 지쿠의 주변에서 기동력을 불어넣길 원했던 김 감독은 "몸이 올라와야 써먹든가 할 텐데"라며 혀를 찼다. 최전방 및 2선에서 고루 뛸 수 있는 활용도 높은 자원이라 아쉬움은 더 컸다. 번뜩이는 몇몇 장면은 있었으나, 경기를 장악할 몸 상태는 보여주지 못했다. 축구 선수로 다시 뛰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운 일이었지만, 강등권 싸움을 하던 강원의 발등엔 불이 떨어졌다. 11월에 되어서야 연속으로 선발 출장하며 마음의 짐을 살짝 내려놓는 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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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이 가까스로 K리그클래식 잔류에 성공했을 때, 심영성은 조용히 훈련소로 향한다. 치명적인 부상으로 공익근무요원이 된 그는 현재 포천시청에 적을 두고 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의 일과가 끝나면 뒤늦게 운동을 시작한다. 고된 일정일 법도 한데 "많은 분들이 일적으로 배려해 주신다"며 웃어 보인다. 그 와중에도 부상은 끊이질 않았다. 지난해 6월에는 경기 중 손등뼈까지 부러졌다. "(부상은) 평생 안고 가야 할 문제다. 완벽하진 않지만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다"라는 대답엔 초연함마저 묻어난다. 그럴수록 자신을 더 엄하게 채찍질했다. "체력이 70%밖에 안 된다"라던 그는 이번 대전전에 10점 만점 중 5점밖에 주지 않았다.
현장에서 만난 두 스승은 오히려 심영성을 치켜세웠다. 제주 시절 함께했던 정 전 감독은 "안타까울 만큼 안 풀렸는데, 플레이는 예전보다 더 활발해졌더라"며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서면 프로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다"라는 조언도 건넸다. 인창수 현 포천 감독은 '프로페셔널'이란 단어부터 꺼냈다. "퇴근 뒤 저녁 운동을 정말 열심히 한다"며 "인조 잔디에서 훈련을 하기에 무릎을 너무 심하게 쓸 수는 없다. 그 가운데 골 넣는 각도나 타이밍을 연습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소속팀으로 돌아가 동계 훈련을 잘 해내고, 오전-오후 스케쥴에 맞춰 운동한다면 K리그에서도 좋은 경기할 수 있지 않을까"라며 기대감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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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태어난 딸을 보며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았다. "아빠가 축구 선수였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게끔 프로에 남아 더 뛰고 싶다"는 것이 심영성의 바람. 12월 26일로 예정된 소집 해제 뒤 그의 소망은 이뤄질 수 있을까. 7년 전 브라질을 맹렬히 몰아쳤던, 이제는 '그때 그 선수'로 잊혀가던 심영성은 꿋꿋이 살아있었다. 본인의 가치를 조금 더 높고, 넓은 무대에서 다시 한 번 펼쳐 보이길 응원한다. 두 번 다시 수술대에 오르는 일 없이 말이다. <홍의택 객원기자, 제대로 축구(http://blog.naver.com/russ1010)>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