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Advertisement
김 코치와 김승규는 2009년 재회했다. 김 코치가 포항에서 울산으로 둥지를 옮기면서 김승규를 프로 팀에서 지도하게 됐다. 김 코치는 "자신을 아는 코치가 왔다고 좋아하더라. 그러나 한편으로는 걱정도 됐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김 코치는 훈련을 혹독하게 시키는 '호랑이 코치'로 유명했다. 그러나 이내 김 코치의 입가에 미소가 흘렀다. "승규는 혹독한 훈련에도 '힘들다'고 투정 한 번 부리지 않았다. 성격상 운동 욕심이 많았다." 당시 김승규의 팀 내 입지는 불안했다. 울산의 세 번째 골키퍼였다. 김 코치는 "당시 김영광이 최고의 주가를 올릴 때니 출전 기회를 잡기 힘들었다. 그래서 개인 훈련을 많이 했다. 오죽하면 훈련량을 줄이라는 주문을 했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환희는 '잠깐'이었다. 2012년, 김승규의 자리는 여전히 백업이었다. 김 코치는 고민에 빠졌다. 주전 김영광이 잘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승규의 출전도 챙겨야 했다. 런던올림픽대표팀 멤버로 발탁될 경우 활약이 기대됐기 때문이다. 김 코치는 "승규를 올림픽대표로 만들기 위해 나름대로 생각을 많이 했었다. 이범영(부산)과의 경쟁을 위해 배려를 많이 했다. 그런데 워낙 영광이의 경기력이 좋다보니 쉽게 교체하기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암운이 드리웠다. 올림픽 직전 새끼손가락 골절 부상을 했다. 깁스만 6개월했고, 복귀하는데 8개월이란 시간이 걸렸다. 김 코치도 '애제자'의 올림픽행 좌절에 마음속으로 울었다. 김 코치는 "가슴이 아팠다. 그래도 승규를 다시 일으켜세워야 했다. 당시 '실망하지 마라. 앞으로 기회가 많으니 치료에 전념해라'고 격려했다"고 말했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기회가 왔다. 김승규는 지난해 정규리그 3라운드부터 종아리 부상을 한 김영광의 공백을 메웠다. 이후 승승장구였다. '아~골이구나'라고 생각하는 것 조차도 막아냈다. 김승규는 점점 김영광을 잊게 했다. 김 코치는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는 말이 있듯이 승규는 준비된 스타다. 때가 왔을 때 기회를 낚아챌 수 있었던 것은 완벽한 준비 덕분이었다"고 전했다. 또 "이젠 본인이 그렇게 바라던 월드컵이다. 올림픽 좌절의 한을 월드컵에서 풀었으면 좋겠다"고 응원했다. 김 코치의 걱정은 김승규의 국제대회 경험 부족이다. 그래서 두둑한 배짱을 주문했다. "승규야! 이번 월드컵에선 선생님이 알려준 대범함을 활용해보렴. 너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수 있을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