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회 놓치고 싶지 않다."
고등학교 시절 TV를 보면서 생각했던 마무리 투수의 꿈을 이룰 기회가 데뷔 11년만에 찾아왔다. 2004년 '빗속의 혈투'로 유명한 현대 유니콘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한국시리즈 9차전. 비가 세차게 내려 공을 던지기도, 치기도, 잡기도 힘든 상황에서 현대의 마무리 조용준은 힘차게 공을 뿌리며 현대의 우승을 끝까지 지켰다. 당시 덕수고 2학년이던 김세현(개명전 김영민)은 그 장면을 보면서 마무리 투수에 대한 꿈을 가졌다.
그러나 2006년 입단 이후 그에게 마무리 투수라는 보직은 오지 않았다. 항상 선발 유망주로 거론됐고, 선발로 실패했을 땐 중간에서 던져야 했다. 그런 그에게 마무리 투수라는 보직이 찾아왔다. 넥센의 최고 마무리였던 손승락이 롯데로 떠나고, 셋업맨이었던 한현희가 팔꿈치 수술로 이탈하자 염경엽 감독은 김세현을 마무리로 낙점했다. 150㎞대의 빠른 공을 힘있게 던지는 김세현에게 어찌보면 적합한 보직일 수도 있다.
지난해 9월 5일 인천 SK전서 입단 10년만에 처음으로 완봉승을 거두면서 꽃을 피우나 했지만 이내 만성골수성 백혈병 판정을 받고 공을 놓고 치료에만 전념했다. 약물 치료를 통해 정상으로 돌아온 김세현은 더이상 아프지 않기 위해 개명까지 하면서 새로운 시즌을 준비했다.
새 이름에 새 보직으로 새 출발하는 것. 아직도 그를 김영민으로 부르는 사람들이 많아 그럴 때마다 "김세현입니다"라고 조용히 말한다. 마치 '응답하라 1988'에서 성덕선의 대학입학을 위해 이름을 성수연으로 부르도록 하는 듯하다.
최근 연습경기서 마무리 데뷔 무대를 가졌다. 21일 요코하마전서 1-3으로 뒤진 9회초 강지광의 역전 스리런포로 4-3으로 앞섰고, 9회말 김세현이 마무리로 등판했다. 첫 두타자에게 연속 안타를 맞았고, 이어진 희생번트로 1사 2,3루의 위기. 하지만 김세현은 빠른 공을 앞세워 후속 타자를 연속 삼진으로 틀어막고 승리를 지켰다. 비록 연습경기였지만 조마조마했던 첫 세이브.
"이 기회를 정말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김세현. 그가 고등학교시절 보고 꿈꿨던 멋진 모습의 마무리. 이제 시작이다.
오키나와=권인하 기자 indy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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