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야구만 하면 될 것 같다."
그의 한 마디는 확실히 묵직하다. 그동안의 우여곡절과 마음 고생이 모두 들어있는 말이다.
1988년생. 한국 나이로 이제 29세다.
투수로서 절정의 나이다. 하지만, 그는 너무나 많은 일을 겪었다. 돌고 돌아 SK 유니폼을 입었다.
정영일.
고교졸업 후, LA 에인절스에 입단했다. 고교 시절 혹사로 팔꿈치 부상 이후 2008년 토미 존 서저리를 받았다. 게다가 어깨까지 안 좋아졌다. 결국 2011년 방출.
미국 진출은 그렇게 철저하게 실패했다. 갈 곳이 없었다. 독립리그 고양 원더스를 거친 뒤 극적으로 SK에 지명됐다. 일본 오키나와 전지훈련장에서 만난 정영일은 "기대를 많이 하지 않았다. 그런데 SK에서 지명, 너무 기뻤다"고 했다.
곧바로 상무에 입대했다. SK의 좋은 선택이었다. 당시만 해도 정영일의 몸상태는 좋지 않았다.
그는 "지명된 것만 해도 좋았는데, 군대까지 해결해서 너무 기뻤다. 그동안 미국에서 좋지 않은 일들이 많았는데, 꼬였던 문제들이 조금씩 풀리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의 어깨는 점차 나아졌다. 결국 투구 밸런스가 잡히기 시작했고, 구속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정영일은 "상무 1년 차때 145㎞가 나왔고, 이듬해는 최고 152㎞까지 나오기 시작했다"며 "통증은 완전히 없어졌고, 보강운동은 꾸준히 하고 있다"고 했다.
광주 진흥고 시절 전국적 각광을 받던 에이스였다. 당시 안산공고 김광현, 장충고 이용찬 등과 함께 '고교 특급 투수'로 명성을 떨쳤다.
공교롭게도 김광현과 조우했다. 비룡의 절대적 에이스다. 하지만, 그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정영일은 "친해지고 싶었는데, 그동안 기회가 없었다. 처음 봤을 때는 좀 어색했다. 하지만, 같이 나이의 친구는 팀내에서 나밖에 없어서 얘기를 많이 나눴고, 이젠 많이 친해졌다. 확실히 많이 도움이 된다. 대한민국의 에이스이기 때문에 배울 게 많다"고 했다.
'고교 시절에는 라이벌이었는데, 지금은 위치가 다르다. 약간의 괴리감이 있을 것 같은데'라고 묻자, 정영일은 "김광현은 10년 차, 나는 이제 리그 1년 차다. 항상 광현이에게 좋은 걸 많이 배웠고, 적응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는 고마운 친구"라고 했다.
SK 김용희 감독은 올 시즌 중간계투진을 예상하면서 "정영일이 변수"라고 했다. 좋은 구위를 가지고 있지만, 경험이 부족해 리그 적응을 해야 하는 정영일의 빛과 그림자를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그러면서 "2년 내 마무리 구도는 정영일과 서진용이 좌우할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멘트를 남기기도 했다.
여기에 대해 정영일은 "일단 적응이 중요하다. 내가 할 도리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하는 수 밖에 없다"는 원론적 답변을 내놨다. 하지만, 이 속에는 그동안 못했던 야구의 '한'이 담겨져 있었다.
그는 "어린 나이에 미국에 가서 힘든 일을 많이 겪었다. 조금씩 시간이 지날수록 성숙해지는 느낌이었다. 웬만한 일들은 무덤덤해지더라"고 했다.
그리고 올 시즌 그의 마음가짐이 응축된 한 마디를 던졌다. "이제 야구만 하면 될 것 같네요." 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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