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아이스하키는 철저한 변방이었다. 아시아 무대에서도 소리를 내지 못했다. 카자흐스탄에는 22년간, 일본을 상대로는 무려 34년간 한번도 이기지 못했다. 등록선수 233명, 실업팀 3개에 불과한 인프라는 한국 아이스하키의 현실이었다.
그런 한국 아이스하키가 세계를 놀라게 했다. 불모지에서 톱디비전으로,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가 '키예프의 기적'을 썼다. 백지선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4월29일(한국시각) 우크라이나 키예프의 팰리스 오브 스포츠 아이스링크에서 열린 2017년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남자 세계선수권 디비전1 그룹 A(2부리그) 최종전(5차전)에서 슛아웃(승부치기)까지 가는 혈투 끝에 우크라이나를 2대1로 제압했다. 12연패 중이었던 카자흐스탄(5대2)을 비롯해 폴란드(4대2), 헝가리(3대1) 등을 차례로 꺾으며 매일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간 한국은 카자흐스탄과 함께 승점 11점을 기록했지만 승자승에 앞서 2위로 '꿈의 무대' 월드챔피언십(1부리그) 진출에 성공했다.
아이스하키는 다른 어떤 종목보다도 국가별 수준 차가 크다. 그래서 세계선수권도 6개의 디비전으로 나눠 승강제를 진행한다. 그 정점이 바로 1부리그인 월드챔피언십이다. 세계 최강 16개국이 출전해 톱디비전을 이룬다. 톱디비전은 말그대로 철옹성이다. 캐나다, 러시아, 핀란드, 미국 등 14개팀은 단 한번도 톱디비전에서 내려온 적이 없다. 톱디비전을 경험한 나라도 단 19개에 불과하다. 이토록 힘겨운 월드챔피언십행을, 그것도 아시아에서도 변방 중 변방이었던 한국이 해냈다. 3부리그에 있던 팀이 단 2년만에 월드챔피언십에 오른 것은 100년 가까운 아이스하키 전체 역사를 따져도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치밀한 계획과 원팀 리더십을 앞세운 백 감독을 중심으로 귀화파와 토종 선수들의 하모니가 이뤄낸 기적이다.
새로운 역사를 쓴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코카콜라 체육대상 2017년 4월 MVP에 선정됐다. 스포츠조선이 제정하고 코카콜라가 후원하는 코카콜라 체육대상 수상자에게는 트로피와 상금 100만원이 주어진다.
백지선호의 시선은 이제 평창으로 향하고 있다. 한국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캐나다, 체코, 스위스와 함께 A조에 속했다. 당연히 전력상으로는 3전전패가 예상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승세라면 즐거운 상상이 가능할 것 같다. 8강 진출도 꿈만은 아니다. 백 감독과 선수단은 이제 월드챔피언십 진출의 단꿈에서 벗어나 다시 한번 힘찬 도약을 준비 중이다. 15일부터는 11주간 진천선수촌에서 강도높은 체력훈련을 시작한다. 7월에는 러시아와 체코에 3주간 머물며 개인 기술과 팀 전술을 가다듬고 연습경기도 할 예정이다. 또 다른 기적을 향한 위대한 도전을 시작한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팀. 이제는 평창이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