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어진 스트라이크존이 외국인 타자 트렌드까지 바꿀까.
올 시즌 초반 최대 화두는 달라진 스트라이크존이다. 개막에 앞서 스트라이크존을 넓히겠다고 선언한 한국야구위원회(KBO)인데, 실제로 이 약속이 지금까지는 지켜지고 있다. 타자 입장에선 지난해까지 볼 판정이 나왔던 공이 스트라이크가 되니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투타 균형이나 경기 시간 단축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있다. 결국 실력 좋은 선수가 존이 넓어져도 친다. 이대호(롯데 자이언츠) 최형우(KIA 타이거즈) 김태균(한화 이글스) 나성범(NC 다이노스) 서건창(넥센 히어로즈) 양의지(두산 베어스) 등 각 팀 간판타자들은 여러 지표에서 상위권에 올라있다.
그런데 넓어진 스트라이크존 때문에 유독 애를 먹는 이들이 있다. 바로 외국인 타자들이다. 올해 약속이나 한 듯 외국인 타자들이 부진하다. '무적' 에릭 테임즈가 떠난 이유도 있겠지만 국내 타자들에 비해 위압감을 주지 못하고 있다. 22일까지 타율-타점-최다안타-출루율-장타율 부문 5위 이내에 외국인 선수가 1명도 없다. 홈런에서 NC 다이노스 재비어 스크럭스가 11개로 공동 2위를 달리고 있지만, 최근 10경기에서 1홈런에 그쳤다.
대부분 처지가 비슷하다. 국내 투수들의 집요한 유인구, 변화구 승부에 고전하고 있다. 스트라이크존이 넓어지면서 큰 것 한방으로 승부를 보려는 외국인 타자들의 수싸움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투수들의 마음이 편해지자 스트라이크존 가운데로 몰리는 실투가 줄어들었다. 몸쪽, 바깥쪽 코너워크가 잘 되는 공은 정타로 맞히기 힘들다.
조니 모넬을 퇴출시킨 kt 위즈 김진욱 감독은 "지난해 스트라이크존이면 충분히 잘 할 선수라 판단이 됐는데, 스트라이크존 변수를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최근 장타가 실종된 루이스 히메네스에 대해 양상문 LG 트윈스 감독은 "넓어진 스트라이크존이 장타를 욕심내는 외국인 타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지금의 스트라이크존이 계속 유지된다면, 외국인 타자를 선택하는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는 분석이다. 장타력을 믿고 데려왔다가는 이도저도 아닌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 지금까지 각 팀들은 부족한 장타를 채우기 위해 힘 좋고 타격에 특화된 1루수, 지명타자 요원들을 선발해왔다. 한화 이글스 윌린 로사리오, 삼성 라이온즈 다린 러프, 두산 베어스 닉 에반스, NC 스크럭스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그 방망이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차라리 수비, 주루까지 모두 소화가 가능한 선수를 데려오는 게 낫다는 것이다. 어느 팀이든 전 포지션 완벽한 1군 라인업을 갖춘 팀은 없다. 외국인 타자가 부족한 자리를 채우면 된다. 롯데 자이언츠 앤디 번즈, KIA 타이거즈 로저 버나디나가 예가 될 수 있다.
롯데 조원우 감독은 "번즈가 방망이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번즈의 2루 수비 덕분에 이긴 게 몇 경기 된다. 이 것도 결승 홈런과 같은 것이다. 외국인 타자의 활약을 더 세부적으로 들여다봐야 한다"고 했다.
감독들은 최근 상황에 대해 "이제는 힘보다는 컨택트 능력이 있는 타자를 우선적으로 봐야할 것 같다. 소위 말하는 '공갈포' 스타일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kt가 새 외국인 타자를 알아보고 있는 가운데, 몇몇 팀도 교체을 염두에 두고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