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한국야구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국내에 처음 유치한 국제대회, 4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예선 라운드에서 맥없이 무너지며 탈락했다. 2006년 1회 대회 4강, 2009년 2회 대회 준우승,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에 빛나는 한국야구의 추락을 눈앞에서 지켜봐야 했다. 이전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너무나 참혹한 결과였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오랜 고민끝에 전임감독제 도입을 결정하고, 지난 달 선동열 전 KIA 타이거즈 감독을 사령탑에 선임했다. 선 감독은 논의 시작 단계부터 유력하게 거론됐던 야구인이다. 선수, 프로팀 감독, 대표팀 코치 경력을 고려하면, 최적의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오는 11월 도쿄에서 개최되는 2017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24세 이하 대회)부터, 2018년 자카르타아시안게임, 2회 프리미어 12를 거쳐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 대표팀을 이끌게 됐다. 2014년 10월 KIA 감독에서 물러났는데, 프로팀이 아닌 대표팀 감독으로 현장에 복귀했다. 11월 16일 도쿄돔에서 열리는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일본과 개막전이 대표팀 감독 데뷔전이다. 선 감독은 한국야구 위상을 다시 끌어올릴 수 있을까. 선 감독 혼자서 이룰 수 없는 과업이지만, 그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요즘 선 감독은 굉장히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대표팀 코칭스태프 구성을 위해 여러 야구인들을 만나고 있다. 2일 오후 서울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만난 후 선 감독은 "세뇌교육을 시켜서라도 대표선수에게 사명감과 자부심을 심어주겠다"며 웃었다.
―첫 성인 대표로 선발된 게 언제인가.
▶고려대 2학년이던 1982년 잠실구장에서 열린 세계야구선수권대회 때다. 프로야구가 1982년 출범했는데, 최동원 김시진 이해창 장효조 정구선 선배 등 10명 정도는 프로에 못가게 묶었다. 따져보면 대표팀과 인연 맺은 후 35년 만에 대표팀 감독이 됐다. 그때만 해도 좋은 선배들이 워낙 많아 뽑힐 거라고 생각 못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하는 선수가 모인 대표팀의 일원이 돼 굉장히 뿌듯했고, 자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상이었던 최동원 김시진 임호균 선배의 불펜 피칭을 보고, '왜 나는 저렇게 못 던지나' 하는 생각을 했다. 형들을 보면서 야구가 늘었다. 특히 임호균 선배는 제구력이 엄청났다. 바깥쪽 코스로 10개를 던지면, 포수가 움직이지 않고 8~9개를 잡았다.
―아직까지 전임감독이 왜 필요한지 회의적으로 보는 이들이 있다. WBC 예선 탈락 직후에도 KBO는 전임감독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왜 전임감독이 필요한가.
▶프로 감독을 하던 5~6년 전부터 전임감독 얘기가 있었다. 소속팀을 챙겨야하는 프로팀 감독이 대표팀까지 맡으면 부담이 너무 크다. 다들 안 맡으려고 했다. 일본이 먼저 전임감독제를 도입했는데, 여러팀 선수를 충분히 보면서 뽑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프로팀 감독은 다른 팀 선수를 전체적으로 보기 어려운 점이 있다.
―일본대표팀 '사무라이 재팬'을 벤치마킹했는데, 일본과 상황이 많이 다르다. 일본과 비교해 아쉬운 점이 있나.
▶코치진에 그만한 대우를 해줬으면 좋겠다. 대표팀 코치가 일정 기간 일을 하게 되는데, 지원을 해주면 조금 더 열정을 갖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8월 중순까지 코칭스태프를 구성해야 한다. 코치 선발 기준이 뭔가.
▶첫 번째가 젊은 선수와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선수와 코칭스태프간에 거리가 있으면 안 된다. 유니폼 벗으면 선수와 형동생 할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요즘 계속해서 사람 만나고 있다. 오늘 점심에 만났고, 저녁에도 약속이 있다. 함께 해보자는 사람도 있고, 생각해보겠다는 사람도 있다. 물론, 방송 해설가도 대상자에 포함돼 있다. 현직보다 재야쪽이 더 많다고 보면 된다. 다만, 작전 파트는 현장감이 중요하다. 현장 떠난 지 오래된 야구인보단 현직이 나을 것 같다. 코치 잘 못 뽑았다는 소리 안 듣고 싶다.
―첫 전임감독인데 어느 정도 대우를 받는 지 궁금해 한다. KBO는 프로 감독 기회를 포기한만큼 적절한 대우를 해주겠다고 했는데.
▶국가대표팀 감독직은 돈으로 평가할 수 없는 명예로운 직분이다. KBO 관계자가 급여 얘기를 하길래, 알아서 달라고 했다. 돈 얘기 하고 싶지 않았다. 주는대로 받겠다고, 알아서 해달라고 얘기했다. 프로팀이라면 명예, 돈까지 따라올 수도 있겠지만, 대표팀은 다르다. 8월에 월급 나오면 알 수 있지 않을까.(웃음)
―3년 임기를 보장받았는데, 프로 생각은 접었나.
▶책임이 무겁다. 내년 아시안게임 금메달, 도쿄올림픽 메달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최고 선수를 뽑아야하고, 세대교체도 필요하다. 사실 세대교체는 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다. 성적을 내려면 잘 하는 베테랑 선수도 데려와야 한다. 내년 아시안게임대표를 선발하는 시점에서 이대호 김태균이 잘 하고 있으면 뽑겠다. 멀리보고 세대교체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당장 성적도 중요하다. 가족들이 그러더라, '3년 가까이 충전했으니 걱정말고 잘 하시라'고. 부감이 크지만 이게 직업이라 어쩔 수 없다.
―KIA 감독 사퇴 후 2년 넘게 현장을 떠나 있었다. 밖에서 본 한국야구는 어땠나.
▶타자는 성장했다고 하는데, 전체적인 질은 떨어졌다. 특히 투수 제구력이 아쉽더라. 10개 던지면 5~6개는 포수가 원하는 쪽으로 가야한다. 반도 안 되는 투수가 의외로 많다. 타자가 잘 치기도 하지만 3할 타자가 너무 많다. 제구력은 본인 하기에 달렸다. 컨트롤에 신경써야하는데, 기교로만 던지려고 한다. 그런 면이 안타깝다. 연습 안 하고 경기에서 잘 던지려고 하는 건 도둑놈 심보다. 마흔 넘었는데도 이승엽 임창용 하는 걸 봐라. 젊은 선수보다 더 열심히 관리하고 준비한다.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일정이 나왔다. 지일파 야구인, 대표팀 감독으로서 일본전에 나서는 각오가 특별할 것 같다.
▶이번 대회도 일본 전력이 압도적으로 강하다고 하더라. 실력이 뒤진다고 해서 주눅들 필요 없다. 일본야구 심장부 도쿄돔에서 열리는 데, 도쿄돔이 처음인 선수가 대다수일 것이다. 그런데서 자기 플레이를 할 수 있으면 된다. 좋은 경험이 될 것이고, 성장하는데 밑거름이 될 것이다. 요즘 선수 몇몇을 눈여겨보고 있다. 이번에 뽑히면 내년 아시안게임까지 기회를 주고 깊은 마음이 있다. 젊은 선수들에게 좋은 동기부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도쿄올림픽에 나간다면 정식종목 되고 처음이다. 1984년 LA 대회 땐 야구가 시범종목이었고, 2008년 베이징 대회 땐 예선전까지만 수석코치로 일했다.
-이나바 일본 감독과 인연이 있나.
▶주니치에서 뛸 때 이나바 아쓰노리 감독은 신인급 선수였다. 빠른 공을 잘 때렸고, 내 볼도 잘 친 타자 중 하나였다. 1999년 주니치가 센트럴리그 우승을 할 때 마지막 경기 상대팀이 야쿠르트였는데, 당시 이나바 감독도 있었다. 공수주 모두 뛰어났던 선수로 기억한다. 선수 은퇴 후 지도자는 처음인 걸로 아는데, 한국전이 데뷔전 아닌가. 한-일전이니 죽기살기로 하겠다.(웃음)(이나바 감독은 2005년 니혼햄 파이터스로 이적해 2014년 은퇴했다. 1~2회 WBC,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일본대표로 출전했다)
―와일드 카드 3장은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24세 이하 선수가 나서는 대회다보니, 포수를 뽑아야 할 것 같다. 그렇다고 강민호나 양의지를 데려갈 수도 없지 않나. 이번 대회가 친선경기나 마찬가지인데, 조커를 어떻게 쓰느냐가 참 애매하다.
―WBC 때도 그랬지만, 선수들의 대표팀에 대한 사명감이 많이 약해졌다는 지적이 많다. 애국심에 호소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어떻게 동기부여를 할 것인가.
▶쉽지 않은 일이긴 한데 소집하면 선수들에게 사명감, 자부심을 교육하겠다. 세뇌교육을 시켜야 한다.(웃음) 국가대표는 돈으로 따질 수 없는 명예로운 것이다. 선수 개인으로 보면 피곤하고 힘들 것이다. 그래도 자부심을 갖고 대표답게 행동해 줬으면 좋겠다. 젊은 코치를 찾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런 생각을 끊임없이 선수들에게 얘기해주고,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대표팀 분위기가 느슨해진 원인이 뭐라고 보나.
▶예전엔 유니폼을 입으면 '투지'가 있었는데, 요즘엔 이런 면이 부족하고 강조하기도 어렵다. 7~8년 전부터 조금씩 이런 분위기가 생긴 것 같다. 1, 2회 WBC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느슨해진 것도 있고, 경기력 자체도 많이 떨어졌다. 또 예전엔 비슷한 연령대 선수들이 '으X으X'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최근엔 젊은 선수와 베테랑간에 나이 차이가 커 안 된 부분이 있다. 물론, 높게 치솟은 선수 몸값 영향도 있을 것이다. 안 다치려고 조심하는 것 같다.
―감독직은 스트레스가 심한 자리다. 건강 관리를 잘 해야할 것 같다.
▶일년에 한번 건강검진 받고, 6개월에 한번씩 혈액검사 받는다. WBC 1회 대회 투수코치를 맡았는데, 도쿄 예선 라운드부터 몸이 안 좋았다. 본선가서도 계속 안 좋았지만 말 못하고 있다가, 귀국해 검사를 받았다. 혈관이 안 좋았다. 당시 체중이 선수 시절보다 20㎏ 가까이 불어있었다. 체중 줄이고 관리 잘 해 지금은 괜찮다. 야구인이라면 피할 수 없겠지만, 스트레스 받으면 온 몸이 아프다. 머리 회전도 안 된다. 주니치 입단 첫해 부진했을 때, '야구를 왜 했나' 생각까지 할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했다. 살이 10㎏ 가까이 줄고, 머리카락이 빠졌다. 그래도 선수는 지도자보단 덜하다. 선수는 자기만 잘 하면 되지만, 모든 걸 체크하고 신경써야하는 감독은 정말 어려운 직업같다.
―마무리 질문은 가볍게 가겠다. 지금까지 함께 했던 선수로 '베스트 라인업'을 꼽아달라.
▶포수는 1982년 세계선수권대회 때 포수 심재원 선배다. 당시 3경기 완투승을 거뒀는데, 내가 생각하고 있던 공을 항상 먼저 주문해 깜짝 놀랐다. 투수 심리를 꿰뚫고 있었던 거다. 1루수는 (김)성한이형. 갑자기 얘기하려고 하니 어렵다.(웃음) 2루수는 주니치 시절 다쓰나미 가즈요시가 잘 했다. 3루수는 (한)대화형, 유격수는 (이)종범이다. 외야 세자리는 김일권 선배, (이)순철이, (한참 고심하다가) 지금도 선수로 뛰고 있는 후쿠도메 고스케(현 한신 타이거즈)다. (이)해창이형도 어깨는 약했지만 외야 수비폭이 넓었고, (김)종모형도 좋았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