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이승미 기자] "김광일이라는 싸이코패스가 하는 행동이 악마적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한 선택"
이는 영화 '브이아이피' 속 여성 피해자에 대한 잔혹한 묘사에 대한 박훈정 감독의 설명이다. 청소년관람불가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개봉 3일 만에 48만7976명을 모으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는 영화 '브이아이피'. 하지만 '브이아이피'는 관객들로부터 여성을 소비하는 방식에 대해 지적을 받으며 흥행 스코어와 상반된 평가를 듣고 있다.
네 명의 남자 주인공들이 극을 이끌고 가는 '브이아이피'에서 여성은 오로지 피해자로만 등장한다. 이 여성들은 전부 죽거나, 죽었거나, 곧 죽거나, 죽는 중이다. 그것도 눈 뜨고 보기 힘든 지독한 고문과 함께, 이에 관객들이 극중 살인 사건으로 희생되는 여성에 대한 묘사와 잔혹 수위 등에 대해 쓴 소리를 냈고 연출자 박훈정 감독은 매체 인터뷰를 "싸이코패스 캐릭터의 악마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 밝혔다.
박 감독의 말대로 피해자에 대한 끔찍하고 잔혹한 묘사는 극중 캐릭터의 '무자비하고 악마적인 성격'을 표현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선택이었을 수 있다. '브이아이피' 이전에 살인사건 피해자들이 잔혹하게 그려졌던 영화는 무수히 많았고 창작자에게는 '표현의 자유'라는 것이 있으니까.하지만 박훈정 감독이 간과한 것들이 있다. 관객들이 이 영화를 통해서 불편함을 느끼는 부분은 단순히 여성에 대한 묘사 때문만이 아니다. 싸이코패스 살인마, 즉 가해자를 최대한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묘사하기 위한 영화의 이상한 노력 때문이다. 여성 피해자들을 어떻게 하면 더 잔혹하고 더 무자비하게 희생시킬 수 있는지 고민한 흔적이 역력히 드러나는 '브이아이피'에서 입에 담기도 힘든 고문 끝에 여성들을 살해하는 살인마 김광일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 속에서 가장 아름답게 그려지는 인물이다. 김광일의 말간 얼굴을 클로즈업하거나 단정한 모습을 머리부터 손끝까지 꼼꼼히 훑어 내리는 카메라는 이 캐릭터의 '아름다움'에 취해 관객들에게도 이 아름다움을 전해주고 싶어 안달이 난 것처럼 보인다.
극중 김광일의 취미는 독서다. 북한 최고의 권력가 집안의 자식으로 해외에서 우수한 교육을 마쳤다는 극중 설정을 대변하는 것처럼 영어 원서로 된 소설을 읽는다. 살인마다운 살벌하고 무섭고 두려운 모습이 아닌, 말간 소년 같은 얼굴을 한 채 책을 읽는 그는 사이코패스 살인마라는 설정을 모른 채 보면 단숨에 사랑에 빠질 것처럼 환하고 깨끗하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이를 연기한 이종석의 빛나는 비주얼에 찬사를 보고 싶을 정도로. 가해자인 싸이코패스 살인마는 어떻게 하면 더 매력적으로, 어떻게 하면 더 아름답게 보일 수 있는지 고민 또 고민을 했는지 절로 느껴진다.한국형 싸이코패스 살인마 영화의 전설이자 바이블이 된 나홍진 감독의 영화 '추격자'(2008)에서도 싸이코패스 남성 살인마 의해 여성이 무자비하게 살해당한다. 잔혹성의 수위 역시 꽤 높다. 하지만 이 영화는 살인마 지영민을 매력적으로 아름답게 그리려 하지 않는다. 영화를 보고 나면 지영민이라는 무자비한 인간에 대해 진절머리가 나도록 그려진다. 그건 지영민이라는 캐릭터가 '영화적인 매력'이 없는 캐릭터였기 때문에도, 이를 연기한 하정우가 매력적이지 않은 배우였기 때문에도 아니다. 이 영화는 싸이코패스 살인마를 바라보는 시선이 냉혹했고 냉정했기 때문이다.
'브이아이피'는 김광일의 소년스러움을 강조했다. 겉모습과 다른 그의 잔혹한 본성을 더욱 강조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이종석 역시 언론 시사회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소년스런 말간 웃음 설정" 했다고 했다. 하지만 소년스러움이 '매력적임'으로 둔갑됐다. '추격자'의 지영민 역시 소년스러움이 강조된 싸이코패스다. 어린 아이처럼 취조 중에 펜을 돌리거나 움직이며 시종 일관 가만있지 못하고 초콜릿을 까먹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소년스러움을 아름다움으로 가장하지 않았다.
"싸이코패스 살인마의 악마성을 강조하기 위해 잔혹한 희생을 표현했다"는 박훈정 감독. 하지만 살인마 김광일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최대한 살이기 위해 온 노력을 기울인 영화 '브이아이피'. 우리는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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