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 2020 KBO리그 마운드는 '외인 천하'다.
다승과 평균자책점, 탈삼진 등 선발 투수들의 활약 지표를 볼 수 있는 세 부문의 5걸 모두 외국인 선수들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구창모(NC 다이노스) 양현종(KIA 타이거즈)이 다승(9승)과 탈삼진(99개)에서 나란히 공동 6위에 올라 있고, 평균자책점에선 임찬규(LG 트윈스·3.88)가 8위를 기록 중이다. 하지만 이들을 제외하면 딱히 눈에 띄는 국내 선발 투수는 보이지 않는다. 시즌 초반 9연승을 거뒀던 구창모가 대항마로 꼽혔지만, 부상 변수에 울었다. '토종 에이스' 양현종은 8월 들어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앞선 기복이 아쉬웠다.
지난해와 사뭇 다른 흐름이다. 2019 KBO리그 다승 부문에선 두산 이영하와 SK 김광현이 각각 17승으로 공동 2위, 양현종이 16승으로 4위에 올랐다. 특히 양현종은 다승 공동 2위 뿐만 아니라 평균자책점 1위(2.29), 탈삼진 3위(163개) 등 대부분의 지표에서 톱3에 이름을 올리며 국내 최고 투수의 자존심을 지킨 바 있다.
각 팀의 외국인 투수 대부분이 1, 2선발 자원이기에 지표 상위권 등극이 이변은 아니다. 하지만 외인 투수들이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국내 선발 투수들이 비슷한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은 결국 리그의 '질적 하락'과도 연관지을 수밖에 없는 문제다.
올해 국내 선발 투수들의 부진은 여러가지 이유가 꼽힌다. 코로나19와 리그 일정 지연이 대표적. 대부분의 투수들이 예년과 마찬가지로 3~4월에 컨디션 사이클을 맞추는 방향으로 시즌을 준비했다. 하지만 리그 일정이 미뤄지면서 투구 컨디션을 떨어뜨렸다가 다시 끌어 올리는 과정을 거쳤고, 이것이 결국 변수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예년과 다른 시즌 흐름 속에 투구 컨디션 유지가 쉽지 않았고, 이로 인해 빚어지는 부진이 부담감을 키우고 또 다른 부진을 낳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외국인 투수들 역시 스프링캠프 이후 일시 귀국 후 재입국 및 자가 격리 과정을 거치고 팀 훈련에 늦게 합류하는 변수를 맞았지만, 결과적으로 국내 선발 투수들에 비해선 쉽게 위기를 극복해냈다.
공인구 반발력 조정 효과가 사라진 것도 꼽을 만하다. 지난해 대부분의 투수들이 타구 반발력이 크게 낮아진 부분에 포커스를 맞추고 공격적인 투구로 타자들을 윽박질렀다. 올 시즌에도 공인구 반발력은 똑같이 유지됐지만, 겨우내 근력 강화, 히팅 포인트 조정 등 이를 간 타자들의 방망이가 시즌 초반부터 불을 뿜었다. 지난해와 같은 패턴의 공격적인 투구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면서 투수들이 어렵게 경기를 풀어갈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됐다.
내년 도쿄행을 준비하는 김경문호에게 이런 풍경은 고스란히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코로나 사태로 시즌 뒤 훈련 및 연습경기는 고사하고, 소집 가능 여부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다. 내년 초반 성적이 더해져야 하지만, 기본 베이스는 올 시즌 성적이 될 수밖에 없다. 기존에 꾸준히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던 투수들 뿐만 아니라 올 시즌 좋은 활약을 펼쳤거나 성장 가능성을 염두에 둔 예비 자원 확보가 필요하지만, 전체적인 지표가 떨어진다면 눈길을 주기 쉽지 않다. 풍부한 뎁스를 갖추지 못한 채 꾸려지는 명단은 결국 전체적인 전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