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법성 논란도 불거지며 법정 다툼…정비사업 추진도 제약
전문가 "전례 없는 초강력 규제 발표했으나 정교함은 부족"
(세종=연합뉴스) 홍국기 기자 = 서울 25개 구 전역과 경기 12곳을 규제지역(조정대상지역·투기과열지구)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은 10·15 주택 시장 안정화 대책은 전례 없는 초강력 규제로 평가된다.
정부가 인근 지역으로 가격 상승세가 번지는 이른바 풍선효과를 막기 위해 '삼중 규제'를 무리하게 일괄·획일 적용했다는 반발과 비판 여론이 대책 발표 초반부터 한 달이 다 된 지금까지 여전히 비등한 상황이다.
◇ "강남 잡으려다 노원 무너진다"…현수막 수백장 게시
13일 노원구에 따르면 노원미래도시정비사업추진단은 지난 7일 '강남 잡으려다 노원이 무너진다' 등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 약 200장을 구내 곳곳에 걸었다.
서울시가 강북 지역 재개발·재건축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개발에 기대감이 올라간 시점에 10·15대책으로 사업 추진에 제약이 생겼기 때문이다.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되면 재건축은 조합설립인가 이후, 재개발은 관리처분계획 인가 이후 조합원 지위 양도가 제한된다.
또 투기과열지구에서는 재건축 조합원당 주택 공급 수 1주택 제한, 정비사업에서 조합원·일반 분양 모두 5년간 재당첨 제한이 적용돼 재건축 2주택 이상 보유자의 경우 '현금 청산' 위험도 안게 된다.
박상철 노원미래도시정비사업추진단장(상계동154-3일대주택정비형준비위장)은 "갑작스럽게 발표된 10·15대책으로 사업성이 높지 않은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의 정비사업은 더욱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정부 공인 시세 조사 기관인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2022년 12월 대비 지난 9월까지 2년 9개월 새 서울 도봉구(-5.33%)·금천구(-3.47%)·강북구(-3.21%)·관악구(-1.56%)·구로구(-1.02%)·노원구(-0.98%)·강서구(-0.96%)·중랑구(-0.13%) 등 8개구는 아파트값이 하락했다.
정부는 2023년 1월 서울에서 강남권 3구(강남·서초·송파구)와 용산구 등 4개 구를 제외한 21개 구를 투기과열지구와 조정대상지역에서 해제했는데, 이 가운데 8개 구의 아파트값은 10·15 대책 발표 직전까지 외려 하락한 것이다.
집값이 하락했는데도 규제지역으로 지정됐다는 반발이 지속하는 가운데 규제지역 지정을 둘러싼 적법성 논란까지 불거졌다.
주택법 시행령에 따르면 조정대상지역의 최우선 지정 요건은 '직전 3개월 주택 가격 상승률이 해당 시도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1.3배를 초과한 경우'여야 한다.
주택법상 10·15대책의 직전 3개월은 7∼9월인데, 정부는 6∼8월 통계로 규제지역을 지정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집값이 덜 오른 곳까지 규제지역으로 지정했다는 논란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커졌다.
급기야 개혁신당 천하람 의원은 이번 규제지역 지정은 위법 행위라며 지난 11일 10·15대책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소송 효력 정지 가처분을 제기했다.
◇ 삼중 규제에 주택 시장·정비 사업 대혼란
정비사업이 활발한 서울 전역이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되면서 재건축 조합설립인가를 받은 단지는 10·15대책 발표 이후 조합원 지위 양도 가능 여부가 불확실해지는 문제가 생기며 주택을 매도하는데 제약이 걸렸다.
목동·여의도처럼 10·15대책 이전부터 토허구역이던 지역은 지난 16일부터 투기과열지구로 추가 지정되면서 곳곳에서 거래 당사자들 간 계약 파기 및 매매 무산 갈등이 불거졌다.
10·15 대책 이전 거래 당사자들은 매매 약정서를 쓰고 지방자치단체의 거래 허가를 기다렸는데, 그 사이에 규제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조합원 지위 양도가 가능한지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국토부에는 한 달 동안 100건에 가까운 관련 민원이 접수된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국토부의 공식적인 '교통정리'는 대책 발표 한 달이 다 되도록 나오지 않은 상태다.
다만, 국토부는 10·15대책 발효 이전에 체결된 매매 약정서를 규제의 예외로 보고 계약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도시주거환경정비법 시행령을 개정하는 방식으로 피해자들을 구제할 방침이다.
해당 구제안은 이르면 이번 주에 발표될 예정이다.
이 밖에도 10·15 대책은 여러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하며 진통을 겪고 있다.
특히 재개발·재건축의 경우 추진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사업이 지체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투미부동산컨설팅 김제경 소장은 "투기과열지구 대거 지정으로 5년 재당첨 금지에 걸리게 되는 조합원들이 크게 늘었다"며 "조합원 지위 양도 금지로 시장 혼란과 재개발·재건축 사업 지연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건국대 박합수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전례 없는 초강력 규제를 발표했으나 정교함이 부족해 시장에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며 "획일적인 규제 일변도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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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