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 '안 좋았던 건 가슴 속에 다 묻고 원점에서 다시 시작한다. 많이 웃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두산 베어스 감독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일본) 1군 타격 코치로 새출발하는 '국민타자' 이승엽의 다짐이다. 이 코치는 14일 자신의 SNS에 요미우리 모자를 쓴 사진과 함께 자신의 다짐을 담은 글귀를 남겼다.
이 코치는 2017년 현역 은퇴 후 한동안 현장과 거리를 뒀다. TV해설위원과 KBO 홍보대사, 총재 특별보좌, 국가대표팀 기술위원을 비롯해 자신이 설립한 야구장학재단 이사장 역할에 주력했다.
그러다 2023년 두산 감독으로 취임했다. TV 예능에서 은퇴 선수들이 이룬 팀을 지도한 것 외엔 정식 코칭 경험이 없는 그가 프로팀, 그것도 '왕조'를 일궜던 두산을 이끄는 데 우려가 컸던 게 사실. 현역시절 쌓은 풍부한 경험과 압도적인 기량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이 감독은 데뷔 첫 해 두산을 리그 5위로 이끌며 가을야구를 경험했다. 하지만 2024시즌 4위로 와일드카드결정전에 올랐으나 KT 위즈에 업셋을 허용하면서 고개를 떨궜고, 지난해엔 팀이 부진을 겪자 결국 6월 자진사퇴했다.
한동안 휴식을 취하던 그를 품은 건 2007년부터 2010년까지 뛰었던 요미우리다. 지난해 가을 마무리캠프에서 요미우리 초청으로 일본으로 건너간 이 코치는 보름 간 인스트럭터로 선수들을 지도했다. 이후 아베 신노스케 감독에게 1군 코치직을 제안 받은 이 코치는 숙고 끝에 요미우리에 합류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아베 감독은 "승짱(이승엽 코치 일본 시절 애칭)은 지난 가을부터 여러 선수들과 잘 어울렸다. 능력을 믿는다. 젊은 선수들을 위해 좋은 역할을 해줬으면 한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요미우리는 타선 육성이 시급한 팀으로 평가 받는다. 지난해 센트럴리그에서 한신 타이거스, 요코하마 디앤에이(DeNA) 베이스타스에 이은 3위를 기록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진출했지만,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요코하마에 2연패하면서 시즌을 마무리 했다. 팀 타율은 2할5푼으로 한신(2할4푼5리)과 요코하마(2할4푼7리)보다 나은 성적을 기록했으나, 팀 득점(463점)은 한신(496점)과 요코하마(510점)에 크게 밀렸다. 팀 홈런(96개)과 팀 도루(53개) 역시 상위 팀과 큰 격차를 드러내는 등 효율적인 공격을 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가운데 트레이 캐비지(17홈런)에 이어 팀내 홈런 2위(15개)를 기록했던 오카모토 가즈마가 포스팅을 거쳐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이적하며 공백까지 생겼다.
이 코치는 두산 감독 재임 시절 스몰볼을 추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역 시절 거포로 명성을 떨쳤던 모습과는 반대. 팀 성적을 책임져야 하는 감독 자리에서 자신의 스타일을 마냥 고수할 수 없다는 점에선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팀 전체를 아우르는 감독이 아닌 타격 파트만 책임지는 코치로 이 감독의 기량과 경험이 제대로 발휘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클 만한 부분이다.
요미우리는 한신 타이거즈와 함께 일본 프로야구(NPB) 인기를 양분하는 팀이다. 오랜 역사를 바탕으로 철저한 규율을 갖추고 있고, 매 시즌 우승에 도전하는 팀이다. 이런 명문구단에서의 코칭 경험은 이 코치에게 큰 발전의 기회다.
이 코치가 요미우리에서 한 단계 성장해 돌아온다면, 결과적으로는 한국 야구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할 수 있는 바탕이 만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스타 선수들의 은퇴 후 현장 외면 속에 우려가 커지고 있는 한국 야구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쓰디 쓴 실패를 거친 뒤 초심을 다짐하는 국민타자의 올 시즌 활약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