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야구에서 이토록 화려한 경력을 보유한 감독-수석코치의 조합이 있었을까.
|
매일 아침 8시. 선동열 감독은 애리조나 서프라이즈의 구단숙소를 홀로 나선다. 훈련장인 '캔자스시티 로얄스 컴플렉스'까지는 차로 10분 거리. 선수단보다 약 1시간30분 일찍 도착한 선 감독은 훈련장 주변을 빠르게 걷기 시작한다. 1시간 동안 8㎞ 정도를 걷고 나면 온 몸이 땀에 젖는다. 이 순간은 오로지 선 감독만의 시간이다. "이 시간이 감독에게는 가장 편하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때에요". 선수 평가와 전력구상으로 선 감독의 머릿속은 복잡하다.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선동열 감독과 이순철 수석코치는 의외로 거의 마주칠 일이 없다. 점심식사 때 '겸상'조차 거의 하지 않는다. 어찌보면 빙빙 돌며 서로 피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28년 전 '프로 입단동기'의 수평관계에서 '감독-수석코치'의 수직관계로 바뀐 것이 어색해서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짙고, 탄탄한 신뢰를 바탕으로 시간과 공간을 쪼개 서로의 역할을 분담했기 때문이다. 서로 깍듯이 존칭을 사용하는 것도 상대방을 존중하고, 신뢰한다는 증거다.
선 감독은 큰 그림을 그리고, 이 수석은 거기에 색을 입힌다. "이 수석을 믿기 때문에 많은 부분을 맡기고 있습니다. 감독이 일일이 앞에 나서는 것은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길 것은 맡겨야죠. 그래서 이 수석에게 많은 권한을 줬어요". 두 사람의 역할 분담에 대한 선 감독의 설명이다.
역할이 다르니, 동선도 잘 안맞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이 수석이 내야 수비연습을 총괄하고 있을 때 선 감독은 불펜에서 투수들을 살핀다. 그래서 점심식사 시간이 잘 맞지 않는다. 보통 투수조의 점심시간이 30분 정도 늦게 시작되다보니 감독과 수석코치가 한 자리에 마주할 기회가 드문 것이다.
감독과 수석코치는 부모 역할. 조화로울 때 빛이 난다
감독과 수석코치의 역할에 대해 선동열 감독은 명확한 지론이 있다. "한 집안의 아버지·어머니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조화가 필요해요. 예를 들어, 아버지가 혼을 내면, 어머니가 다독여줘야 아이가 발전하는 거에요. 부모가 모두 잔소리만 하면 아이도 스트레스를 받겠죠".
선 감독은 자신의 전문분야인 투수 조련을 제외한 타격과 수비 등의 모든 훈련을 이 수석이 진행하도록 했다. 이 수석은 수시로 훈련에 대한 평가 등을 감독에게 보고하면서 팀을 운영중이다.
감독 경험이 있는 이 수석으로서는 선 감독이 자신에게 얼마나 파격적인 신뢰를 보여주는 지 잘 알고 있다. 이 수석은 "많은 권한을 줘서 부담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만큼 나를 믿고 있다는 뜻이니, 좋은 결과가 나오도록 애쓸 수 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
감독과 수석코치가 이렇듯 명확하게 각자의 할 일을 나누자 KIA 스프링캠프의 분위기는 활기차게 변했다. 일단 선수들의 얼굴에 자신감과 미소가 생겼다. 선 감독과 이 수석이 공통적으로 '칭찬'이라는 방법론을 택했기 때문이다. 선 감독은 "부임하고 보니, 선수들이 너무 위축돼 있더군요. 그래서 자주 칭찬해주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는 이 수석도 공감하는 부분이다.
28년 우정, '신뢰'는 변치 않는다
선동열 감독과 이순철 수석코치는 프로 입단 동기생이다. 85년 KIA 전신인 해태에 입단해 선 감독이 96년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로 이적하기 전까지 11시즌을 함께 뛰었다. 선 감독은 에이스이자 특급 마무리로, 이 수석은 부동의 톱타자이면서 중견수로 나서 총 7차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어냈다.
96년 이후 서로 다른 길을 걸었던 이들은 17년 만에 다시 한 유니폼을 입었다.
'입단동기'에서 '감독과 수석코치'로 재회한 두 사람은 20여년 전 해태 유니폼을 함께 입었을 때처럼 금세 의기투합했다. KIA 선수들을 이끌고, 다시 '해태의 영광'을 재현하자는 데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었다. 28년 전부터 쌓아온 '신뢰'가 두텁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 우정과 신뢰를 에너지로 삼아 두 '레전드'는 KIA를 재창조하고 있다.
서프라이즈(애리조나)=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