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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이것이 바로 선동열 감독의 '은퇴 처리기법'이었다.
본인도 더 뛰고 싶어하고 팬들의 사랑도 식지 않았지만, 구단이나 코칭스태프는 은퇴를 바라는 상황이 빚어내는 생기는 갈등이다. 2010년 삼성에서 은퇴식을 치른 양준혁이나 지난 3월31일 은퇴를 선언한 KIA 이종범이 그랬다. 누구도 선뜻 나서기 꺼려했다. 하지만, 선동열 감독은 이 상황에 뛰어 가혹하리만치 냉정한 결정으로 양준혁과 이종범을 은퇴시켰다. '냉혹한 승부사' 선 감독은 어떤 방법으로 이들의 의지를 꺾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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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7일, 개막 엔트리에 양준혁의 이름은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시즌 풀타임 출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면에서 선 감독은 양준혁 스스로 냉정한 현실을 깨닫게 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개막 이후 출전현황에서 그 뜻이 나타난다. 개막 당일, 양준혁은 대구 LG전에 5번 지명타자로 선발출전한다. 결과는 볼넷만 2개 얻어내며 4타수 무안타.
다음날은 6번으로 타순이 또 내려갔다. 포지션은 또 지명타자. "수비를 하는게 더 힘이난다"던 양준혁은 이날도 3타수 무안타에 그쳤다. 다음 경기는 30일 광주 KIA전. 선 감독은 상대 선발로 왼손 양현종이 나오자 아예 좌타자 양준혁을 라인업에서 뺐다. 4회초 일찌감치 6점을 뽑아 6대1로 이겼지만, 대타로도 쓰지 않았다. 그 다음날. 양준혁은 타순이 7번까지 내려간다. 이날 역시 4타수 무안타. 이날 이후 삼성 라인업에서 양준혁의 이름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계속 이런 패턴의 반복이었다. 양준혁은 늘 최선을 다해 배팅훈련을 했지만, 선 감독은 그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5월25일 대구 SK전에서 14대1로 이길 때나 6월23일 잠실 두산전에서 10대1로 이길 때조차 선 감독은 양준혁을 대타로도 쓰지 않았다. 오히려 7월21일 광주 KIA전 때는 0-5로 뒤지던 9회초 선두 대타로 출전시킨 적은 있다.
'도태되고 있다'는 굴욕감 속에서 양준혁은 차가운 현실을 확실히 깨닫게 됐다. 후반기에는 후배들의 배팅볼 투수를 자청하기도 하면서 선배의 깨끗한 뒷모습을 보이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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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혁을 서서히 도태시킨 선 감독은 이종범에게는 조금 다른 방법을 썼다. 이번에는 과거와 달리 더욱 단도직입적으로 나았다. 개막엔트리 포함에 대한 차이점도 있다. 양준혁은 포함시켰지만, 이종범의 자리는 비워두지 않았다. 왜 였을까.
일단은 선수의 타격스타일 차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오른손 이종범보다는 왼손 양준혁이 더 활용범위가 넓다. 물론, 이종범 역시 주류 스피드와 누상에서의 감각, 수비력이 장점이나 이 정도쯤은 양준혁의 정확한 타격으로 커할 수 있다는 자신신감이다.
선 감독도 애초부터 이종범을 은퇴시킬 생각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 10월21일 선수단 첫 상견례 직후 이종범을 따로 만난다. 이 자리에서 선 감독은 이종범에게 "함께 하자"고 마음의 문을 열었다. 그 말에 의해 이종범은 11월 미야자키 마무리캠프와 1~3월 미국-일본 스프링캠프를 소화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선 감독은 이종범의 가능성을 일부 믿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시범경기를 통해 보니 이종범이 기량이 기대에 못미쳤던 것이다. 그것이 확인되자 선 감독은 단호하게 변했다. 이순철 수석코치를 통해 "플레잉코치로 시즌을 치르자"는 수정제안을 내놓는다. 현역에 대한 의지가 컸던 이종범에게 "1군에는 자리가 없다"는 말은 커다란 상처였다.
선 감독이 고향 후배이자 함께 '해태 왕조'의 영광을 이끌었던 이종범을 단호하게 내친 배경에는 양준혁 케이스에서 배운 '학습효과'도 일정부분 영향을 미쳤다. 팬들의 비난은 쏟아질 지 몰라도 팀의 체질개선이라는 측면에서는 큰 효과가 있고, 질질 끄느니 애초에 확실히 매듭짓고 시즌을 치르는 게 더 낫다는 깨달음이었던 것이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