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범과 양준혁의 사례로 본 SUN의 '뜨거운 감자' 다루는 법

기사입력 2012-04-03 13:19


30일 대구구장에서 열릴 예정이던 2012 프로야구 시범경기 기아와 삼성의 경기가 우천으로 취소됐다. 기아 선동열 감독이 덕아웃에서 취재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대구=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2.03.30/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이것이 바로 선동열 감독의 '은퇴 처리기법'이었다.

손을 대면 다치지만, 그냥 놔둘 수도 없다. 사회 어느 분야에나 늘 '뜨거운 감자'는 존재한다. 매우 조심스럽고 민감한 사안이라 그 누구도 그에 대한 정의를 쉽게 내릴 수 없고, 처리도 어려운 문제다.

프로야구 선수들의 은퇴 문제 역시 마찬가지. 어떤 선수든 '보다 오래' 현역생활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스스로 납득하지 않는 한 선수들의 사전에 '은퇴'라는 단어는 없다. 이는 '베테랑'의 활약에 오랫동안 열광해 온 팬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구단이나 코칭스태프의 시각은 다르다. '베테랑'이 품고있는 경험이나 무형의 영향력보다는 젊은 선수들의 힘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결국 '뜨거운 감자'는 이런 시각의 차이 때문에 발생하게 된다.

본인도 더 뛰고 싶어하고 팬들의 사랑도 식지 않았지만, 구단이나 코칭스태프는 은퇴를 바라는 상황이 빚어내는 생기는 갈등이다. 2010년 삼성에서 은퇴식을 치른 양준혁이나 지난 3월31일 은퇴를 선언한 KIA 이종범이 그랬다. 누구도 선뜻 나서기 꺼려했다. 하지만, 선동열 감독은 이 상황에 뛰어 가혹하리만치 냉정한 결정으로 양준혁과 이종범을 은퇴시켰다. '냉혹한 승부사' 선 감독은 어떤 방법으로 이들의 의지를 꺾었을까.


지난 2010년 9월19일 대구 SK전에서 은퇴경기를 치른 뒤 은퇴식에서 울먹거리고 있는 양준혁. 스포츠조선DB
양준혁은 서서히 도태됐다

2010년 시즌 개막을 앞둔 양준혁은 기로에 서 있었다. 바로 전 시즌에서 타율은 3할2푼9리로 높았지만, 17시즌 만에 처음으로 출전경기수가 100경기 미만(82경기)로 떨어진 상황. 아직 타격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은퇴압력이 커지고 있었다. 팀이 2009년 포스트시즌에 탈락한 까닭에 세대교체의 당위성이 커지던 상황. 그래도 양준혁은 꿋꿋이 스프링캠프를 소화했다.

3월27일, 개막 엔트리에 양준혁의 이름은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시즌 풀타임 출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면에서 선 감독은 양준혁 스스로 냉정한 현실을 깨닫게 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개막 이후 출전현황에서 그 뜻이 나타난다. 개막 당일, 양준혁은 대구 LG전에 5번 지명타자로 선발출전한다. 결과는 볼넷만 2개 얻어내며 4타수 무안타.

다음날은 6번으로 타순이 또 내려갔다. 포지션은 또 지명타자. "수비를 하는게 더 힘이난다"던 양준혁은 이날도 3타수 무안타에 그쳤다. 다음 경기는 30일 광주 KIA전. 선 감독은 상대 선발로 왼손 양현종이 나오자 아예 좌타자 양준혁을 라인업에서 뺐다. 4회초 일찌감치 6점을 뽑아 6대1로 이겼지만, 대타로도 쓰지 않았다. 그 다음날. 양준혁은 타순이 7번까지 내려간다. 이날 역시 4타수 무안타. 이날 이후 삼성 라인업에서 양준혁의 이름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계속 이런 패턴의 반복이었다. 양준혁은 늘 최선을 다해 배팅훈련을 했지만, 선 감독은 그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5월25일 대구 SK전에서 14대1로 이길 때나 6월23일 잠실 두산전에서 10대1로 이길 때조차 선 감독은 양준혁을 대타로도 쓰지 않았다. 오히려 7월21일 광주 KIA전 때는 0-5로 뒤지던 9회초 선두 대타로 출전시킨 적은 있다.

'도태되고 있다'는 굴욕감 속에서 양준혁은 차가운 현실을 확실히 깨닫게 됐다. 후반기에는 후배들의 배팅볼 투수를 자청하기도 하면서 선배의 깨끗한 뒷모습을 보이려했다.


스포츠조선
20090506
6일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히어로즈와 기아 타이거즈이 경기에서
6초 2사 이종범이 좌중월 솔로 홈런을 치고 덕아웃에서 환호 하고 있다
목동=최문영 기자 deer@
확실한 전언, 이종범의 자리는 없었다

양준혁을 서서히 도태시킨 선 감독은 이종범에게는 조금 다른 방법을 썼다. 이번에는 과거와 달리 더욱 단도직입적으로 나았다. 개막엔트리 포함에 대한 차이점도 있다. 양준혁은 포함시켰지만, 이종범의 자리는 비워두지 않았다. 왜 였을까.

일단은 선수의 타격스타일 차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오른손 이종범보다는 왼손 양준혁이 더 활용범위가 넓다. 물론, 이종범 역시 주류 스피드와 누상에서의 감각, 수비력이 장점이나 이 정도쯤은 양준혁의 정확한 타격으로 커할 수 있다는 자신신감이다.

선 감독도 애초부터 이종범을 은퇴시킬 생각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 10월21일 선수단 첫 상견례 직후 이종범을 따로 만난다. 이 자리에서 선 감독은 이종범에게 "함께 하자"고 마음의 문을 열었다. 그 말에 의해 이종범은 11월 미야자키 마무리캠프와 1~3월 미국-일본 스프링캠프를 소화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선 감독은 이종범의 가능성을 일부 믿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시범경기를 통해 보니 이종범이 기량이 기대에 못미쳤던 것이다. 그것이 확인되자 선 감독은 단호하게 변했다. 이순철 수석코치를 통해 "플레잉코치로 시즌을 치르자"는 수정제안을 내놓는다. 현역에 대한 의지가 컸던 이종범에게 "1군에는 자리가 없다"는 말은 커다란 상처였다.

선 감독이 고향 후배이자 함께 '해태 왕조'의 영광을 이끌었던 이종범을 단호하게 내친 배경에는 양준혁 케이스에서 배운 '학습효과'도 일정부분 영향을 미쳤다. 팬들의 비난은 쏟아질 지 몰라도 팀의 체질개선이라는 측면에서는 큰 효과가 있고, 질질 끄느니 애초에 확실히 매듭짓고 시즌을 치르는 게 더 낫다는 깨달음이었던 것이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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