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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백스크린 때리는 홈런 한번 맞아보자!"
직구 뒀다 뭐에 쓰겠나
김기태 감독은 '도망가는 피칭'을 정말 싫어한다. 특히 젊은 투수들이 홈런 맞는 게 두려워서 자꾸 외곽으로 빼는 피칭을 하는 걸 절대 못 본다. 이런 경우 조용하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경고를 준다. "그냥 한가운데 직구로 팍팍 꽂아라, 제발."
어린 투수가 삼성 이승엽 같은 거물 타자를 만났을 때 자꾸 변화구를 던지면서 피하면 안 된다는 얘기도 나왔다. 그럴 때일수록 본인이 가진 직구의 위력을 믿고 과감한 승부를 하라는 게 김기태 감독의 주문이다.
'LG스러움'과 '김기태답다'의 경쟁
야구팬들에게 'LG스럽다'는 표현은 긍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9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다보니 'LG스럽다'는, 뭔가 착착 들어맞지 않고 실수가 나온다거나 자신감도 없으며 번번이 추격을 허용하거나 덜미를 잡힌다는 의미 정도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김기태 감독은 시원시원한 직선적인 성격이다. '김기태답다'는 자신감 있게 공격적인 플레이를 선호한다는 의미다. LG는 다른 7개 팀과 경쟁중이지만, 한편으론 내부적으로 또다른 경쟁을 치르고 있다. 9년 동안 쌓여온 '불안감' 혹은 '위축'과 '김기태 스타일'이 경쟁중인 셈이다.
LG는 상위권을 노릴 수 있는 전력이 절대 아니다. 정말 운이 좋고, 여러 조건이 효율적으로 맞아떨어질 경우 겨우 4위를 노려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감독으로선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는 게 당장의 1승 보다 중요한 일이다. 지난주 경기에서도 여러 차례 드러났다. 당장의 1점을 위해 번트를 대기 보다는 강공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번트를 대는 게 나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결과론일 뿐이다. 팬들은 1승에 주목하지만, 감독은 전체 시즌을 봐야 한다.
자신감이 선수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 지를 LG 유격수 오지환이 증명하고 있다. 수비 실수 때문에 매번 위축됐던 그가 이번 시즌 들어선 한결 나아진 스텝을 보여주고 있다. 왼손투수 공포증이 있었던 그가, 이제는 왼손투수 상대로 안타를 펑펑 때리고 있다.
김기태 감독은 "아직도 실전에서 선수들이 머뭇머뭇하는 장면이 나온다. 벤치 사인이 나왔는데도 도루를 시도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더 자신감을 가져야한다"고 말했다.
유머 속에 느껴지는 LG의 변화
지난 15일 KIA전에서, LG는 마지막 수비때 위험한 장면을 겪었다. 무사 1루에서 김원섭이 친 타구를 LG 2루수 서동욱이 잘 잡지 못하고 글러브로 튕겨냈다. 하지만 운 좋게도 굴절된 타구가 2루 쪽으로 향하면서 베이스커버에 들어온 오지환이 그걸 잡아 더블플레이를 성공시켰다.
김기태 감독은 "그거 서동욱의 실수가 아니라 일부러 그렇게 한거다. 전지훈련 때부터 우린 그런 더블플레이 훈련을 많이 했다. 이제 한번 써먹었네"라며 웃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농담이다. 실수를 강조하기 보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으려는 감독의 의지가 농담으로 표현된 케이스다.
개막 둘째날 삼성과의 경기에선 벤치 사인이 선수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는데, 전화위복으로 김일경이 의외로 2루타를 친 상황이 발생했다. 중계화면상으로 '뭔가 사인이 맞지 않았다'는 LG 벤치의 모습이 확연히 드러났다. 하지만 김기태 감독은 "아~, 홈런 치라고 사인 냈는데 2루타를 치면 어쩌냐"면서 웃었다.
LG는 여전히 이길 가능성 보다 질 가능성이 많은 팀이다. 하지만 뭔가 재미있어졌다. 3패를 당한 경기에서도 거의 매번 추격에 성공하거나 상대 목덜미 근처까지 따라붙었다. 맥없이 지는 모습은 확실히 많이 사라졌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