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발 20명…" 차명석 코치, LG의 미래를 바라보다

기사입력 2012-05-21 13:37


경기 도중 마운드에 올라 주키치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LG 차명석 투수코치(왼쪽). 스포츠조선DB

"시즌 전엔 감독님께 선발투수 20명 쓰겠다고 했어요."

모두가 LG의 전력을 최하위권으로 예상했다. 특히 허약한 마운드가 문제였다. 경기조작 광풍이 지나간 뒤 붕괴된 마운드는 LG를 나락으로 떨어뜨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LG는 일어섰다. 리즈의 마무리 전환은 실패로 끝났지만, 봉중근의 전업 마무리 기용을 앞두고 유원상-봉중근의 필승조가 굳건하다. 구멍이 송송 나 보였던 선발진은 이승우 최성훈 임정우 등 유망주들이 나서 채웠다. 이젠 오히려 선발자리가 부족할 지경이다. 눈병으로 2군으로 내려간 투수조장 김광삼은 1군 선발로테이션에 자리가 나기만을 기다리는 중이고, 지난해부터 기대가 컸던 2년차 임찬규는 당분간 불펜으로 나선다. 최성훈도 불펜으로 이동했다.

20일까지 LG는 팀 평균자책점 3.80으로 SK(3.60)에 이어 2위다. 이닝 당 출루 허용률(WHIP) 역시 1.32로 1위 SK(1.27)의 뒤를 잇고 있다. 가장 긍정적인 것은 팀 볼넷이 100개로 8개 구단 중 가장 적다는 점이다. 지난해엔 네번째로 많은 500개였다.

김기태 감독은 모든 공을 차명석 투수코치에게 돌렸다. 20일 잠실 두산전을 앞두고 김 감독은 "차분하고 명석한 우리 투수코치만 믿고 있다. 워낙 말씀을 잘하시는 분이라 선수들에게도 그 효과가 있는 모양"이라며 활짝 웃었다. 차 코치의 이름을 따 '차분하고 명석한'이란 수식어를 쓰면서 차 코치를 치켜세웠다.

투수들의 불펜피칭을 봐주던 차 코치는 "모든 게 감독님 덕"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곧이어 지금까지의 모습에 안주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차 코치는 "우리팀 마운드가 좋아졌다는 평가를 들으려면 전반기는 끝나야 한다. 우리의 투수력이 검증되려면 한 시즌은 지나봐야 한다. LG 마운드가 강해졌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이렇게 3년은 가야 한다"고 말했다.

차 코치의 말에서 미래 지향적인 모습이 묻어나왔다. 지금 당장의 성적도 중요하지만, 3년 뒤를 내다보고 있는 것이다. 올시즌 신예들의 적극적인 선발투수 기용은 그 일환이다.

전지훈련 때 차 코치는 김 감독에게 "올시즌 선발투수는 20명 정도 쓰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 선발진이었지만, 역설적으로 이를 이용한 것이다. 많은 투수들에게 기회를 줘, 그들의 잠재력을 끌어내고자 함이었다. 가능성을 보인다면, 계속해서 육성해 미래의 LG 선발투수로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깜짝 카드 1탄인 6년차 왼손투수 이승우의 기용부터 놀라웠다. 이승우는 경찰청 제대 후 다시 팔꿈치 통증이 도져 겨우내 재활에 매달렸다. 코칭스태프의 시즌 구상에 없던 선수였다. 하지만 오키나와 캠프를 마친 뒤 2군에서 좋다는 보고를 받고 곧장 테스트를 시작했다. 그동안 관찰하지 못한, 그것도 가능성만 있는 재활투수에게 기회를 주는 일은 쉽지 않다. 시범경기와 개막 2연전 깜짝 등판으로 실전에서 검증을 받은 이승우는 선발로테이션에 고정됐다.

차 코치는 투수들에게 기술적 지도를 강요하지 않는다. 보상선수로 영입해 최근 2경기 연속 호투를 펼친 임정우는 스프링캠프 때부터 LG 코칭스태프에게 '물건'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이었지만 차 코치는 일부러 투구폼을 건드리지 않았다.

시범경기 땐 도망가는 피칭을 없애려고 3월22일 잠실 SK전에서 경기 내내 직구만 던지게 하기도 했다. '너의 볼은 좋다'는 믿음감을 주기 위해 색다른 주문을 한 것이다. 최근엔 컨트롤을 잡기 위해 오른팔의 백스윙 동작을 보다 간결하게 잡아주고 있는 중이다. 2군에 내려간 뒤에도 수시로 통화하며 조금씩 폼을 고쳐가도록 했다.

LG 불펜의 열쇠가 된 유원상은 차 코치의 직관에 따라 보직을 전환했다 성공한 케이스다. 차 코치는 이에 대해 "한화에 있을 때부터 관심있게 본 투수였다. 좋은 공을 가졌는데 성적이 안 나오더라. 자세히 보니 선발로 나와 박빙의 상황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고 밝혔다.

자신은 당연히 선발후보라고 생각했던 유원상을 선득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차 코치는 "옆에서 생활패턴을 관찰해보니 어떤 일이든 오랜 시간 집중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마운드에서도 짧은 시간에 모든 걸 쏟아내는 불펜투수가 맞다고 봤다"고 말했다. 차 코치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유원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향후 선수생활의 방향성을 잡아주는 멘토 역할까지 한 것이다.

차 코치는 "시즌 전 이러한 구상을 했을 뿐이지, 이렇게 되리라곤 예상도 못했다. 지금 '김기태표 야구'를 할 수 있도록 코치들이 각자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한사코 자신이 앞으로 드러나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가까운 미래를 바라보고 있는 차 코치, 김기태호의 훌륭한 조타수가 아닐까.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차명석 투수코치(왼쪽)와 김기태 감독이 이대진의 불펜피칭을 관찰하고 있다. 스포츠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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