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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에게서 95년 OB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95년 OB, 전문가들
OB 베어스(현 두산)가 95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자 많은 야구 전문가들은 얼굴을 들지 못했다. OB를 우승권으로 평가했던 전문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해 8월27일 2위 OB는 선두 LG와 6게임차였다. 그후 OB는 14경기에서 12승2패를 거두며 뚝심을 발휘했다. OB가 그즈음 해태와의 광주 4연전을 쓸어담고 1위에 오르자 LG가 해태를 원망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13년만에 우승을 차지한 OB는 전년도 7위에서 일약 챔피언으로 점프하는 영광을 누렸다.
올시즌 LG를 4강 전력으로 분류한 전문가들은 거의 없었다. 아니, 그렇게 전망하면 비웃음을 살 분위기였다. 그런데 LG는 개막후 70일이 다 돼가도록 중상위권에서 꾸준히 성적을 내고 있다. 요즘 경기인 출신 해설위원들이 "저도 LG를 최하위 후보로 봤었는데, 팬들에게 미안한 마음입니다"라고 말하는 걸 자주 들을 수 있다.
OB의 집단이탈 사건, LG의 대규모 전력 손실
야구 전문가들이 95년의 OB를 모래알 조직으로 봤던 이유가 있다. 그에앞서 94년 9월4일. 박철순 김형석 장호연 김상호 김상진 권명철 이광우 등 OB의 핵심멤버 17명이 쌍방울과의 전주 경기에서 1대2로 패한 뒤 당시 윤동균 감독에 반발, 집단으로 팀을 이탈해 서울로 돌아오는 사건이 발생했다.
프로야구 출범 13년째에 일어난, 초유의 사태였다. 윤동균 감독이 선수들의 태만한 경기 운영을 질책하며 체벌로 야구 방망이를 들려 한 게 원인이었다. 불만을 품은 고참선수들이 주도해 팀을 이탈한 것이다. 당시 OB 경창호 사장은 "집단 이탈은 어떤 명분으로도 용서되지 못할 명백한 계약위반"이라며 일부 중징계를 포함해 17명 전원을 징계한다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선수들은 "윤동균 감독이 경질돼야 선수단에 합류할 것"이라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또한 OB가 고참선수들을 포함한 대형 트레이드를 물밑으로 진행하고 있어 선수들이 반발한 것이라는 루머도 있었다. 결국엔 윤동균 감독의 사퇴와 선수 징계로 일단락됐다.
LG는 지난해 마무리캠프 이후 5명의 주요 선수를 잃었다. 주전포수 조인성, 주전 외야수 이택근, 핵심 셋업맨 송신영이 FA 계약을 통해 다른 팀으로 옮겼다. 그것만으로도 치명적 손실이란 얘기가 있었는데, 지난 2월에는 경기조작 사건 때문에 주전 선발투수 2명이 추가로 LG 유니폼을 벗었다. 두 케이스 모두 "이 팀은 이제 절단났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였다. 다음 시즌에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란 정말 어려운 분위기였다.
김인식 감독, 그리고 김기태 감독
팀워크가 엉망이 된 OB를 새로 맡은 지도자는 김인식 감독이었다. 워낙 큰 악재를 겪은 뒤라서 OB 구단은 95시즌에 큰 성적을 기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룹 탄생 100주년이 되는 96년 우승이 목표였다.
분위기 쇄신에 초점을 맞춘 김인식 감독은 3월초 일본 쓰쿠미 전지훈련을 마친 뒤 "해볼만하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젊고 파워 넘치는 투수진 속에서 희망을 느낀 것이다. 그후 선수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팀을 꾸려나갔다. 김상호는 25홈런과 101타점으로 타이틀을 따냈다. 최초의 서울 홈런왕이었고 92년 장종훈 이후 첫 세자리수 타점이었다. 포수 이도형을 발굴했다. 전년도에 32경기 출전에 그친 심정수를 116경기에 꾸준히 내보내며 거포로 성장하는 밑바탕을 마련해줬다. 심정수는 21홈런을 기록했다.
김기태 감독 역시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사령탑 첫시즌을 치르고 있다. "노력만 하면 기회는 반드시 온다"는 단순한 진리를 각인시키며 2군 및 신고선수 출신 자원을 골고루 기용하며 좋은 효과를 내고 있다. 팀워크를 중시하고 선수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경기를 치른다는 점에서 95년의 김인식 감독과 분명 닮았다. 쌍방울 시절 두 감독은 사제관계이기도 했다.
물론 지금의 LG가 95년의 OB처럼 우승을 차지하는 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 대신 지난 9년간의 암울했던 시기 때문에, 올해 LG는 4강에만 올라도 우승 못지 않은 엄청난 성과가 될 수 있다.
LG와 주중 3연전을 치르고 있는 SK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붙어보면 역시 LG는 전력이 센 팀이 아니다. 그런데 분위기가 좋다. 그게 현재 LG가 좋은 성적을 내는 힘인 것 같다." 17년의 시차를 두고 두 팀이 이렇게 닮아있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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