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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색한 광경이었다. 21일 오후 대구구장. 삼성 이승엽이 KIA전을 앞두고 배팅케이지에서 프리배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연속으로 공 4개 정도를 파울을 내는 게 아닌가. 이 장면을 지켜보던 류중일 감독도 고개를 갸우뚱하는 모습이었다. 이날 훈련때 대체로 타격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보였다.
500홈런에 대한 이승엽의 바람
8년의 세월을 일본에서 보낸 뒤 고향집으로 돌아온 이승엽은 '역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1일 현재 타격 2위(0.342), 홈런 4위(14개), 타점 공동3위(48개), 득점 3위(44점), 출루율 4위(0.408), 장타율 2위(0.594), 최다안타 1위(80개)에 랭크돼있다. 심지어 도루도 5개 있다.
이승엽도 그같은 사실을 의식한 듯 "500홈런, 의미 있습니까"라며 웃었다. 하지만 이어 "개인적으로는 우리 가족이 대대손손 자랑할 수 있는, '할아버지가 이런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훨씬 더 세월이 흘러서 '고조할아버지가 저랬다'는 얘기를 하면서 500홈런이 기억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승엽 이후 500홈런, 나올 수 있을까
한명의 타자가 500홈런을 기록하는 건 앞으로는 당분간 나오기 어려운 기록이다. 현역 타자 가운데 SK 박경완이 313홈런을 기록중이다. 넥센 송지만은 309개다. SK 박재홍이 299개, 두산 김동주가 272개다. 이대호가 225개를 친 상황에서 일본에 진출했는데, 그 역시 훗날 한일 통산 기록으로 500개를 향하기엔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이승엽도 수긍했다. 그는 "(또다른 500홈런 타자가 나오는 건) 당분간 힘들 것 같다. 500홈런이란 게 25홈런씩 20년간 치거나 30개씩 16,17년을 쳐야하는 기록이니까. 나 같은 경우야 포지션도 (수비 부담이 비교적 적은) 1루수였고 또 일본에서 수술한 것 빼고는 큰 부상 없이 계속 뛰었으니까 가능했던 것 같다"고 했다.
이승엽이 너무 잘 하면 한국 야구가 곤란하다?
주중 3연전 동안 이승엽과 매일 조금씩 얘기를 나누면서 다소 민감한 질문도 했다. 일부 야구팬들 사이에선 일본에서 막판 몇년간 어려움을 겪었던 이승엽이 한국에 오자마자 너무 좋은 성적을 내는 건 한국프로야구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걸 의미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에 대한 이승엽의 답변이다.
"(집에 돌아오니) 우선 마음이 편하다. 내가 한국에 돌아와서도 계속 못하는 게 정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일본에 있을 때보다 더 열심히 하려 노력한다. 나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난 용병 신분이라 나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여기 돌아와서는 팀을 생각한다.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했다. 내가 잘 하면 한국 야구가 낮아진다는 얘기는 닭과 달걀의 문제 아닐까. 과연 누가 그렇게 평가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은 하지도 않고, 그런 마음도 안 든다."
홈런에 왜 영양가를 따지나
이런저런 얘기 가운데 이승엽이 정색을 하면서 언급한 부분이 있다. 이승엽은 "홈런은 언제든 기분 좋다. 끝내기 홈런은 당연히 좋다. 10-0으로 이길 때 치거나 0-10으로 지고 있을 때 쳐도 분명 팀에는 도움이 된다. 완봉패를 당하는 것 보다는 1점이라도 내고 지는 게 다음날을 위해 낫다. 7-0에서 9-0을 만드는 홈런도 더 달아날 수 있으니 좋다"고 말했다.
힘든 외국 생활 속에서 이승엽도 인터넷 댓글을 가끔 접한 것 같다. 일부 네티즌들은 타자가 홈런을 치면 영양가가 있나 없나 논쟁을 벌이곤 한다. 최근 인터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보인 오릭스 이대호의 홈런을 놓고도 일부 네티즌들이 비슷한 얘기를 반복하고 있다.
이승엽은 "의미 없는 홈런이란 없다. 영양가가 있다, 없다라는 그런 얘기는 선수 입장에선 굉장히 자존심이 상하는 얘기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2010년 야구를 처음으로 놓으려 했다
"일본에서 마지막 2,3년간 정말 힘들었을 것 같다. 솔직히 남몰래 울어본 적은 없나"라고 물어봤다. 이승엽은 웃으며 "그런 적은 없다. 하지만 솔직히 힘들었다. 요미우리에서 2군 생활을 하는데 잘 훈련하고 마음의 준비가 됐는데 1군에서 안 불러줬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다리는 것밖에 없을 때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어진 이승엽의 아픈 기억이다. "2010년 요미우리 마지막 해에 대타로 주로 나갔다. 수치심까진 아니었지만 어색했다. 그때마다 성적을 내야한다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너무 힘들었다. 어떻게 해야할까를 고민했다. 어려서 야구를 시작한 뒤 처음으로, 이제 마무리해야할 때가 왔나 하는 약한 마음이 생겼다. 내 가족에게 약한 모습을 보인 적이 그전엔 없었는데 당시 아이 엄마에게 그만둘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했었다."
만약 그때 이승엽이 진짜 야구를 접었다면 지금과 같은, 500홈런을 앞둔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마음을 가다듬고 이듬해 오릭스에서 다시 출발하기까지 심적 고통이 컸으리라 짐작된다.
홈런? 칠만큼 쳤으니
야구선수로서 이승엽의 마지막 목표가 무엇인지 질문했다. 이승엽은 "단순히 손쉽게 가능한 목표를 세울까, 아니면 더 높은 곳을 봐야할까를 놓고 내 생각이 왔다갔다 한다. 너무 먼 얘기인지 모르겠지만, 쉽진 않겠지만 순수 국내 안타로만 2000안타에 닿고 싶다"고 했다.
지난달 8일 이승엽은 한일 통산 2000안타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일본에서 8년간 친 686안타를 빼고 다시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이승엽이 한국에서 기록한 통산 안타수는 1366개다. 이승엽은 "지금 서른일곱살이니까 부상 없이 몸관리를 잘 해서 꼭 2000안타를 쳐보고 싶다"고 했다. 이승엽의 마지막 목표까지 634개가 남았다. 그는 "홈런은 칠 만큼 쳐봤으니"라며 웃었다.
기억에 남는 홈런은
497개나 치면서 어떤 홈런이 그의 기억에 여전히 자리잡고 있을까. 이승엽은 "기억나는 순간이 많다. 프로 데뷔 첫홈런은 이강철 선배님을 상대로 기록했다. 300홈런째는 김원형 선배님이었다. 99년(54홈런)에 처음으로 50개에 도달했을 때 투수는 방동민이었다. 2003년에 56홈런을 쳤는데 사실 그것보다 99년에 처음으로 43호째를 쳤을 때(우즈의 42홈런 기록 돌파를 의미)가 더 기억난다. 문동환 선배님이었다"고 상세히 기억해냈다. "야구와 관련해선 내 기억력이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
역시 가장 대단한 기록은 56홈런이었다. 그러니 이승엽에겐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그는 "지나고 보면 오히려 56홈런 치고 힘들었다. 팀이 1등을 할 수 있었다가 나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너무 쏟아지니 결국엔 3등을 했다. 선수들은 표현 안해도 좋은 방향이 아니었다. 선후배 모두 아무런 말도 안하지만 개인적으로 너무 미안한 마음이었다. 지금 한국에 돌아와서 그런 부분에 더 신경쓰고 있다"고 말했다.
497개 이외의 뭉클했던 홈런 3선
497개 이외에 기억나는 홈런을 꼽아달라고 했다. 가장 뭉클했던 홈런은 2002년 LG와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쏘아올린 3점짜리 동점포였다.
이승엽은 "정말 뭉클했다. 어느 홈런 보다도 기뻤다. 홈런 나오기 전까지 내가 부진했다. 팀이 첫 우승을 했으니 그때가 정말 좋았다"고 했다. 또하나 2008년 베이징올림픽 준결승서 일본을 상대로 쏘아올린 홈런도 뭉클했다고 한다. 당시 이승엽은 경기후 인터뷰에서 울먹거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2006년 제1회 WBC 도쿄라운드에서 일본을 상대로 역전 2점홈런을 쏘아올린 장면을 회상했다. 이승엽은 "그때 홈런 치고 베이스를 도는데 도쿄돔에 한국 관중이 300~400명 모여있는 쪽에서만 와! 하고 함성이 나왔다. 그리고 나머지 4만명이 정말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때 분위기를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기자도 기억난다. 그 장면이 나오기 1시간 전까지 인천공항에서 TV 중계를 보다가 WBC 미국 라운드 취재를 위해 비행기에 올랐다. LA 공항에 도착한 뒤 소식을 접하고 사진기자와 함께 셔틀버스 안에서 하이파이브를 했던 즐거웠던 추억의 주인공이 바로 이승엽이었다.
대구=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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