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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좋은 욕을 하는 것 같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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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과거 서로 안 좋았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30일 잠실 두산전에서 나지완은 1-4로 뒤지던 9회초 2사 1, 3루에서 프록터의 초구를 잡아당겨 홈런성 타구를 날렸다. 처음에 타구가 담장을 넘어간 줄 알았던 나지완은 두 팔을 번쩍 들어올리며 기쁨의 세리모니를 펼쳤다. 하지만 타구는 담장 최상단에 맞아 결국 홈런이 되지 못했고, 프록터는 나지완의 세리모니에 분노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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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난투가 벌어지지 않는 한 선수간의 분쟁은 하루 정도면 사라진다. 국내선수들의 경우 대부분 학생시절부터 함께 야구를 해 온 사이이기 때문에 경기 후 통화를 하거나 해서 서로의 감정을 털어낸다. 누군가 중재에 나서기도 한다. 그러나 외국인 선수와의 분쟁은 약간 성격이 다르다. 때문에 나지완은 하루가 지나서도 프록터에 대한 감정을 완전히 녹이지 못했다.
이는 중계화면에 잡힌 프록터의 입모양 때문이다. 프록터가 2아웃을 잡고나서 두산 덕아웃을 향해 외친 장면이 마치 나지완에게 한 것처럼 중계화면에 나오자 이를 본 일부 팬들이 프록터가 "Yellow pig(황인종을 비하하는 인종차별적 발언)"라고 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댓글 등을 통해 이를 본 나지완은 4일 경기를 앞두고 직접 프록터를 찾아가 "왜 그런 말을 했느냐"며 따졌다.
프록터는 팀 통역을 통해 나지완의 항의를 전해듣고는 "오 마이 갓!"이라고 외치며 깜짝 놀랐다. 인종차별 발언은 메이저리그에서도 매우 비신사적이고 질이 나쁜 행위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두산 통역에 따르면 경기 전 덕아웃에서 니퍼트, 통역요원과 함께 앉아있던 프록터가 이 두명을 향해 "내가 최근 2아웃 이후 안타를 많이 맞으니 오늘 등판해서 아웃카운트 2개를 잡으면 함성을 질러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막상 2아웃을 잡은 후 프록터가 덕아웃을 보니 니퍼트가 박수만 치고 있길래 "Yell it me, NIP!(니퍼트, 소리쳐줘!)"라고 외쳤다는 것이다. 'NIP'은 프록터가 니퍼트를 부르는 애칭이었다. 이 말을 하는 입모양이 중계화면에 잡혔는데, 마치 옐로우 피그라고 하는 처럼 보였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이 설명을 들은 나지완은 상황을 이해했다. 결국 서로간의 오해를 푼 나지완과 프록터는 악수를 나눈 채 각자 덕아웃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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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클리어링의 두 주체, 나지완과 프록터는 이렇게 서로간의 오해를 풀어냈다. 하지만 당시 현장에는 또 다른 주인공이 개입돼 있었다. 바로 두산 외야수 김현수였다. 벤치클리어링이 벌어진 직후 김현수는 나지완과 필요 이상으로 언쟁을 벌였다. 벤치클리어링이 정리되고, 경기가 속개된 후에도 이 언쟁은 이어졌다. 볼넷으로 걸어나간 나지완이 후속 차일목의 안타로 2루에 나간 뒤 우익수로 나가있던 김현수와 또 말싸움을 벌였다. 중계화면에는 두 선수가 서로를 향해 욕설을 내뱉는 모습이 생생히 잡혔다.
이들의 말싸움이야말로 매우 이상한 모습이었다. 프록터와 나지완이야 '빈볼 시비'라는 매개체가 있었다지만, 나지완과 김현수는 서로 싸울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싸워서는 안 되는 관계였다. 이들은 신일중-신일고를 함께 다녔다. 나지완이 2년 선배다. 나지완이 신일고 3학년 때 김현수가 신입생이었다는 뜻으로 쉽게 말해 '방장-방졸'의 관계다. 위계질서가 엄격한 스포츠계에서 이 차이는 엄청나다.
때문에 선수와 코치 사이에서도 당시 김현수가 나지완을 향해 욕설을 내뱉은 직후 "도대체 저 둘 사이에 무슨 큰 일이 있었기에 저렇게까지 으르렁대나"라며 의아해하는 시각이 많았다. 오죽하면 선동열 감독이 다음날 나지완에게 "학교 다닐때 기합 많이 줬었냐"라고 물어볼 정도였다. 나지완 역시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학교 다닐 때 전혀 그런 일도 없었고, 얼마 전까지도 친하게 지냈었다"는 설명이다.
이 둘은 여전히 그 속사정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두산 관계자는 "나지완이 후배인 김현수가 자신을 노려보는 것으로 오해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정확한 속사정은 알 수 없다. 어쨌든 선배를 향해 대놓고 욕설을 내뱉은 김현수가 먼저 사과를 해야하는 건 맞다. 김현수는 3일 밤 나지완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를 했으나 마음이 단단히 상한 나지완은 "앞으로 인사도 하지 말라"며 거절했다. 김현수는 4일에도 경기 전 나지완을 찾아가 다시 사과 인사를 했다. 그러나 이들 사이의 앙금은 말끔하게 해소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광주=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