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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발이든 무엇이든 팬들이 원하신다면…."
투표 종료 시점을 앞두고 요즘 프로야구판에는 부쩍 가슴 졸이게 된 선수가 있다.
그런 그가 올스타 인기투표의 숨가쁜 득표 레이스를 지켜보면서 겉으로 태연한 척 하지만 속으론 초조해지고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팬들이 원하신다면 무엇이든 한다. 삭발이든 농군패션이든…."이라고 '충성맹세'까지 했을까. '농군패션'이란 고전적인 유니폼 착용방식. 검정색 스타킹으로 유니폼 바지 하단을 덮어 무릎까지 올려 입는 것으로, 바지를 겉으로 빼입는 유행에 밀려 촌스러운 패션으로 통한다. 심지어 홍성흔은 "팬들이 나의 고유 타격폼을 버리고 방망이를 짧게 잡고 치라면 그것도 해야 할 판"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동안 팬들의 사랑 덕분에 전국구 스타가 됐기 때문에 팬의 소중함을 모를 베테랑 홍성흔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번에 '죽는 시늉도 하겠다'는 태세로 유별난 '팬 예찬론'을 들고 나온 것이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삼성 류중일 감독에게 당한 설움때문이다. 지난 4월말 이스턴리그 감독으로 선정된 류 감독은 올스타 선정 투표 개시(5월 29일)를 앞두고 10개 포지션 별 후보를 선정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류 감독은 지명타자 부문에 이승엽(삼성) 홍성흔과 함께 이호준(SK) 김동주(두산)를 올렸다. 홍성흔에게 우려가 현실이 됐다. 이승엽은 1루수 출전도 하고 있기 때문에 1루수 부문 후보로 들어갈 줄 알았는데 지명타자에서 경쟁하게 된 것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스턴리그 지명타자는 홍성흔의 독무대였다. 지난해까지 10차례 올스타에 뽑힌 홍성흔은 2009년 FA(자유계약선수)로 두산에서 롯데로 옮긴 후 3년 연속 압도적인 표차이로 지명타자에 뽑혔다. 하지만 '국민타자'이자 돌아온 해외파 이승엽과 경쟁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불안하기 짝이 없는데 류 감독의 '위로'에 살짝 자존심이 상했다.
홍성흔이 이승엽과의 득표경쟁을 우려한다는 사실을 접한 류 감독이 농담조로 "감독 추천 선수로 뽑아주면 되지 않겠냐"고 해법을 제시한 것이다. 단골 올스타인 홍성흔 입장에서는 오히려 초라하게 만들고 기죽이는 위로였다.
하지만 6월 4일 인기투표 1차 중간집계에서 13만7974표를 얻어 이승엽(18만543표)에게 4만여표 뒤진 결과가 나오자 달라진 현실을 직시하고 '아! 옛날이여'를 외칠 수 밖에 없었다.
한데 이게 웬걸. 6월 중순부터 극적인 역전을 시작하더니 이제는 이승엽을 제법 큰 표 차이로 따돌리는 게 아닌가. 5일 오전 9시 현재 홍성흔은 62만9579표를 획득, 이승엽(58만6901표)에게 3만여표 리드를 달리고 있다.
이제 자력으로 올스타에 선정될 수 있는 희망이 보이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을 1등으로 만들어 준 '유권자'인 팬들이 하늘처럼 보일 수 밖에 없다.
특히 홍성흔은 이승엽이 당연히 1위가 될 것이라고 여겨던 류 감독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있게 된 게 더 통쾌한 눈치다.
그러면서도 인터넷 투표인지라 막판 뒤집기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끝까지 긴장의 끈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다시 외쳤다. "부산 팬 여러분, 부탁합니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