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본 '손맛'의 비밀, 홈런은 영양제다?

기사입력 2012-07-06 09:27



마음만 먹는다고 나오는 게 않는다. 하지만 모처럼 터졌을 땐 그야말로 '영양제' 역할을 한다.

타자에게 있어 여유있게 그라운드를 돌 수 있는 유일한 기회, 바로 홈런 이야기다. 간혹 너무 여유를 부리거나 세리머니를 과격하게 하다 외국인선수들과 마찰을 빚기도 하지만, 홈런은 타자에게 있어 그럴 만한 매력이 있다. 짜릿한 손맛, 특히 오랜만에 느꼈을 땐 그 효과가 더욱 크다.

LG 코칭스태프의 긍정적 내기, 누가 먼저 터지나

최근 LG 김기태 감독과 김무관 타격코치는 한가지 내기를 했다. 물론 팀이 잘 되길 바라는 '건전한' 내기였다. 모두가 홈런이 터지길 바라는데 안 나오고 있는 '작은' 이병규(배번7)와 정의윤 중 '누가 먼저 홈런을 칠까'라는 내기였다.

83년생과 86년생인 둘은 LG 타선의 미래를 이룰 좌-우타자들이다. 하지만 올시즌 이병규는 타율은 좋은데 홈런이 나오지 않고 있었고, 정의윤은 거포로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만년 유망주'에 머물고 있었다. 특히 김 코치는 지난해 말 LG에 부임한 뒤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이병규와 정의윤을 키워보고 싶은 타자로 꼽기도 했다.

이병규의 마지막 홈런은 지난해 9월24일 잠실 SK전. 정의윤의 경우는 더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군복무 전인 2007년 7월4일 잠실 두산전이 마지막으로 손맛을 본 경기였다.

김 감독은 같은 좌타자인 이병규에게, 우타자 출신인 김 코치는 정의윤에게 걸었다. 내기의 승자는 김 코치였다. 정의윤은 지난달 28일 잠실 KIA전에서 무려 1821일만에 홈런을 날렸다. 하지만 이병규도 이에 질 세라 이틀 뒤인 30일 인천 SK전에서 3점홈런으로 마수걸이 홈런을 신고했다.


8일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넥센과 LG의 경기에서 LG 김기태 감독(가운데)이 경기 전 김무관 코치, 조계현 코치(오른쪽)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목동=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m.com/2012.5.8
이병규, 연패 끊은 홈런으로 긍정바이러스 전파


김 감독은 내기에 졌어도 흐뭇했다. 두 선수의 홈런이 나올 때마다 자기 일인양 기뻐했다. 가장 좋았던 건 당사자들이다. 보통 오랜만에 나온 홈런은 타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그동안 자신감이 떨어졌다면, 자신감을 충전해줄 수 있다. 타격 밸런스가 좋지 못했다면, 홈런으로 밸런스가 잡힐 때도 많다.

평소 무뚝뚝한 이병규에게 시즌 첫 홈런 이야기를 꺼내봤다. 그는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그 홈런 친 뒤로 안타도 많이 못 치고 있다"고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홈런은 분명 좋은 기억이었다.

이병규는 최근 덕아웃에서 유쾌한 표정을 짓는 일이 많다. 팀이 연패에 빠져있는 동안엔 특유의 무표정 탓에 더욱 어두워 보였다. 하지만 홈런은 이병규에게 '긍정 바이러스'를 몰고 왔다. 그는 "홈런 하나로 달라지는 건 없다. 하지만 그날 홈런이 연패를 끊는 결과를 가져왔고, 팀 분위기가 좋아진 사실이 나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개인과 팀 모두 홈런 하나로 웃을 수 있었고, 활기차게 변화한 것이다.

정의윤, 홈런 스트레스 날리며 타격감 찾았다

정의윤의 경우는 더욱 극적이다. 입단 때부터 워낙 기대를 많이 모았던 '대형 유망주'였던 탓에 홈런에 대한 스트레스가 극심했다. 특히 상무에서 돌아온 지난해의 무홈런은 그에게 큰 상처를 안겼다.

이런 정의윤에게 홈런 이야기를 하니 "홈런 스트레스가 얼마나 컸는데 새삼스럽게 또 이야기를 꺼낸다"며 하소연부터 했다. 그래도 묵은 체증이 싹 날아간 느낌이었다. 정의윤은 "사실 너무 오랜만에 치니 홈런에 대한 감흥도 없었다. 지고 있을 때 나와 아쉽기만 했다. 그래도 단 한가지, 속 시원하다는 느낌은 들었다"며 웃었다.

정의윤의 경우엔 홈런이 타격 상승세를 이끌고 왔다. 그날 이후 4경기 중 멀티히트 경기를 2경기나 했다. 중심타선 뒤를 받치면서 쏠쏠한 활약을 하고 있다. 그는 "코치님이 항상 공을 완전히 받아놓고 치라고 하신다. 홈런 이후 이상하게, 나도 모르게 더 잘 맞긴 하더라"고 했다.

정의윤의 경우는 홈런에 대한 스트레스가 날아가면서 동시에 타격에 자신감을 찾았다. 밸런스와 타이밍이 잡히면서 확실하게 스윗 스팟에 맞히는 감각도 찾은 것이다.

김기태 감독 역시 모처럼 나온 홈런의 긍정적인 효과를 인정했다. 하지만 한 가지를 강조했다. "어쩌다 넘어간 게 아니라, 제대로 맞아서 넘어갔느냐가 중요하다. 오랜만에 나온 홈런이 제대로 맞아서 넘어갔다, 그러면 타자는 그걸 연구해서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16일 인천구장에서 열리는 2012 프로야구 LG와 SK의 경기를 앞두고 LG 정의윤이 김무관 타격코치의 지시에 따라 의자에 앉아 토스배팅 훈련을 하고 있다. 인천=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2.05.16/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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