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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은 기다려주지 않으니 더 힘들다. 정규시즌이 끝나는 순간 우승하는 팀도 시즌을 치르는 도중 잠깐이라도 부진에 빠지면 '역적'이 되기 일쑤다.
경기에서 패하면 대부분 비난은 감독의 몫이다. 그렇다고 승리할 경우 칭찬받는 경우도 드물다. 그땐 팬들은 선수를 바라본다.
모든 스포츠 종목의 감독이 같은 처지겠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프로야구 감독의 스트레스가 조금 더 심할 것같다.
띄엄띄엄 경기를 치르는 다른 종목과 달리 1주일에 6일간 경기를 치르기 때문에 '도마'에 오를 기회가 잦고, 건수도 많아진다.
올시즌은 유래없이 치열한 4강 싸움과 최하위의 고착화로 특성화됐다. 시즌 전반기가 끝나는 요즘이면 스트레스 지수도 극에 달할 때다.
프로야구 감독들은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까. 방식과 수단은 각각 달랐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외로움'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SK 이만수 감독은 경기장에서 드러나는 외향적인 성격과 달리 스트레스 해소법에서는 정반대의 성향을 나타낸다. 전형적인 '사색형'이다.
이 감독은 올시즌 새로운 버릇이 생겼다. 원정 경기를 가면 숙소 근처 산이나, 대학 캠퍼스 등 산책할 장소를 미리 물색해 두는 것이다.
최근 8연패의 깊은 수렁에 빠지는 과정에서 이같은 습관은 더 심해졌다. 롯데와의 부산 원정경기를 할 때는 금정산을 찾았다.
선수단 숙소인 온천장 농심호텔에서 걸어서 찾을 수 있는 부산의 대표적인 명산이다. 이 감독은 선수생활을 포함해 수십년간 야구에 몸담으면서 부산 방문할 기회가 많았지만 이제야 비로소 금정산을 가봤다고 한다.
대전 원정에서는 숙소 근처 충남대 교정을 찾고, 인천 홈경기 때는 송도가 단골 산책장소다. 이 감독은 인적이 드문 시간과 장소에서 등산과 산책을 하면서 조용히 사색에 빠진다고 한다.
이 감독은 "운동삼아 한참을 걷다가 보면 쌓였던 스트레스가 조금씩 풀려나간다"고 말했다.
한화 한대화 감독과 넥센 김시진 감독은 '가정형'이다. 한 감독은 요즘 손자보는 낙으로 산다. 한 감독은 지난 2월말 장남 충일씨가 첫 아들 지후군을 얻은 덕분에 52세의 나이에 때이른 할아버지가 됐다.
백일이 지나 한참 재롱을 더할 때다. 아들 부부가 한 감독의 집 근처에 살고 있어 출산휴가를 받은 며느리가 거의 매일 지후를 데리고 시댁을 방문한다.
연이은 최하위 성적으로 심신이 고달프지만 세상 고민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천사같은 손자의 얼굴을 보면 어느새 마음이 진정된단다. 사실 한 감독은 애주가였다. 하지만 올시즌에는 오히려 술을 더 멀리하게 됐다. "술도 술맛이 나야 마시고 싶은데 술맛은 물론 입맛도 없는데 무슨 기분으로 술을 찾겠느냐"는 게 한 감독의 솔직한 심정이다.
한 감독이 최근 최신형 스마트폰으로 장만하는 '혁신'을 단행한 것도 손자의 사진과 동영상을 담아놓고 보기 위해서였다. 원래 한 감독은 "전화 통화만 잘되면 그만"이라며 2G 구형 휴대폰을 고집하는 등 '최신문명'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지금은 휴대폰 바탕화면에 온통 손자 사진을 올려놨다.
김 감독의 집안에서 얻은 별명은 '시계추'다. 아내가 붙여줬다. 시계추처럼 퇴근시간만 됐다 싶으면 정확하게 귀가하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맥주 한 캔'으로 유명하다. 기분좋을 때나, 나쁠 때나 캔맥주 1캔을 마시고 잠을 청하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잠을 빨리 청하기 위한 수단일 뿐 스트레스 해소의 특효약은 따로 있었다. 아내가 차려주는 밥상이다.
김 감독은 "밥상이 거창할 필요는 없다. 집에 들어와서 아내가 끓여준 찌개나 반찬으로 식사를 하면서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면 근심걱정이 어느새 달아나 버린다"고 말했다.
"감독이란 직업은 친구를 자주 만날 시간이 없고, 만나고 싶어도 약속잡기 어렵기 때문에 친구를 잃는 직업이다. 그럴 때 아내가 말벗이 돼주는 게 고마울 따름"이라는 게 김 감독의 예찬론이다.
롯데 양승호 감독은 겉보기와 정반대로 '칩거형'에 속한다. 경기장에서 양 감독은 능숙한 말솜씨로 좌중을 압도하는 등 무척 외향적이다. 하지만 사직구장 근처 아파트 숙소로 돌아가면 전형적인 '기러기 아빠' 외톨이로 변한다. 수험생 자녀 때문에 아내가 부산으로 내려오지 못하는 양 감독은 팬들이 보내준 햇반과 햄 등 간단한 식사로 끼니를 떼우기 일쑤다.
양 감독 역시 애주가여서 스트레스가 쌓일 때 술 한잔 하고 싶지만 1군 코치들이 술을 마시지 못해 '술친구'가 없다. 성적 나쁠 때 무섭게 돌변하는 부산 팬들 눈치 때문에 숙소에서 멀리 술마시러 외출하기도 무섭다.
그래서 따로 불러주는 이가 없으면 숙소에 틀어박혀 앉아 프로야구 방송 하이라이트나 보며 스트레스를 푸는 게 아니라 꾹꾹 밟아 놓는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