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로가 뉴욕 양키스 이적을 하게 된 속사정

최종수정 2012-07-25 08:43

2009년 3월 1일 도쿄돔에서 벌어진 WBC 일본대표팀과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연습경기. 일본대표팀 1번 이치로가 7회말 2사에서 타격 준비를 하고 있다. 스포츠조선 DB

1973년 생 스즈키 이치로. 일본 프로야구 9년에 메이저리그 12년 차. 그에게 뉴욕 양키스행은 야구인생의 마지막 승부수나 다름없다. 24일(한국시각) 이치로가 12년 간 머물렀던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뉴욕 양키스로 이적하면서 배경과 과정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001년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 블루웨이브에서 시애틀로 이적한 이치로에게 매리너스는 곧 메이저리그를 의미했다. 이치로가 시애틀이었고, 시애틀이 이치로였다. 평생 시애틀맨으로 남을 것 같았던 이치로가 만년 하위권팀 시애틀을 뒤로 하고 영원한 우승후보 뉴욕 양키스의 줄무늬 유니폼을 입었다. 5년 계약의 마지막 시즌인 2012년 이적에 앞서 이치로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일본의 스포츠전문지 스포츠닛폰은 25일 이치로의 이적 소식을 전하며, 이치로가 몇 주 전에 구단에 트레이드를 직접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이달 초 올스타 휴식기 때 깊이 고민을 한 이치로는 올스타 브레이크가 끝나고 후반기가 시작된 13일 구단에 자신의 의지에 변함이 없음을 알렸다고 한다. 이적을 하겠다는 뜻을 다시 한번 분명하게 밝힌 것이다.

이치로는 현실에 안주하느냐, 아니면 새로운 도전에 나서느냐의 기로에 서 있었다. 이치로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미혹에 빠질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내가 100% 올바른 결단을 내린 것인지 아직 모르겠다"며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냈다.

아메리칸리그 서부조에 속한 시애틀은 1977년에 리그에 참가했으며, 일본 게임업체인 닌텐도 미국 법인이 소유하고 있다. 이치로가 있는 동안 2001년 지구 우승을 했을 뿐 이후 한 번도 포스트시즌에 나가지 못했다.

이치로는 두번째 계약 종료를 앞두고 있던 2007년 말, 이적을 한다면 본인 뿐만 아니라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팀은 뉴욕 양키스뿐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치로는 이적 생각을 접고 시애틀과 5년 간 재계약을 했다. 아메리칸리그 서부조 최약체팀인 매리너스를 재건하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그만큼 시애틀에 대한 애착이 컸다고 봐야할 것 같다.

그러나 시애틀은 이후에도 포스트시즌에 나가지 못했고, 2001년부터 10년 연속 이어졌던 타율 3할-200안타 기록도 지난해 중단됐다. 이치로가 목표로 했던 팀 성적과 개인 성적 모두 불발이 된 것이다. 이치로로선 더이상 시애틀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어졌다고 볼 수 있다. 트레이드를 자청한 가운데 뉴욕 양키스가 가장 먼저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이치로로선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사실 올시즌 팀내 입지도 줄었다.


개막전부터 두달 간 3번 타자로 나섰던 이치로는 지난 6월 초 본인이 가장 편하게 생각한다는 톱타자로 복귀했다. 중심타자 역할을 기대했는데, 부담 때문인지 성적이 안 나자 1번으로 돌린 것이다. 그런데 이번 달 초 이치로는 갑자기 2번으로 떨어졌다. 2번은 중심타순인 3번이나, 팀 공격의 돌파구를 여는 역할을 하는 톱타자보다 비중이 떨어지는 타순이라고 볼 수 있다.

릭 웨지 시애틀 감독은 당초 "올해는 이치로를 3번으로 쓰겠다"고 밝혔지만, 부진이 계속되면서 타순이 두번이나 바뀐 것이다. 웨지 감독은 이치로의 역할에 실망감을 드러냈다. 이치로로선 굴욕적인 상황이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새로운 환경에서 도전을 하게 된 이치로다. 조 지라디 감독은 그동안 주로 우익수로 출전해온 이치로를 향후 좌익수로 기용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이치로가 뉴욕 양키스에서 히팅머신의 면모를 다시 보여줄 수 있을 지 궁금하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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