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투수 전성시대, 그 뒤의 불편한 진실

기사입력 2012-08-26 15:26


24일 대전구장에서 열리는 2012 프로야구 KIA와 한화의 주말 3연전 첫 경기를 앞두고 KIA 앤서니(왼쪽), 소사가 한화 바티스타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대전=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2.08.24/

"저 친구들이 간다고 하면 방법이 없어요."

지난 1998년 한국 프로야구에도 외국인선수 제도가 도입됐다. 이후 14년, 이제 외국인 선수들은 팀의 한해 농사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전력이 됐다. 특히 올해는 외국인 선수제도 도입이후 처음으로 8개구단이 모두 팀의 외국인선수로 투수를 선택했던 특이한 시즌이다. 타자보다는 투수가 팀 전력에 더 직접적이고 장기적인 도움이 된다는 점을 현장 스태프와 프런트가 뚜렷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반영하는 결과다.


23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2012 프로야구 넥센과 두산의 경기가 열렸다. 넥센 선발투수 나이트가 두산 타자들을 상대로 힘차게 볼을 던지고 있다.
잠실=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2.08.23.
외국인 투수 마운드를 평정하다

이렇게 올해 8개 구단이 뽑은 외국인 투수들은 시즌 막바지에 접어든 현재, 예상대로 각 팀의 핵심 전력으로 자리잡았다. 시즌 개막을 앞두고 뽑은 총 16명의 투수 중에서 한화의 배스와 션 헨 그리고 KIA 라미레즈, SK 로페즈 등 4명 만이 기량 미달로 퇴출됐을 뿐 나머지 13명은 빼어난 구위와 경기운영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시즌 막바지가 됐음에도 16명 중 겨우 4명의 선수만이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것은 그만큼 올해 새로 뽑거나 지난해에 이어 재계약을 한 선수들의 기량이 평균 이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입증하듯 현재 국내 투수랭킹의 상위권은 외국인 투수들이 휩쓸고 있다. 25일 기준으로 다승 1위는 삼성의 장원삼(14승)이지만, 2~5위는 모두 외국인 투수들이다. 10위권으로 범위를 확장시켜보면 외국인 투수들은 2위부터 8위까지 총 8명이나 된다.

평균자책점과 세이브 부문에서도 외국인 투수들이 대세다. 올해로 벌써 4년째 한국 무대에서 활약중인 넥센의 나이트는 37세의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평균자책점 1위(2.23)에 올라있다. 12승(3패)으로 다승 부문에서도 2위다. 평균자책점 부분에서는 5위권 안에 3명의 외국인 투수(나이트, 유먼, 밴헤켄)가 자리잡았다. 또한 올해 처음 한국 무대를 밟은 두산의 마무리 투수 프록터는 30세이브를 기록하면서 토종 '특급마무리' 오승환을 제치고 세이브 단독 1위를 달리고 있다.

또한 현재 8개 구단 중에서 외국인 투수가 팀내 다승 1위인 팀이 5개(두산 롯데 KIA 넥센 LG)나 된다. 말 그대로 '외국인 투수 전성시대'라고 할 만 하다. 올 시즌 투고타저의 영향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외국인 투수들의 기량이 이전에 비해 한층 향상됐다고도 할 수 있다. KIA 외국인 투수 소사는 150㎞ 중반을 넘는 싱커라는 '마구성' 구종으로 한국 타자들을 농락했다.

그러다보니 얼마나 뛰어난 외국인 투수를 보유했느냐가 팀의 운명을 좌우하기도 했다. 최하위 한화의 경우 시즌 초부터 외국인 투수의 부진에 시달리다가 결국 한 시즌 농사를 망쳤고, 롯데의 경우는 유먼이라는 뛰어난 투수를 영입한 덕분에 상위권 도약에 큰 힘을 얻었다.


롯데와 두산의 주말 3연전 두번째 경기가 25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렸다. 롯데 선발투수 유먼이 힘차게 공을 던지고 있다. 유먼은 지난 19일 넥센전에 등판해 7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고 최근 5경기 평균자책점 1.75로 에이스다운 모습을 보여주며 시즌 11승을 기록했다.
부산=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2.08.25/

외국인 투수 전성시대의 불편한 진실

그러나 이러한 외국인 투수 전성시대는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라는 게 현장의 일관된 목소리다. 뛰어난 외국인 투수를 영입해서 팀의 성적을 높일 수는 없지만, 근본적인 경쟁력 강화에는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본인 스스로도 외국인 신분인 삼성 오치아이 투수코치는 "팀의 투수력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적절하게 세대교체를 해야한다.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는 외국인 투수가 없이 시즌을 운용해보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한 바 있다. 어차피 외국인 투수가 한 팀에서 뛰는 시기는 한정적이다. 짧게는 한 시즌, 길어야 3년 정도면 팀을 떠난다. 그렇다면 외국인 투수는 사실 팀의 근본 전력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불편한 진실은 또 있다. 예를 들어 한 구단에서 무명의 외국인 투수를 발굴했다고 가정해보자. 마이너리그 등에서 전전하던 투수가 한국에 와서 기량을 만개하는 경우가 있다. 여기까지는 구단 스카우트팀과 코칭스태프가 성공적인 작품을 만들어낸 사례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를 반길 수만은 없는게 한국 야구의 현실이다. 뛰어난 기량을 보인 외국인 투수는 일본 프로팀 스카우트들의 표적이 되기 때문이다. 또는 한국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다시 미국으로 유턴하는 사례도 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KIA에서 뛰었던 세스 그레이싱어와 두산의 리오스, 히메네스 등이다. 하나같이 한국무대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거액을 받고 일본으로 갔다. KIA나 두산은 이들의 재계약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러나 '머니게임'에서 일본팀을 이긴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모 코치는 "투수들이 일본에 간다는 마음을 먹는 순간 게임 끝이다. 국내 구단이 일본팀의 계약 조건을 맞춰줄 수 없기 때문"이라는 말을 했다.

이미 올해에도 한국 무대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는 많은 투수들이 일본팀의 표적이 되고 있다는 게 현장의 증언이다. 롯데 유먼이나 KIA의 앤서니, 소사 등이 대표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롯데 양승호 감독이 최근 유먼에 대해 "본인이 남으려고 하겠나"라고 한 것도 이런 분위기에서 나온 발언이다.

만약 이렇게 팀의 주전력을 담당하던 외국인 투수가 갑자기 다른 리그로 떠난다고 하면 팀은 당장에 전력을 새로 구성해야 하는 고민에 빠진다. 그 이상의 투수를 영입하기 위해 해외 스카우트팀이 분주하게 움직이지만, 성공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결과적으로는 팀의 전력을 뒤흔드는 악영향까지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외국인 투수 전성시대의 이면에는 이런 고민이 숨어있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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