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거인의 그린라이트, 과연 언제쯤 다시 켜질까

최종수정 2012-10-19 09:19

프로야구 SK와 롯데의 플레이오프 2차전 경기가 17일 인천 문학야구장에서 펼쳐졌다. 1회초 2사 1루 손아섭이 2루 도루를 시도했으나 태그아웃되고 있다.
인천=전준엽 기자 noodle@sportschosun.com/2012.10.17/

언제나 환하게 켜져 있을 것 같았던 거인의 '그린라이트'가 꺼진 지 오래다.

상대 덕아웃과 배터리, 내야수비진의 뒷통수를 치는 장면도 어느 순간부터 보이지 않는다. 롯데의 '가을야구'에는 도루가 사라졌다.

'그린라이트'는 도루에 대한 권한을 선수에게 위임하는 것을 뜻한다. 이 '그린라이트'를 받은 선수는 언제든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자유롭게 도루를 시도할 수 있다. 실패에 대한 책임은 불문에 붙인다. 결국 선수 개개인의 센스와 창의성을 최대한 활용해 경기 도중 유리한 변수를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그린라이트'의 목적이다.

감독조차 자기 팀의 선수가 언제 뛸 지 미리 알 수 없으니 상대 배터리나 내야진은 더 도루 타이밍을 잡아내기 어렵다. 그래서 사인도 없이 불쑥 뛰는 선수가 누상에 나오면 상대 배터리와 내야 수비진의 긴장도는 월등히 커진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빠른 주자가 굳이 뛰지 않고 '언제든 뛸 수 있다'는 분위기를 풍기는 것만으로도 또다른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바로 타자에 대한 집중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배터리나 수비진이 주자쪽으로 신경을 분산시키면 그만큼 타자는 유리한 입장에서 승부할 수 있다.

그래서 프로팀 감독들은 발이 빠르고 주루 센스가 있는 타자들에게는 되도록 '그린 라이트'를 폭넓게 허용하는 편이다. 롯데 양승호 감독 역시 그런 인물 중 하나다. 올해 롯데는 총 172회의 도루를 시도해 119번 성공했다. 시도 횟수는 전체 6위이고, 성공 횟수는 전체 5위다. 시도와 성공 모두 썩 많지는 않았는데, 성공확률은 69%로 평이한 수준이다. 하지만 양 감독은 시즌 내내 선수들에게 알아서 뛰라고 믿고 맡겼다.

하지만 이번 포스트시즌 들어서는 도무지 롯데 선수들이 베이스를 훔치는 장면을 보기 힘들어졌다. 두산과의 준플레이오프 4경기를 통해 롯데는 도루 시도를 겨우 3차례 밖에 하지않았다. 이후 플레이오프에 올라섰지만, 이런 패턴은 변하지 않았다. 롯데 주자들은 1, 2차전에 걸쳐 기습적인 도루 대신 벤치의 사인에 맞춘 움직임만을 보였다. 기습적인 도루 시도는 1차전때는 아예 없었고, 2차전에서는 단 1회 있었다. 1회초 손아섭이 2사 1루에서 2루 도루를 하려다 태그아웃 당한 것이다.

물론 아무리 그린라이트가 켜져있다고 해도 아무 때나 뛸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함부로 뛰어서도 안된다. 그러나 올해 포스트시즌에서의 롯데는 그린라이트를 갖고 있는 선수들이 기회를 엿본다기 보다는 아예 라이트의 배터리를 빼놓았다.

이유는 하나다. 적어도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만큼은 양 감독이 거의 전권을 행사하며 선수들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양 감독은 준플레이오프 승리 후 "선수들을 믿고 맡기는 것보다 벤치가 먼저 움직여주는 게 오히려 선수들을 편안하게 만든다"는 의견을 밝힌 적이 있다. 결국 정규시즌이라면 알아서 하도록, 그래서 밥이 되든 죽이 되든 그 결과를 수용하던 양 감독이 올 가을에는 승리를 위해 먼저 나선 것이다.


확실히 이 덕분에 올 가을의 롯데는 한층 정교하고, 뒷심이 강한 야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상대의 허를 찌르는 맛은 사라졌다. 경기를 지켜보다가 무릎을 칠 만한 예상밖의 장면도 그다지 나오지 않는다. 문제는 늘 계획대로만 경기가 풀리지는 않는다는 데 있다. 때로는 과감하고 무모해보이는 시도가 새로운 변수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SK 벤치가 '롯데 주자는 뛰지 않는다'고 생각을 굳혀갈 때쯤 나오는 기습 도루는 충분히 상황을 유리한 국면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카드가 될 수 있다. 롯데의 그린라이트가 언제 또 켜질 지 주목되는 이유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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