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으로 살펴본 WBC 후유증, 정말 존재하나

기사입력 2012-12-27 16:42



과거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것은 모든 선수들에게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어도 '애국심'을 논하며 대표팀에 승선하는 일도 많았다. 하지만 이젠 옛말이다. 병역특례 없는 대회의 국가대표팀은 선수들에게 기피 대상이 되고 있다. 내년 3월 열리는 제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나서는 류중일호가 닻을 올리기 전부터 표류하고 있다.

봉중근을 시작으로 류현진 김광현 홍상삼이 빠졌다. 류현진은 메이저리그 진출이라는 개인 사정을 내세웠고, 나머지 선수들은 부상이 이유였다. 27일에는 선발요원인 김진우가 팔꿈치 부상으로 빠졌고, 현역 메이저리거 추신수가 새로운 팀 적응을 위해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추신수는 신시내티에서 중견수라는 낯선 포지션에 적응이 필요한 상태다. 27일 현재 대표팀 명단은 세 차례, 총 6명이 교체됐다.

개막 한 달 전 열리는 WBC, 선수는 괴롭다

병역특례 없는 대회에 애국심만을 강조하며 차출을 강요하기 힘든 상황이다. 몸이 곧 재산인 프로선수는 소속팀에서 연봉을 받는다. 몸 상태에 따라 성적이 달라질 수 있다. 게다가 주축선수의 대표 차출은 소속팀의 성적에도 막대한 영향을 준다.

정규시즌 개막 한 달 전에 열리는 WBC는 분명 선수에겐 부담으로 돌아온다. 대회 기간에 맞춰 평소보다 빨리 몸상태를 끌어올려야만 한다.

이는 야수보다는 투수에게 더욱 큰 영향을 미친다. 보통 투수들은 4월초 시즌 개막에 맞춰 100% 피칭이 가능하게끔 몸을 만든다. 스프링캠프 기간에도 전력 피칭을 하는 일은 드물다. 3월 시범경기를 거쳐 천천히 페이스를 끌어올린다.

하지만 WBC 대표팀에 선발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모든 시간을 한 달 이상 앞당겨야 한다. 비활동기간에 남들보다 미리 운동을 시작해야 하고, 스프링캠프에서도 남들보다 더 빨리 피치를 올릴 수밖에 없다. 자칫 잘못하다 팔꿈치나 어깨 등에 무리가 오면 한 시즌을 통째로 날릴 수도 있다.

빨리 몸을 만들어도 문제다. 대회를 대비해 끌어올린 컨디션을 한 시즌 내내 지속시킬 힘이 필요한데, 몸이 못 따라오는 경우가 많다. 시즌 전에 열리는 WBC의 맹점이다. 과연 1회, 2회 대회 때 출전한 주요 선수들의 그 해 성적은 어땠을까.


2006년 제1회 WBC 때 류중일 코치의 수비훈련 지도를 받고 있는 해외파 선수들. 이들은 대회 참가 후 전년도에 비해 나란히 부진에 빠졌다. 스포츠조선DB

해외파 단체 부진, 불펜투수들만 재미 봤다

2006년 1회 대회 때는 해외파들이 대거 출전했다. 2005년 텍사스와 샌디에이고에서 12승(8패)을 올렸던 박찬호는 WBC를 마친 뒤 나선 2006시즌에서 7승(7패)으로 주춤했다. 2006시즌 뒤 두번째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었음을 감안하면, 다소 아쉬웠던 한 해다.

서재응은 직격탄을 맞았다. 2005년 뉴욕 메츠에서 8승2패, 평균자책점 2.59로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WBC 이후 LA 다저스와 탬파베이서 3승12패, 평균자책점 5.33을 기록하며 추락했다. 2005년 콜로라도에서 5승1패, 평균자책점 4.22를 기록했던 김선우는 그해 1패에 평균자책점 12.51을 기록한 뒤 더이상 빅리그에 올라가지 못했다. 빅리거 3명이 약속이나 한듯이 추락을 경험했다.

국내파들도 부진했던 건 마찬가지. 2005년 11승3패, 평균자책점 2.96을 기록한 박명환은 그해 선발과 중간을 오가며 7승(7패)로 부진했다. 배영수 역시 8승(9패)에 그치며 2002년 이후 4년만에 두자릿수 승수를 올리는데 실패했다. 2005년 18승(7패)으로 다승왕을 차지한 손민한도 10승(8패)으로 주춤했다.

이처럼 WBC 출전은 선발투수들의 한 해 농사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반면 불펜 쪽에선 얘기가 달라진다. WBC의 수혜자들이 있었다.

WBC가 열린 2006년, 2년차 시즌을 맞았던 오승환은 한 시즌 최다 세이브인 47세이브를 올리며 최고 마무리투수로 우뚝 섰다. 2005년 30세이브를 기록한 정재훈 역시 대회 이후 38세이브로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다. 2005년 1승 3세이브 6홀드를 기록한 정대현은 WBC 이후 8승4패 15세이브 11홀드로 성장했고, 2007년부터 불펜왕국 SK의 중심으로 자리잡았다.


제2회 WBC 결승전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아쉬워하고 있는 봉중근. 2회 대회 때는 첫 대회보다 많은 투수들이 후유증을 겪었다. 스포츠조선DB
더 큰 후유증 불러온 2009년, 부상과 부진에 울다

2009년 2회 대회 역시 비슷한 패턴으로 흘러갔다. 당시 대표팀 투수진은 임창용을 제외하곤 모두 국내파였다. 이번엔 선발과 중간계투 모두 하향세를 겪었다.

먼저 부상에 발목을 잡힌 경우가 많았다. 이미 어깨 부상을 안고 있던 손민한을 비롯해 오승환까지 어깨 통증으로 시즌을 중간에 접었다. 김광현은 타구에 손등을 맞는 불의의 사고로 시즌아웃됐다.

다른 선수들도 비슷했다. 2008년 다승 2위(14승), 평균자책점 1위(2.33)에 올랐던 윤석민은 WBC 이후 시즌 초반부터 난조에 빠졌다. 구위가 떨어지면서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9승4패7세이브에 그쳤다.

봉중근은 2008년과 똑같이 11승을 올렸지만, 피로 누적으로 시즌 막판에 등판하지 못했다. 2008년 12승(8패)을 올린 장원삼은 4승8패 평균자책점 5.54라는 데뷔 후 최악의 성적을 남겼다. 2005년 14승(7패)의 류현진이 13승(12패)으로 체면치레를 한 정도다.

불펜투수들의 성적도 좋지 못했다. 오승환이 시즌 도중 낙마한 데 이어 1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던 이재우는 3.88로 평균자책점이 치솟았다. 이재우는 이듬해 시즌 초반부터 팔꿈치 통증을 호소했고, 이후 두 차례나 팔꿈치 수술을 받았다. 2005년보다 낮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투수는 해외파 임창용과 정대현, 그리고 임태훈 뿐이었다.

투수들에게 WBC는 분명 부담스러운 대회다. 해외진출을 앞두고 있는 선수를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기도 어렵다. 불참선수들을 함부로 비난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제2회 WBC 때 훈련을 지켜보고 있는 윤석민, 김현수, 장원삼(오른쪽부터). 윤석민과 장원삼 모두 대회 이후 열린 2009시즌, 큰 부진을 겪었다. 스포츠조선DB
◇2006년 제1회 WBC 대표팀 주요투수 대회 전후 성적

이름=2005년 성적=2006년 성적

박찬호=12승8패 평균자책점 5.74=7승7패 평균자책점 4.81

서재응=8승2패 평균자책점 2.59=3승12패 평균자책점 5.33

김선우=5승1패 평균자책점 4.22=1패 평균자책점 12.51

박명환=11승3패 평균자책점 2.96=7승7패 평균자책점 3.46

배영수=11승11패 평균자책점 2.86=8승9패 평균자책점 2.92

손민한=18승7패 평균자책점 2.46=10승8패 평균자책점 2.78

오승환=10승1패 16세이브 11홀드 평균자책점 1.18=4승3패 47세이브 평균자책점 1.59

정재훈=1승6패 30세이브 평균자책점 2.09=2승3패 38세이브 평균자책점 1.33

정대현=1승 3세이브 6홀드 평균자책점 0.37=8승4패 15세이브 11홀드 평균자책점 1.94

◇2009년 제2회 WBC 대표팀 주요투수 대회 전후 성적

이름=2008년 성적=2009년 성적

손민한=12승4패 평균자책점 2.97=6승5패 평균자책점 5.19

오승환=1승1패 39세이브 평균자책점 1.40=2승2패 19세이브 평균자책점 4.83

김광현=16승4패 평균자책점 2.39=12승2패 평균자책점 2.80

윤석민=14승5패 평균자책점 2.33=9승4패 평균자책점 3.46

봉중근=11승8패 평균자책점 2.66=11승12패 평균자책점 3.29

장원삼=12승8패 평균자책점 2.85=4승8패 평균자책점 5.54

이재우=11승3패 2세이브 17홀드 평균자책점 1.55=5승2패 12홀드 평균자책점 3.88

임창용=1승5패 33세이브 3홀드 평균자책점 1.25=5승4패 28세이브 5홀드 평균자책점 1.04

정대현=4승3패 20세이브 평균자책점 2.67=2승3패 10세이브 13홀드 평균자책점 1.20

임태훈=6승5패 6세이브 14홀드 평균자책점 3.41=11승5패 4세이브 13홀드 평균자책점 3.06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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