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호 홈런 발렌틴, 왜 잠자리채를 볼 수 없을까

기사입력 2013-09-15 08:09


야쿠르트-한신전이 벌어진 13일 도쿄 진구구장. 야쿠르트의 강타자 블라디미르 발렌틴의 56호 홈런 여부로 관심이 높았는데, 발렌틴은 무안타에 그쳤고, 야쿠르트는 2대3으로 패했다. 팬들로 가득찬 진구구장 외야석 모습. 도쿄=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야쿠르트 스왈로스와 한신 타이거즈의 경기가 벌어진 13일 도쿄 진구구장. 카리브해의 네덜란드령 앤틸러스 제도 큐라소 출신인 야쿠르트 4번 타자 블라디미르 발렌틴의 홈런에 관심이 집중된 경기였다. 발렌틴은 지난 11일 시즌 55호 홈런을 터트려 일본 프로야구 한 시즌 최다홈런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1964년 오 사다하루(왕정치), 2001년 터피 로즈, 2002년 알렉스 카브레라를 넘어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 경신을 눈앞에 두고 있다. 스포츠 전문지, TV 등 일본언론도 발렌틴의 홈런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이날 야쿠르트는 관중들에게 발렌틴의 얼굴을 실물에 가까운 크기로 담은 합성수지 소재로 만든 부채를 나눠줬다. 또 1500엔짜리 외야 자유석 티켓을 1000엔으로 할인해 판매하는 행사를 하고 있었다. 발렌틴의 이름과 등번호가 찍힌 유니폼을 입은 팬이 간혹 눈에 띄었고, 구장 곳곳에 발렌틴에 관한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1회말 첫 타석에서 발렌틴이 때린 공이 중견수쪽 펜스 바로 앞에서 잡히자 관중석에서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이승엽이 56개 홈런을 기록하며 아시아 신기록을 수립했던 2003년. 당시의 홈런 열풍을 생각했는데, 비교적 차분했다. 우리와는 다른 게 많았다. 먼저 외야 관중석에서 잠자리채를 볼 수 없었다. 한국 야구팬들이라면 모두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승엽의 홈런 타구를 잡기 위해 삼성 경기가 벌어지는 경기장 마다 외야석을 빼곡 채웠던 잠자리채를. 일본 프로야구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세이부 라이온즈를 제외하고는 모든 구단이 파울볼이나 홈런 타구를 그 공을 확보한 팬이 갖게 한다. 그런데 한국 관중들이 기록적으로 의미가 있는 공을 잡으려고 하는 반면, 일본 팬들은 의미있는 기록이 수립되는 장면을 눈 앞에서 보고싶어하는 것 같다. 한국 팬들을 대다수가 공이 날아오면 맨손으로 잡으려고 달려는데 일본팬은 먼저 피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가장 큰 차이는 기록구에 대한 인식인 것 같다. 스포츠조선에 매주 야구칼럼을 기고하고 있는 무로이 마사야씨는 "한국의 경우 홈런공을 잡으면 돈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일부 팬이 있는데, 일본 팬들은 그런 생각을 별로 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 11일 발렌틴은 진구구장에서 열린 히로시마 카프전에서 55호 홈런을 때렸다. 홈런공을 주은 한 남성팬은 이 공을 구단에 전달했고, 발렌틴으로부터 기념배트를 받고 그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날 야쿠르트의 상대팀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함께 센트럴리그 최고 인기 구단 한신이었다. 3루측 내야석과 왼쪽 외야석은 한신의 팀 컬러인 노란색으로 가득찼다. 우타자인 발렌틴의 홈런 타구가 왼쪽 관중석으로 날아갈 가능성이 높은데도, 정작 야쿠르트의 안방인 진구구장 좌측 외야 과중석은 상대팀 팬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입장관중 2만8000여명 중에서 절반 정도가 한신팬으로 보였다.

한신 팬들의 열성적인 응원은 야쿠르트 팬들을 압도했다. 야쿠르트 팬들도 발렌틴 타석 때 응원구호를 소리높여 외치고, 4회 5번 타자 유이치의 홈런이 터졌을 때 조그만 우산을 펼쳐 들어올리는 야쿠르트 특유의 응원을 펼쳤지만, 한신 만큼 인상적이지 못했다.

야쿠르트는 센트럴리그에서 요코하마 DeNA와 더불어 충성도 높은 팬이 가장 적은 팀이라고 한다. 한신이나 요미우리, 주니치 처럼 인기팀이 방문할 때면 안방인데도 안방분위기를 내기 어렵다. 발렌틴이 외국인이기도 하지만 비인기팀 야쿠르트 소속 선수이기에 조명을 덜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도쿄=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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