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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구장으로 되돌아온 5차전. 관건은 홈런이었다. 구장은 좁고 투수는 이미 지쳤다.
유희관의 좌-우 놀이와 박병호의 착시
유희관은 2차전에서 박병호를 압도했다. 미디어데이에서 "던져봤다"는 "두렵지 않다"는 코멘트. 암시처럼 현실이 됐다. 중압감이 더해진 5차전 승부도 마찬가지. 유희관은 평상심을 유지했다. 그는 포스트시즌 초보다. "사실 포스트시즌 하기 전에는 긴장이 많이 됐어요. 그런데 마운드에 서는 순간 이상하게 차분해지더라구요." 큰 무대 체질. 유희관은 '공 느린 류현진', '리틀 장명부' 정도로 비유된다. 시대가 달랐고 스타일이 달랐지만 마운드에서 위축됨 없이 능글능글하게 타자를 요리했던 두 선수. 장점을 쏙 빼놓은 듯 유희관의 마운드 운용은 완벽에 가까웠다. 2회 선두 타자 박병호를 상대로 좌-우 놀이를 시작했다. 몸쪽 빠른 공(그래봤자 130㎞대 초반)과 120㎞대 초반 바깥쪽 체인지업을 번갈아 던졌다. 박병호의 시야가 흐트러졌다. 결국 몸쪽 133㎞짜리 패스트볼에 방망이가 헛돌았다. 공 2~3개쯤 빠진 볼이었다. 유희관의 좌-우 놀이가 만들어낸 홈런킹의 착시였다.
완벽한 자신감을 가진 유희관. 7회 1사 후 맞은 세번째 타석에서는 더욱 여유가 넘쳤다. 1볼 이후 슬로 커브로 우익선상 파울을 유도했다. 3구째는 전가의 보도 122㎞ 체인지업으로 파울을 유도해 1B2S.마지막 4구째 공은 133㎞짜리 몸쪽에 꽉 찬 패스트볼이었다. 박병호는 몸쪽에 붙인 빠른 스윙궤적으로 배트를 전광석화처럼 내밀며 오른손을 놓고 배트 중심에 맞히려 노력했다. 그동안 갈고닦은 몸쪽 공 공략 비법. 하지만 말 그대로 몸족에 꽉 찬 유희관의 공은 스윗스팟을 벗어난 지점에 비껴맞을 수 밖에 없었다. 힘으로 외야까지 보냈지만 후진 수비하던 김재호의 글러브를 피해가지 못했다.
목동=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넥센에서 가장 무서운 타자인 박병호를 상대할 때도 이러한 '좌우놀이'는 빛을 발했다. 여기에 또 한 가지. 두려움없는 몸쪽 직구가 시너지 효과를 냈다. 잘 알려진대로 박병호는 바깥쪽 공에 무척이나 강하다. 워낙에 기술과 집중력이 뛰어나 몸쪽 공에도 딱히 약한 편은 아니지만, 올해 홈런 중에 80% 이상이 센터를 중심으로 우측으로 형성된 데에서 알 수 있듯 밀어치기 능력이 좋다.
이런 박병호를 공략하기 위한 방법은 결국 몸쪽 승부다. 하지만 이 공은 여러 위험요소를 안고 있다. 너무 몸쪽으로 가면 사구가 나올 수 있고, 그렇다고 어설프게 몸쪽으로 던지면 공이 가운데로 쏠리게 돼 장타를 맞기 십상이다. 제대로 박병호의 몸쪽에 붙이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8일 1차전에서 니퍼트는 이걸 못했다. 당시 호흡을 맞춘 포수 양의지는 "몸쪽 공을 요구했는데, 니퍼트가 평소와 달리 제대로 던지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니퍼트가 긴장한 증거다. 그러나 유희관은 달랐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몸쪽 승부를 해냈다.
1회말 2사 1루에서 박병호를 만난 유희관은 초구에 132㎞ 직구로 파울을 유도해낸 뒤 2구째는 역시 132㎞짜리 몸쪽 낮은 볼을 던졌다. 1B1S에서 3구째는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121㎞의 체인지업. 좌우 변화에 타이밍을 빼았긴 박병호는 결국 유격수 땅볼로 물러나고 말았다.
3회말 1사 1루에서도 몸쪽 직구(132㎞ 볼)에 이어 바깥쪽 체인지업(119㎞)으로 중견수 뜬공을 유도해낸 유희관은 6회에는 132㎞ 직구 2개를 몸쪽으로 쑤셔넣어 박병호를 우익수 뜬공으로 처리했다. 전날 니퍼트가 던지지 못했던 몸쪽 직구에 바깥쪽 변화구를 섞어 박병호의 타이밍을 완전히 뒤흔든 것이다.
비록 두산이 경기에는 패했지만, 이날 유희관이 보여준 '좌우 놀이'와 용기있는 '몸쪽 승부'만큼은 대단히 뛰어났다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