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2013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두산과 LG의 경기가 열렸다. 1회말 무사 1루서 LG 이병규(7)가 좌중월 2점 홈런을 친 후 덕아웃에서 류제국과 환호하고 있다. 잠실=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3.10.16.
"이젠 안 떨어요. 진짜예요."
LG 투수 류제국은 지난 9월 29일 잠실 삼성전에서 자신의 야구 인생의 새로운 경험을 했다. 사실상의 정규시즌 1위 결정전이라고 해도 무방했던 1위 삼성과 2위 LG의 맞대결. 이 경기에 쏠리는 관심은 엄청났다. 그런 경기에 선발로 나서는 투수라면 누구나 떨릴 수밖에 없다. 류제국은 지난 5월 19일 잠실 KIA전에서 한국 무대 데뷔전을 치렀다. 엄청난 부담에 시달렸을 경기. 거기에 당시 KIA의 성적이 좋아 잠실은 만원 관중이 들어찼다. 하지만 류제국은 마치 잠실구장에서 오래 던진 투수처럼 아무렇지 않게 공을 던지고 첫 승을 따낸 바 있다. 그래서 류제국에게 삼성전 호투도 기대해볼 만 했다.
하지만 류제국은 떨었다. 누가 봐도 긴장한 게 보였다. 초반부터 제구 난조에 시달렸다. 다행히 팀이 7대5로 승리해 승리투수가 됐지만 5이닝 동안 볼넷을 7개나 내줬다. 국내 데뷔 후 최다 볼넷이었다.
류제국은 당시를 돌이키며 "솔직히 인정한다. 엄청 긴장되고 떨리더라. KIA와의 데뷔전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런데 삼성전은 외야 계단에까지 관중들이 들어오셨다. 처음 느껴보는 긴장이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매사 긍정적인 류제국은 "삼성전 등판이 나에겐 약이 됐다. 포스트시즌에서 언제, 어떤 상황에 등판할지는 모르겠지만 삼성전 경험이 긴장감을 떨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면서 미국 시절 얘기를 꺼냈다. 류제국은 "미국 마이너리그 시절 포스트시즌 경기에 많이 나갔다. 마이너리그라고 무시하면 안된다. 포스트시즌 경기에 1만5000에서 2만 정도 되는 관중이 들어온다. 응원 열기도 매우 뜨거웠다"고 회상했다. 다만, 한국과 다른 게 하나 있다고 했다. 류제국은 "미국야구에서 포스트시즌은 정말 단순하게 보너스 게임이다. 경기장 전체가 경쟁 보다는 축제의 분위기다. 매우 즐겁게 공을 던졌던 기억이 난다"며 "한국 프로야구는 분명 미국과 다르지만 보너스 게임이라 생각하고 즐기면서 던지겠다"는 출사표를 밝혔다.
그렇게 류제국은 11년 만의 LG 가을야구의 선봉으로 나섰다. LG와 두산 양팀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는 플레이오프 1차전. 1회초 투구에서는 류제국의 말이 거짓인 듯 보였다. 선두타자 이종욱에게 우중간 3루타를 허용하자 예상치 못했던 듯 흔들렸다. 정수빈에게 볼넷을 내주고 김현수에게 안타를 얻어맞으며 실점을 했다. 동료들까지 실책을 저지르며 류제국을 도와주지 못했다.
0-2. 무사 2, 3루. LG와 류제국 모두 한방에 무너질 수 있는 대위기였다. 하지만 "즐기겠다"던 류제국의 승부사 기질이 어디 가지 않고 살아났다. 홍성흔을 삼진으로 처리하며 한숨을 돌렸고, 이원석을 내야 땅볼로 유도해 실점을 막았다. 류제국이 힘을 내자 동료들도 힘을 냈다. 오지환은 이어진 타석의 최재훈의 안타성 타구를 몸을 던져 걷어내 추가 실점을 막았다. 분위기를 탄 LG는 1회말 공격에서 이병규(7번)의 투런포가 터지며 곧바로 균형을 맞췄다.
1회 종료 후 류제국은 완전히 다른 투수가 돼있었다. 완벽한 좌-우 코너워크와 최고구속 148km의 힘있는 직구를 앞세워 두산 타선을 압도했다. 1회 늘어났던 투구수를 줄이려 공격적으로 피칭을 하는 경기운영능력도 선보였다. 그렇게 5⅓이닝 2실점 8탈삼진의 투구를 마치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경기 중간중간 마운드에서 보여줬던 여유있는 웃음, 류제국이 자신의 한국 데뷔 첫 포스트시즌 등판에서 진정 경기를 즐겼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