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투수 GG 한 푼 손승락, "아내 말대로 됐다"

최종수정 2013-12-11 07:45


"군대에서 아무 것도 아닌 선수였을 때, 아내가 골든글러브를 목표로 하자고 했었다. 그게 현실이 됐다."

넥센 히어로즈 마무리 투수 손승락(31)이 1994년 정명원(현대) 이후 19년 만에 구원투수로서 투수 골든글러브를 차지했다. 1996년 구대성(한화), 2001년 신윤호(LG)가 있었지만, 이들은 선발과 불펜을 오간 전천후 투수였다. 순수 구원투수로선 19년 만의 수상이다.

포지션별 최고의 선수를 가리는 골든글러브. 쟁쟁한 선발투수들을 제치고 순수 불펜투수가 황금장갑을 차지한 것은 달라진 구원투수의 위상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손승락은 올시즌 46세이브로 세이브 1위를 차지하면서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우뚝 섰다. 히어로즈의 창단 첫 포스트 시즌 진출도 이끌었다. 오승환이 일본 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즈에 진출하면서 손승락은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마무리 자리를 이어받을 1순위 후보로 꼽히고 있다.

체크무늬 정장을 빼입고 나타난 손승락은 시상식 전엔 "처음엔 시상식장에 오는 게 긴장이 됐다. 그런데 자주 오다 보니까 즐기게 되더라"고 말했다. 골든글러브에 대해선 "아내도 나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잘 한 사람이 받는 게 당연하다. 부끄러운 상은 받고 싶지 않다"고 했다.

유독 아내의 이름을 많이 언급하던 손승락, 결국 골든글러브의 최종 주인공으로 호명되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무대에 오른 손승락은 아내 얘기를 하다가 울먹였다. "사실 받을 줄 몰라서 수상 소감을 준비하지 못했다"고 입을 연 그는 "넥센에서 야구할 수 있게 만들어주신 이장석 대표님과 구단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곧바로 동갑내기 아내 김유성씨에 대한 얘기를 이어갔다. 손승락은 "아무 것도 아닌 선수였을 때 아내를 만났다. 자기 꿈이 컸는데 그걸 다 포기하고, 날 훌륭한 선수로 만들어주겠다고 했다"며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했다.

시상식이 끝난 뒤 만난 손승락은 여전히 눈가가 촉촉했다. 그는 "똑같은 시상식이라고 생각했다. 울컥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내 얘길 꺼내다 보니 군대에서 2년, 수술로 보낸 1년, 힘들었던 기억이 스쳐갔다"고 말했다.


아내 김유성씨는 이화여대 언론대학원을 다니며 아나운서의 꿈을 키워왔다. 하지만 야구선수 아내의 삶 때문에 모든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손승락은 "아내에게 아나운서를 하면 내가 운동에 전념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공부하는 것도, 책 읽는 것도 좋아한 친구인데 정말 미안했다. 난 군대에서도 존재감이 없는 선수였다"고 했다.

군대에 있을 때 김씨는 "골든글러브를 목표로 삼자"며 무명선수에 불과했던 손승락이 희망을 갖도록 기운을 북돋아줬다. 손승락은 "아내는 된다고 계속 했는데 난 '과연 될까'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결국 아내가 말한대로 전부 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며 웃었다.

구원투수로서 받은 상이기에 더욱 뜻깊었다. 손승락은 "(오)승환이와 그런 얘기를 많이 했다. 투수들은 굉장히 많고 보직도 세분화돼 있다. 골든글러브도 선발, 중간, 마무리로 나누어 주면 안되냐는 얘길 했다"며 "제가 마무리로 이끌어가기 보다는 승환이 뒤를 따라간다 생각하겠다"고 했다.

이어 "마무리 투수는 1년차 땐 재미가 있다. 그 이후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느냐가 중요하다. 항상 노력하고 겸손한 선수가 되겠다. 몇 세이브가 아니라, 실력과 믿음으로 인정받는 투수가 되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오전 손승락은 19년 전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던 정명원 전 두산 코치에게 전화를 받았다. 둘은 과거 넥센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인연이 있다. 정 코치는 "승락아, 너 받을 자격 된다"고 짧게 격려의 메시지를 남겼다.

손승락은 "잠결에 코치님 전화를 받아 꿈인 줄 알았는데 현실이 됐다. 코치님께 감사드린다. 바로 전화를 드려야겠다"며 발길을 옮겼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2013 골든글러브 시상식이 10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열렸다. 투수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넥센 손승락이 트로피를 받고 있다.
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3.12.10/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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