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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수 김성한 장종훈 이승엽을 지나 박병호까지. 한국 프로야구의 홈런타자 계보를 대략 따져보면 이쯤 될 것 같다. 이만수와 김성한 장종훈이 나란히 세 차례 홈런왕에 올랐고, 이승엽이 5차례 타이틀을 차지했다. 이승엽이 2004년에 일본에 진출하지 않았다면 타이틀 몇개를 추가했을 것이다.
이들 세 명의 슬러거 중에서 최고의 대포는 누구일까. 한화 이글스에서 선수를 지도하고 있는 장종훈 1군 타격코치의 눈에 비친 후배 이승엽, 박병호는 어떤 모습으로 비쳐질까. 장종훈 코치를 27일 대전구장에서 만나 물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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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코치의 최전성기는 1990년대 초반이었고, 이승엽은 1990년대 말부터 폭발했다. 박병호는 2012년에 처음으로 31홈런을 때려 홈런왕이 됐다. 대략 10년의 터울이 있다. 그렇다면 1990년대와 2000년대, 지금 투수들의 수준은 어떻게 다를까. 워낙 시대가 달라 단순하게 비교하는 게 쉽지 않지만, 시대별 홈런타자의 능력을 따려보려면 평가가 필요할 것 같다. 장 코치는 요즘 투수보다 예전 투수들이 구위가 좋았다고 했다. 장 코치는 "그때 투수들은 구속이 지금보다 떨어지지만 볼끝, 공의 종속 스피드는 더 나았던 것 같다. 요즘 150km를 던지는 투수가 많은데, 구속이 좋아도 솜처럼 가볍게 들어오는 공이 많다. 반면 시속 135km에 불과한데도 '어이쿠' 소리가 나오게 하는 공이 있다"고 했다. 투수들의 공은 빨라졌지만 가볍고, 구종이 다양해졌지만 위력은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
야구는 다른 종목과 마찬가지로 정신자세가 경기력에 직접 영향을 주는 멘탈 스포츠. 비슷한 수준의 기술을 가졌다면, 강한 정신력과 긍정적인 마인드가 성패를 가를 수 있다.
장 코치는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말로, 그 시절의 아쉬움을 떠올렸다. 시즌 41번째 홈런을 터트린 1992년 마지막 경기. 목표를 달성하고 나니 공허했다. 1991년이 끝나고 다음 시즌에는 40홈런을 때려보자고 다짐을 했는데, 40홈런 신세계에 도달했다. 그런데 목표를 이루자 다음 시즌에는 42개를 쳐야겠다는 생각보다 먼저 허탈함이 밀려왔다. 일시적인 목표 상실. 41홈런 후유증은 혹독했다. 장 코치는 "목표를 잃어버려 굉장히 힘들었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고, 스프링캠프에서 무릎이 안 좋아 뛰지 못했고, 시즌 중에 부상도 찾아왔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41홈런 다음 해에 기록한 타율 2할9푼5리, 17홈런, 58타점. 장 코치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그렇게 나쁜 성적도 아닌데, 주위의 기대치가 높아져 폄하하는 얘기가 나왔다. 이런 부분이 굉장히 힘들었다"고 했다. 발목 부상으로 최악의 시즌이 된 1994년이 지나고, 심기일전해 1995년을 맞았다. 타율 3할2푼6리로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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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더이상 30홈런이 나오지 않았다. 1999년 27개, 2000년 28개까지 갔지만, 거기에서 그쳤다. 30홈런을 크게 보지 않았는데, 쉽지 않았다. 장 코치는 중압감과 조급함, 지나친 집착이 원인이었다고 했다.
장 코치는 "김영덕 감독으로부터 '생각이 너무 많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고, 타격코치 시절 강병철 감독으로부터 '단순하게 야구를 하라'는 주문을 자주 했다. 그러나 이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고 했다.
야구가 안 될 때는 야구를 잠시 잊는 게 좋은데 그게 안 됐다. 밤새 생각을 하고 고민을 하다보니 야구장에 나오면 기운이 없었다. 24시간 야구만 생각하고 야구에만 매달리다보니 스스로 지쳐갔다. 장 코치는 "진짜 바보같은 짓을 했다. 후배들은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안 되는 것은 어떻게 해도 안 되는 거다. 머리에서 야구를 지워야할 시간도 필요한데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2005년에 은퇴할 때까지 깨닫지 못했다. 굉장히 후회가 된다"고 했다.
340홈런을 찍고 선수생활을 마감한 장코치는 "철없던 시절에 400홈런을 목표로 잡았고, 500개까지 생각했다. 이런저런 부상없이 경기에 나갔다면 400홈런은 가능했을 것 같다. 야구에 대한 집착이 정신적으로 힘들게 했다"고 했다.
박병호는 이승엽처럼 롱런할 것이다
장 코치, 이승엽에 이어 세번째로 3년 연속 홈런왕을 눈앞에 두고 있는 박병호. 이승엽처럼 박병호도 오랜 기간 최고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까. 장 코치는 두 가지 이유를 들어 롱런이 가능하고, 50홈런 이상도 노려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사실 박병호를 견제할 만한 적수가 안 보인다. 강정호는 다른 리그에 진출할 것 같고, 최형우 정도가 눈에 띄는데 임팩트가 부족하다. 개인적으로 박병호를 만난 적은 없지만 주위에서 굉장히 성실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진짜 중요한 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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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내년부터 팀당 경기수가 144경기로 늘어난다. 박병호의 잠재력을 높이 보면서도, 장 코치는 홈런이 안 나오는 경기의 간격을 줄여야 한다고 했다. 장 코치는 "35홈런을 때린 1991년에 12경기에서 홈런을 때리지 못한 적이 있다. 홈런이 없는 경기의 간격만 줄인다면 40홈런이 가능하다고 생각해 목표로 정했다. 올해 박병호도 홈런을 때리지 못하는 시기가 있었는데, 슬럼프 기간을 줄여 꾸준함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사실 슬럼프는 모든 타자에게 찾아오는 것이고, 뾰족한 해결법도 없다. 시간이 해결해주는 경우가 많다. 장 코치는 타격감이 안 좋을 때는 똑같은 훈련을 반복해서 하지 말고, 밀어친다는 생각으로 타격을 하라고 했다. 그는 "안 맞을 때는 그걸 인정하고 가볍게 생각해야 한다. 빨리 벗어나려고 서두르다보면 슬럼프 기간이 길어진다. 타석에서 그냥 공을 보고 친다는 생각을 해야지, 여러가지 생각을 하면 될 것 같아도 안 된다. 집착을 버리고 단순하게,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장 코치는 "상식적인 얘기가 되겠지만, 슬럼프 때는 우중간으로 친다는 생각으로 때리는 게 도움이 된다. 우중간쪽으로 공을 보내려면 공을 반개, 한개 정도 더 봐야한다. 그렇게 하다보면 중심을 뒤에 남겨두게 된다"고 했다.
장종훈과 이승엽, 박병호가 한시대에 뛰었다면
어린 선수, 젊은 선수는 좀 더 나은 선배, 앞서가는 이들의 길을 따라간다. 장 코치는 세이부 라이온즈 시절의 기요하라 가즈히로의 타격과 스타일을 배우고 싶었다고 했다. 오사카 PL학원을 졸업한 기요하라는 1985년에 입단해 첫 해부터 4번 타자로 뛰었고, 장 코치는 세광고를 졸업하고 1986년 빙그레에 연습생으로 입단했다. 장 코치는 "나이가 비슷한데 기술적으로 배울점이 많은 선수였다. 재일교포인 고원부 형이 경기 비디오 테이프를 구해줘,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 비디오 테이프 필름이 끊어지도록 돌려봤다. 나중에는 끊어진 테이프를 이어붙였는데, 중요한 부분이 안 나오더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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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코치는 "1992년 41개를 때렸을 때 몸과 파워로 지금 뛴다면 홈런을 몇개나 칠 수 있을까 막연하게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지금 선수로 뛴다면 잘 했을 것 같다"고 했다. '50홈런을 때릴 수 있을 것 같나'라고 묻자, 그는 싱긋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긍정의 의미로 읽혔다. 장 코치는 "지금은 환경이나 여건이 너무 좋고, 동기부여도 확실하다. 내가 지금 선수라면 밤새도록 훈련을 할 것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셋을 같은 기준에 뒀을 때 이승엽이 최고이고, 박병호가 다음이라며 자신을 낮췄다. 이승엽이 기술적인 면에서 뛰어나고, 왼손타자라는 이점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우리 때는 그냥 뛰는 게 체력훈련의 전부였다. 요즘같은 다양한 웨이트 트레이닝 기법, 기계가 그 시대에 있었다면 41홈런 이상을 때릴 수 있었을 것 같다"고 했다.
이승엽이나 박병호의 경우 팀 성적이 홈런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장 코치는 "팀이 6~7위 정도라면 팀 성적에 대한 부담감과 중압감 때문에 많은 홈런을 치기 어렵다. 앞뒤에 좋은 타자가 있으면 당연히 견제가 줄어 타격이 편해진다. 내 경우 1992년 이후에 이정훈 이강돈 강정길 선배가 은퇴를 하거나 이적을 해 힘들었다. 나를 받쳐줄 선수가 부족했다. 어느 해인가 개막전에 1~3번에 신인, 5번에도 신인급 타자가 출전한 적도 있다"고 했다. 이런 면에서 이승엽과 박병호는 장 코치보다 유리하다고 봐야할 것 같다.
그는 "선수를 그만둔 지 9년이 흘렀다. 가끔 투수 볼을 보면 내가 정말 저런 공을 쳤나 그런 생각이 든다. 변화구가 떨어지는 걸 보면 저런 공을 어떻게 쳤나 싶어 혼자 웃기도 한다"고 했다.
대전=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