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의 3분의 1은 평생에 한번 이상 암을 경험하고, 매년 20만명 이상이 암진단을 받는다는 조사결과가 있다. 의학의 발달로 암은 더 쉽게 발견되고, 더 완벽하게 치료되고 있지만 여전히 부담스럽다. 가장 큰 이유는 치료가 끝나도 일반인들은 정상생활 복귀에 꽤 힘이 들고, 운동선수들은 일정기간 공백이 불가피하다.
갑작스럽게 대한민국의 젊은 야구선수 둘이 암투병중이다. 한화 정현석(32)은 지난해 12월 위암 판정을 받아 야구팬들이 크게 걱정했다. 지난달말에는 NC 원종현(28)까지 대장암 수술을 했다. 둘다 수술은 잘됐고, 회복단계다.
한화 정현석. 스포츠조선DB
둘 다 선수생활의 터닝포인트에서 큰 일을 겪어 아쉬움이 크다. 정현석은 지난해 한화 마무리훈련에서 몸상태가 좋아 김성근 감독의 기대를 키웠다. 원종현은 지난해 철저한 무명 생활을 이겨내고 8년만에 1군 마운드에 올라 일을 냈다. 최고시속 155㎞를 뿌리며 NC마운드의 필승조로 활약했다. 연봉은 2400만원에서 8000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NC는 원종현의 선수등록을 그대로 유지했고, 선수들은 '155'를 모자에 새기고 원종현을 기다리고 있다. 누구보다 절박한 심정으로 야구에 매달리던 이들에게 암은 작지 않은 시련이지만 멋지게 극복해낸 선배들이 많다.
지난해 메이저리그 최대 FA중 한명인 존 레스터(32)는 보스턴 소속에서 6년간 1억5500만달러를 받고 시카고 컵스로 옮겼다. 지난해 16승, 통산 116승을 거둔 메이저리그 대표 좌완. 9년전 레스터는 생애 최고의 순간에 최악의 상황을 경험한다. 메이저리그로 승격한 지 두달만에 자동차 사고가 났고, 며칠뒤 허리통증을 호소했다. 뭔가 심상치 않았고 정밀검사 결과 림프종(임파선암) 진단을 받았다. 4번의 힘겨운 항암치료 끝에 받아든 완치판정. 이듬해 마운드에 복귀한 레스터는 그해 월드시리즈 4차전 승리투수가 됐다. 2008년에는 노히트노런도 기록했고, 15승을 밥먹듯 하는 에이스가 됐다.
마이크 로웰(41)은 1998년 뉴욕양키스를 시작으로 플로리다, 보스턴 등 13년간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다. 1999년 25세의 젊은 나이에 고환암 진단을 받았다.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한 그해 그라운드에 복귀했다. 이후 월드시리즈 3회 우승에 4차례 올스타를 차지했다.
에릭 데이비스 역시 35세이던 1997년(볼티모어) 결장암(대장암 일종) 진단을 받았다. 곧바로 수술한 뒤 치료와 재활을 병행한 데이비스는 그해 9월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1998년에는 타율 3할2푼7리에 28홈런-89타점으로 펄펄 날았다.
추신수의 소속팀인 텍사스 제프 배니스터 감독(50)도 고교시절 뼈에 생기는 암의 일종인 골육종을 10번의 수술끝에 극복했다. 이후 선수로선 큰 빛을 보지 못했지만 코치와 지도자로 경력을 쌓아 메이저리그 사령탑이 됐다. 김성근 한화 감독(73) 역시 1998년 신장암 수술을 했다. 신장 결석으로 둘러대며 주위사람들에게 암투병 사실조차 알리지 않았다. 김 감독은 아무렇지도 않게 시즌 중 감독석으로 조용히 돌아왔다. 김 감독은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수백개의 펑고를 치며 수비훈련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김재현(40) 한화 코치도 2002년말 양쪽 고관절 무혈성 괴사 수술을 받았지만 이겨냈다. 선수생활은 물론이고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을 수도 있다는 걱정을 뒤로하고 그는 화려하게 부활했다. 김성근 감독은 병상의 정현석을 향해 "어떤 병이든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빨리 나을 수 있다"며 용기를 북돋워줬다.
NC원종현. 스포츠조선DB
원종현은 수술 직전 구단 관계자들에게 "걱정할 것 없다. 꼭 이겨낼 것"이라며 주위의 안타까운 시선을 오히려 안심시켰다. 8년의 절치부심도 이겨낸 그에게 몇 개월은 눈깜짝할 새 지나갈 것이다. 기자 역시 올해가 가기전 그라운드에 우뚝 선 둘을 보고싶다. 기립박수를 보내는 구름관중의 환호, 한국시리즈 7차전 못지않을 것이다. 스포츠 1팀장 jh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