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실즈가 국내 FA 시장에 나왔다면

기사입력 2015-02-08 07:27


메이저리그 FA 시장에 아직 남아있는 제임스 실즈와 같은 우수한 투수가 국내 프로야구 시장에 나왔다면 어떻게 됐을까. 한국과 미국 프로야구는 태생과 존재방식부터 달라 선수 영입 판단 기준도 다를 수 밖에 없다. 지난해 월드시리즈 5차전서 투구를 하고 있는 실즈. ⓒAFPBBNews = News1

제임스 실즈(34)는 메이저리그 FA 시장에서 '빅3'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스프링캠프 개막을 열흘 정도 앞둔 지금까지 계약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맥스 슈어저와 존 레스터가 일찌감치 만족스러운 조건으로 팀을 선택한 것과 비교하면 조금은 놀라운 일이다. 슈어저는 지난달 1월 20일(이하 한국시각) 워싱턴 내셔널스와 7년 2억1000만달러, 레스터는 지난해 12월 10일 시카고 컵스와 7년 1억5500만달러에 각각 사인을 했다. 실즈가 두 선수와 비교해 나이와 기량 등 처지는 게 사실이지만, 이렇게까지 협상이 장기화될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실즈는 2006년 탬파베이 레이스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통산 114승90패, 평균자책점 3.72를 기록했다. 2007년부터는 8년 연속 두자릿수 승수에 200이닝 이상을 던졌고, 그 사이 단 한 번도 부상자 명단에 오른 적이 없을 정도로 몸상태도 양호하다. 지난해에는 캔자스시티 로열스에서 34경기에 선발로 나가 14승8패, 평균자책점 3.21을 올리며 에이스 역할을 했다. 그럼에도 계약이 미뤄지고 있다.

그렇다고 그에 대한 수요가 적은 것은 아니다. CBS스포츠, MLB.com, CNNSI 등은 최근 실즈를 데려갈 수 있는 후보들을 소개하며 4~5개 팀과 물밑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실즈의 에이전시인 'PSI 스포츠매니지먼트'가 시간을 늦추면서까지 협상을 끌고 가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결국 계약 조건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데려갈 팀이 없는 게 아니다.

주목할 것은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태도다. 지난 8년 동안 평균 14승, 223이닝을 보장했던 투수라면 선발진이 필요한 팀들 사이에 몸값 경쟁이 뜨거워야 하는 게 상식이다. 그리고 벌써 계약이 완료됐어야 했다. 그런데 실즈에 대해서는 이런 현상이 벌어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12월 10일 윈터미팅 당시 실즈의 몸값은 5년 1억1000만달러로 예상됐다. 물론 실즈측이 원하는 조건은 그 이상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던 팀들은 직간접적으로 '현실에 비해 시장 가치가 너무 높다'는 의견을 내놓기 시작했다.

해를 넘기자 계약기간 5년도 과하다는 반응이 나왔고, 급기야 2월 들어 언론들은 총액 1억달러 자체가 무리라는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지난 6일 MLB.com은 '각 구단 관계자들과 에이전트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4년 7000만달러선에서 몸값이 결정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실즈의 가치가 2개월 동안 이렇게 내려간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투수 친화적인 구장에서 그동안 올린 성적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의견, 1984년생인 슈어저나 레스터와 달리 1981년생인 실즈는 이제 하락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측면 등이 부각됐다.

게다가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실력을 갖춘 선수를 영입하고자 할 때 '경영 마인드'로 접근한다. 구단의 장단기 예산에 따라 움직인다는 의미다. 아무리 필요한 선수라도 구단 재정이 감당하지 못하면 데려오지 않는다. 메이저리그 구단은 그 자체가 사업체다. 일반 기업과 같은 법인이다. 만년 적자에 하위권을 면치 못했던 몬트리올 엑스포스가 지난 2005년 연고지를 워싱턴으로 옮긴 이유도 재정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프랜차이즈를 바꾼 이후 꾸준히 전력을 추스르고 팬들을 끌어들인 워싱턴은 지난해 메이저리그 구단 가치 평가에서 7억달러로 30개 구단 가운데 13위에 올랐다. 몬트리올 시절 최하위 수준이었던 구단 가치를 8년만에 중위권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구단 경영이 호전되니 거물급 FA 영입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워싱턴 구단은 2013년 매출 2억4400만달러, 영업이익 2240만달러를 기록했다. 그해 매출 규모 12위, 영업이익 10위에 올랐다. 이번에 슈어저에게 2억1000만달러를 안길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경영 성공 덕분이다. 2010년 이후 워싱턴과 총액 1억달러 이상의 계약을 한 선수는 슈어저 말고도 제이슨 워스(7년 1억2600만달러), 라이언 짐머맨(6년 1억달러)이 있다. 여기에 워싱턴은 슈어저와 계약할 때 장기 수익 예측에 따라 총액의 절반을 계약기간 이후로 넘기는 치밀함도 발휘했다. 슈어저는 총액 가운데 1억500만달러를 계약기간 이후 7년간 나눠 받기로 했다.


국내 프로야구단의 사정은 어떨까. 다른 종목도 마찬가지지만, 프로야구단은 매년 영업 이익을 계산해 따지는 '온전한' 사업체가 아니다. 모기업의 홍보수단의 틀을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구단 재정 상태나 장기적인 매출 예상을 통해 선수 영입 여부를 결정하는 구단은 하나도 없다. 해당 선수의 실력을 정교하게 판단해 몸값을 책정하는 구단도 없다. 그보다는 우승에 도움이 되느냐가 판단 기준이다. 돈이 얼마가 들더라도 상관없다. 구단 고위층의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 이번에 SK 와이번스, 두산 베어스, 삼성 라이온즈가 해당 FA에게 80억원 이상(발표 기준)을 줄 때 적어도 향후 4년간 구단 재정을 고려했는지, 정교한 시스템에 따라 몸값을 판단했는지 물어볼 필요도 없다.

만약 13~14승을 보장하는 '제임스 실즈'와 같은 투수가 지난해말 국내 FA 시장에 나왔다면 어떻게 됐을까. 지금까지 '무소속'으로 남아있을 리 없다. 국내 프로야구와 메이저리그는 태생과 존재 방식이 다르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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