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김재영 '선발 낙점'의 배경과 전망

기사입력 2016-03-27 07:09


무려 4차에 걸친 험난한 경연을 무사히 통과했다. 그리고 드디어 꿈에 그리던 '선발조'로 확정됐다. 걸그룹 데뷔를 꿈꾸는 연습생의 이야기는 아니다. 당당히 팀의 정규시즌 선발 로테이션 자리를 꿰찬 한화 이글스 신인투수 김재영에 관한 이야기다.

놀라운 반전이다. 사실 오키나와 캠프 막판까지도 김성근 감독은 김재영의 '1군 선발'에 대한 확신이 적었다. 지난 3월4일부터 6일까지 이어진 오키나와 추가 캠프 훈련 때 김 감독은 김재영에 대해 "일단은 2군에서 (선발로) 던지게 할 생각"이라고 이야기했었다.


한화 이글스가 20일 오후 일본 오키나와 고친다 구장에서 훈련을 가졌다. 한화 김재형이 런닝 훈련을 하고 있다. 오키나와=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6.02.20.
운명을 바꾼 3주간의 진화

그러나 이후 3주 동안 김재영은 김 감독의 생각을 바꿔놓을만큼 진화했다. 그리고 최종 선발 로테이션에 당당히 합류했다. 내·외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일단 내부적 요인. 김재영의 기량 자체가 발전했다. 사실 김 감독이 김재영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확신을 갖지 못했던 건 투구밸런스가 불안해서였다. 투구시 하체 중심이동이 원활치 않아 투구 밸런스가 들쭉날쭉했다. 또 타자를 상대하는 요령도 다소 부족했다. 그래서 2군 무대에서 경험을 쌓게 하려는 구상을 했었다.

그런데 오키나와 추가 캠프 기간 동안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나타났다. 가와지리 데쓰로 인스트럭터가 힌트를 줬다. 가와지리 인스트럭터는 투구 유형이 자신과 같은 김재영을 전담해 투구시 하체 이용과 밸런스 유지를 숙지시켰다. 그리고 타자를 상대하는 자신의 승부 노하우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들려줬다.

그 결과 추가 캠프 마지막날인 6일 오전 불펜 투구에서 김재영은 감 감독의 생각을 돌려놓을 정도로 안정된 투구밸런스를 만들 수 있었다. 그 덕분에 김 감독은 시범경기 선발 기회를 줬고, 김재영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4번의 선발에서 총 15이닝을 던져 단 1점만 내주며 2승을 챙겼다. 평균자책점이 무려 0.60이다.


한화와 LG의 2016 KBO 리그 시범경기가 15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예정된 가운데 양팀 선수들이 훈련을 펼쳤다. 한화 김성근 감독과 LG 양상문 감독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대전=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6.03.15/
한화 선발진의 구조적 문제


여기에 다른 선발 후보들의 불안정이라는 외부요인도 함께 작용했다. 사실 한화에는 '선발 후보군'이 많았다. 김재영까지 기회가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후보들에게 문제점들이 나타났다.

일단 외국인 에이스 에스밀 로저스는 팔꿈치 상태가 좋지 못해 시즌 초반 합류가 어렵게 됐다. 안영명(ERA 19.64)과 송은범(ERA 6.00)은 시범경기에서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또 이태양은 재활을 성공적으로 마치긴 했지만, 시즌 초반부터 풀타임 선발을 맡기는 건 위험요소가 있었다. 배영수는 재활 시간이 더 필요하고, 심수창 김용주는 합격선에 닿지 못했다. 그나마 송창식(선발 3경기, 평균자책점 2.13)과 김민우(3경기, 선발 1경기, 평균자책점 1.29)의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 수확이다.

결과적으로 김재영의 투구밸런스 향상, 그리고 다른 선발 후보군의 난조가 겹쳐지며 '김재영 선발 데뷔'의 시나리오가 현실화 된 셈이다.


넥센 히어로즈와 한화 이글스의 프로야구 시범경기가 9일 대전구장에서 열렸다. 한화 선발 김재영이 힘차게 공을 던지고 있다. 대전=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6.03.09/
'신인선발'로 살아남는 법

김재영의 진화와 성취는 확실히 주목할 만하다. 신인 유망주 투수들이 프로의 벽에 가로막혀 몇 년씩이나 시행착오를 겪는 최근 수 년간의 국내 프로야구 트렌드에 비춰보면 꽤 큰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냉정히 봤을 때 이건 '성공'이 아니다. 이제 겨우 '선발로 뛸 새 기회'를 부여받았을 뿐이다. 1군 선발 로테이션에 들어갔다는 것 자체보다 과연 선발로서 경쟁력있게 생존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새로운 고민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사실 김재영은 구종이 단조롭다는 문제를 갖고 있다. 시범경기에 4번 나설 동안 거의 대부분 '패스트볼-포크볼'의 두 가지 구종으로 타자를 상대했다. 기본적으로 슬라이더와 커브도 던질 수 있는데, 이 구종들은 잘 활용하지 않았다. 이유는 두 변화구(슬라이더, 커브)의 제구력이 미완성이었기 때문이다. 시범경기는 다소 느슨한 무대다. 여기서는 두 구종만으로도 버틸 수 있다. 그러나 정규시즌에 상대 베스트 1군 타선을 만났을 때가 문제다. 구종의 특징 및 공략법이 금세 나와 김재영이 상당히 고전하게 될 수도 있다.

따라서 대비가 필요하다. 시범경기 때는 봉인해둔 슬라이더와 커브를 주요 포인트에서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슬라이더나 커브를 투구 레퍼토리에 섞어줄 수만 있다면 타자와의 수싸움에서 주도권을 쥘 가능성이 커진다. 여기에 기존 패스트볼-포크볼의 제구력을 더 예리하게 다듬는 과정도 필수다. 김재영과 한화 코칭스태프도 이런 문제를 충분히 인지하고 준비하고 있다. 그래서 김재영의 시험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고 봐야 한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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