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없는 지자체장들의 개막전 시구, 또 뻔한 레퍼토리인가

기사입력 2016-04-01 05:59


22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 2016 프로야구 LG와 삼성의 시범경기가 열렸다. 삼성 선발투수 장원삼이 LG 임훈을 상대로 힘차게 볼을 던지고 있다.
대구=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6.03.22.

15일 오후 서울 고척돔에서 2016 프로야구 시범경기 SK와 넥센의 경기가 열렸다. 사진은 고척돔 전경
고척돔=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6.03.15.

1982년 3월 27일 서울 동대문야구장에서 열린 MBC 청룡과 삼성 라이온즈전. 역사적인 프로야구 원년 개막전의 시구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었다. 1983년에는 이원경 체육부 장관이 시구를 했는데, 오랫동안 개막전 시구의 단골은 정치인과 시장, 관료들이었다. 역대 개막전 시구자 명단을 보면, 시장, 장관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팬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던 이들의 비중이 줄어들고 서서히 이 자리를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 일반 팬이 차지했다. 구단이 연예인 시구자를 섭외하는 건 팬 서비스 차원에서다. 주목도가 높은 스타가 경기 전 분위기를 띄울 수도 있다. 시구자의 중요성을 인식한 일부 구단은 많은 고민을 통해 엄선을 하고, 공을 들인다. 이왕돈 두산 베어스 마케팅 팀장은 "베어스를 응원하는 연예인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을 한 일반인, 소외계층 어린이, 프로야구선수를 동경하는 어린 팬 등 시구자의 범위가 넓다. 구단 최고위층까지 협의해 결정한다"고 했다. 물론, 개막전은 더 특별하다.

그런데 일부에선 구태가 여전하다. 1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리는 SK 와이번스-kt 위즈전 시구자는 유정복 인천광역시 시장이다. 지난해 홈 개막전 때 시구가 예정됐었는데, 비로 취소돼 올해 다시 모신다고 한다. SK 구단 관계자는 "연고 지역 시민과 함께 한다는 의미에서 유 시장을 시구자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팬이 지자체 단체장의 등장에 공감할 지 의문이다. 경기장을 소유하고 있는 지자체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해도, 굳이 시구까지 맡길 필요가 있을까. 아무리 대중 노출을 선호하는 정치인, 선출직 지자체 단체장이라고 해도, 팬들이 반기지 않는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SK는 2013년, 2014년 개막전에 잇따라 배우 이시영, 김성균을 경기 전 그라운드에 세웠다. 이 또한 크게 의미를 부여하긴 어려울 것 같다.

우여곡절 끝에 문을 연 서울 고척스카이돔. 국내 첫 돔구장 개막전의 시구자는 박원순 서울특별시 시장이다. 이 또한 감동이 없는 뻔한 레퍼토리다. 히어로즈 구단 입장에서는 서울시가 경기장 소유주이고, 서울시 산하 시설관리공단이 관리 주체이다보니,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를 감안해도 서울 시장이 시구까지 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더구나 서울시는 경기장 사용 조건을 놓고 진행된 협상 때 비협조적인 자세로 야구인들의 공분을 사지 않았던가.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 시대를 연 삼성 라이온즈는 '피겨여왕' 김연아를 '새집'에 초대했다. 뜻깊은 개막전이니만큼 전국적인 인지도, 스타성을 고려했다고 한다.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아 온 '승리의 여신' 김연아를 통해 좋은 기운을 받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꼭 김연아여야만 했나'라는 물음이 나올 수 있다. 삼성은 롯데 자이언츠와 함께 원년부터 연고지, 팀명을 유지해 온 전통의 명문팀이다. 프로야구 역사에 오랫동안 기억될 레전드가 많고 원년 멤버가 있는데, 타 종목 출신 스타를 불러야 했을까.

물론, 의미있는 시구자도 있다. NC 다이노스는 마산 개막전에 특별한 손님을 모셨다. 매년 봄 연고지역 아마팀이 참가하는 주니어 다이노스 스프링캠프 챔피언십을 개최하고 있는데, 이 대회 MVP인 마산 동중 투수 이기용과 김해시 리틀야구팀 유격수 이윤찬이 시구와 시타를 맡는다. NC를 보면서 프로야구 선수를 꿈꾸는 이들에게 뜻깊은 시간이 될 것 같다. LG 트윈스는 열성팬으로 널리 알려진 배우 박성웅을 잠실 개막전 시구자로 불렀다. 2013년 LG 명예선수로 위촉된 박성웅은 그동안 구단 행사에 적극적으로 함께 했다. 2013년, 2014년 시즌에 시구를 했는데, 그해 팀이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 좋은 기억이 있다.

롯데 자이언츠는 4월 5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리는 홈 개막전 시구자로 신장암으로 투병 중인 유두열 전 코치를 선정했다. 유 전 코치는 1984년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7차전 8회에 역전 3점 홈런을 터트려 롯데를 우승으로 이끈 주인공이다. 롯데는 지난해 시즌 개막전 때 '롯데 야구의 전설' 고 최동원 한화 2군 감독의 모친 김정자씨에게 시구를 맡겼다.

이윤원 롯데 단장은 "유명 연예인도 좋지만, 이들은 다른 매체나 행사에서 접할 수 있다. 개막전이 아니더라도 정규시즌 경기 때 시구를 하면 된다. 홈에서 열리는 개막전에는 특별한 의미를 담고 싶었다"고 했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